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돌아가는 길에 만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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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2016. 11. 10.

경춘선 전철에서 보이는 저녁 풍경(수락산)

 

 

 

1

 

평생 강의를 하며 지내지 않았겠습니까? 선생이었으니까요. 교육부 근무도 오래 했으니까 그동안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만 해도 거짓말 보태지 않고 수백 번은 했습니다. 그 이력으로 학위도 없으면서 어느 SKY 대학 박사과정 강의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퇴임한지도 오래되어 강의할 데가 없어졌는데 그 '후유증'(?)으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인지 아침저녁으로 아내를 '앉혀놓고'(? 앉으라고 해서 앉은 건 아니지만)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이 표현이 적절할지……. 어쨌든 이젠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이야기를 할 대상이 그 한 명 외에는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2

 

말하자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청중은 딱 그 한 명뿐인데, 내 강의에 이렇게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청중은 또 처음 봤습니다. 참다 참다 반기까지 들었습니다.

"제발 이젠 좀 모든 걸 내려놓아요!"

 

아, 이런…… 이건 정신을 차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전에 나에게 무슨 강의를 해달라고 한 사람들은 나의 직책 권한 같은 것들 때문이었고 나는 돈 지위 권위 명예 자존심…… 어쨌든 그런 것을 드높이고 싶어서 혹은 그런 것 때문에 지껄여댄 것이었습니다.

 

 

3

 

나는 나의 그 한 명밖에 남지 않은 청중의 거듭되는 반박 때문에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예감하며 마지막으로 쓴 에세이 한 편(「나의 생애 My Own Life」)을 떠올렸습니다.

 

더는 매일 밤 〈뉴스아워〉를 시청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정치나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논쟁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초연이다. 나는 중동 문제, 지구온난화, 증대하는 불평등에 여전히 관심이 깊지만, 이런 것은 이제 내 몫이 아니다. 이런 것은 미래에 속한 일이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일들이 남의 일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모를 일이어서 더 두고봐야 합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연일 '제 구실'을 하기에 바쁩니다. 신문은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배달되어 있고, 텔레비전은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새벽형 인간'인 아내를 위해(나야 물론 '온밤형 인간'이죠) 에너지 넘치는 기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전해줍니다. 아내는 여전히 그걸 열심히 보고 있으니까 나는 올리버 색스의 저 "뉴스아워"를 끊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눈과 귀가 있으니 바라보고 듣고 읽지 않을 수야 있겠습니까?

 

 

4

 

그래도 마음이 편해지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긴 합니다.

결론은 이제 '돌아가는 길'에 서서 비로소 세상을 알게 되었다는 건 아니고 내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는 것입니다.

아내, 나의 스승?

농담입니다!

농담 한번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