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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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18. 10. 17.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전은경 옮김, 들녘 2014

 

 

 

 

 

 

 

 

1

 

라틴어, 헤브라이어, 그리스어에 능통한 교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57)는 한때 제자였던 젊은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책 읽기와 고전문헌학이 전부인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런 그가 비 내리는 날 아침 출근길에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한 포르투갈 여인을 만납니다. 신비감을 품은 그 여인은 자살을 시도한 직후였습니다.

 

"모국어가 뭐지요?"

그는 조금 전에 이렇게 물었다.

"포르투게스(Portugués)."

'오'는 '우'처럼 들렸고, 올리면서 기묘하게 누른 '에'는 밝은 소리를 냈다. 끝의 무성음 '스'는 실제보다 더 길게 올려 멜로디처럼 들렸다. 하루 종일이라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15)

 

 

2

 

겨우 수업을 끝낸 그는 서점에 들러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보게 되고 그 책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아마데우 이니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 『웅 오우리베스 다스 팔라브라스(UM OURIVES DAS PALAVRAS)』, 리스보아(LISBOA), 1975.

책방 주인이 다가와서 책을 보더니,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레고리우스의 귀에는 쉿쉿 소리만 들렸다. 안으로 삼키는 듯 거의 들리지 않는 모음은 마지막에 오는 시옷 발음을 계속 반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패처럼 보였다.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세요?"

그레고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언어의 연금술사』. 참 아름다운 제목 아닌가요?"

"조용하고 우아하군요. 지나치게 반짝이지 않는 은처럼. 다시 한번 포르투갈어로 읽어주시겠어요?"

(26~27)

 

책방 주인은 그에게 그 책의 서문과 일부분을 번역해 들려줍니다.

 

_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 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서문입니다."

주인은 이렇게 말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는 장마다 숨어 있는 경험들을 파헤치는 것 같군요. 스스로의 고고학자가 되는 거지요. 몇 쪽이나 되는 장도 있고, 아주 짧은 장도 있어요. 여기 이건 단 한 문장이네요."

 

_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27~28)

 

 

3

 

그레고리우스는 그 길로 정돈된 삶의 무대였던 학교를 그만두고 리스본을 찾아가 프라두의 일생, 열정적으로 살다간 의학도의 영민함, 귀족 집안 자제로서의 유복한 생활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들,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었던 학창 시절, 척추경직증으로 고통 속에서 살다간 아버지와의 관계, 의사로서의 생활, 독재자 살라자르의 부하 맹지스("인간백정")의 치료와 그로 인한 뭇사람들의 냉대, 그리고 목숨을 건 저항운동의 과정을 탐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레고리우스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달랐고 아주 다른 논리를 지녔던 한 인물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삶을 알고 싶은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탐구를 위해 프라두의 여동생들, 친구, 스승, 학창시절의 연인, 저항운동을 함께한 동료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프라두의 발견과 고뇌, 탐색, 열정적인 삶이 담긴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어갑니다.

 

 

4

 

책을 읽는 내내 잊히지 않는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만난 그 여인은 끝내 다시 등장하진 않았습니다.

 

프라두의 여인들은, 두 여동생(그를 신처럼 생각해온 아드리아나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멜로디)과 함께 세 여인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학창시절부터 그가 끝까지 신뢰한 마리아 주앙, 8년간 함께 살다가 일찌기 심장마비로 죽은 아내 파치마, 친구 조르지 오켈리의 연인으로 저항운동에 참여한 아름답고 지성적인 여인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가 그들입니다.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를 본 프라두는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고 에스테파니아도 그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 때문에 저항운동의 실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한 조르지가 그녀를 살해할 것을 예감하고 그녀를 에스파냐로 피신시켜 주지만 끝내 그 사랑은 받아들일 수는 없었고, 그로 인해 친구 조르지와의 우정도 끝나고 맙니다.

 

난 그를 원했어요. 잠을 잘 수도 없었어요. 그의 병원으로 갔지요. 그의 여동생이 분노에 찬 눈길을 보냈지만, 몇 번이고 계속 갔어요. 그는 저를 안으려고 했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산사태가 그의 내부에서 꿈틀대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저를 거부했어요. 조르지, 조르지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저는 조르지를 증오하기 시작했어요. (…)(547)

 

 

5

 

프라두는 머릿속의 핏줄이 터져 사망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가 그렇게 썼던 것처럼 구원처럼 다가왔던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는 그에게는 경험해보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제 말이 아마데우가 정말 정열적으로 저를 좋아했다는 듯이 들릴 거 같아요.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그건 만남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특히 그가 아무리 얻어도 물리지 않는 삶의 원형질을 빨아들였던 거예요. 다르게 말하자먼 저는 그가 정말 원했던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가 잡으려고 했던 삶의 무대였지요.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한번 완벽한 삶을 살고 싶다는 듯, 지금까지 사람들이 마치 그를 속여왔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잡으려던 완벽한 삶의 무대."(552)

 

"사춘기 소년의 낭만이나 중년 남성의 유치함이 아니었어요. 그건 현실이었고, 진정이었어요. 하지만 그것 역시 저와는 상관이 없었지요.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여행, 자기 영혼의 억압된 분노를 향한 여행에 제가 동행하기를 원했던 거예요. 저는 아마데우에게 당신은 너무 허기졌다고, 그 여행에 동행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그가 개선문 아래로 끌어당기던 날 밤, 저는 이 세상 끝까지 그를 따라가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그의 무서운 허기를 알지 못했지요. 그래요, 어떤 의미에서는 삶을 향한 그의 허기가 무서웠어요. 삼키고 파괴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허기……."(553)

 

 

6

 

에스파니아 살라망카에서 역사 강사로 일하고 있는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를 만난 그레고리우스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안정적인 교사생활을 버리고 돌연 프라두의 생애를 탐구하러 떠났던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떠남에 대한 욕구는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어요. 물론, 지적인 사람일수록 그리고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진실한 욕구를 숨기는 데 능합니다.(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