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책과 함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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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18. 10. 31.






책과 함께 있기







                                                                                     라스코 동굴 벽화(부분)




  (…)

  이렇게 많고 다양한 동물과 크고 작은 것이 섞여 있는 스케일의 그림을, 그것도 암흑 속에서 작은 등불 빛에만 의존하여 그렸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려운 위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가 아니라 몇 명의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림을 그려 넣고, 그 위에 또다른 그림을 덧그렸다. 참을성 있게 동물 윤곽을 잡거나 색깔을 입히며 벽화를 그려나가는 열정과 집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까지 부추기며 예술 행위로 몰고 간 것일까?

  애초에 이러한 동물 그림은 무엇을 위해 그린 것일까? 아마도 이 의문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크로마뇽인에게 물어본다 해도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인인 나에게 "왜 그림을 그리냐"고 질문한들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암흑 속의 동굴벽화 공간을 서성이다 보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림은 어둠 속에 잠겨 있지만, 나 또한 어둠 속에 잠겨 그림과 함께 있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가족 모두가 등불로 벽을 비춘다 한들 그림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며, 일부가 보였다고 해도 곧바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 이우환 「라스코동굴」(에세이, 성혜경 옮김, 『현대문학』 2018년 10월호, 209~212.) 중에서.




    1


  이우환의 에세이를 대하면 긴장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즐거운 긴장'입니다.

  대개 잘 번역된 그의 에세이는 평이한 문장이어서 읽기에 부담스럽진 않습니다.

  더러 예술가의 사유 속으로 따라 들어가야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예술가의 곁으로 간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스러운 일이어서 그 또한 즐거운 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 '진입'하지 않는 한 전혀 까다롭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아서 편안하게 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의 에세이는 단 한 번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꼭('백발백중!')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 때문에 즐거운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2


  이달치 월간지에 그의 에세이 세 편이 실린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의 즐거운 기대를 가지게 되는 순간의,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같은 놀라움이었는데, 그는 또 그 세 편의 에세이에서 어김없이 그 '무엇'을 보여주었습니다.

  위에 일부를 옮겨둔 에세이 「라스코동굴」 같으면 "왜 그림을 그리냐"고 질문한다면 화가인 자신도 아득한 옛날의 크로마뇽인들처럼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음미해볼 만한 말이지만 그보다 충격적인 그 '무엇'은 다음 문장에서였습니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의 의미가 파도처럼 몰려와 가슴을 쳤습니다. 그 울림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생각이 펼쳐짐에 따라 연이어 몰려왔습니다.



    3


  내가 책을 즐겨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책을 '읽거나 말거나'일 것이고,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러지 말고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하거나 그게 싫으면 좋은 대화라도 나누거나 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일입니다. 나는 책과 함께 살았고 책과 함께 죽어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눈이 망가지면 듣기만 하면 되는 책이 있다는 얘기까지 들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 보라면 자신이 없습니다.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책들이 나와 함께 있기를 싫어했거나 스스로 나에게서 떠나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 의미가 이미 이 짧은 문장 속에 드러나 있듯이 내가 주체인데, 나는 그 책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늘 헤매고 다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4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고 주어진 시간조차 그리 길지 않아서 초조하긴 하지만 그래도 미련을 가지고 해결하고 싶은 주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