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책갈피 속의 옛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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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021. 5. 17.

예안초등학교 52회 동기회 카페에 실려 있는 영락정의 모습

 

 

 

 

어느 시인이 그동안 낸 시집을 한꺼번에 보냈습니다. 한 권 한 권 헌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훗날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이 헌사들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했습니다.

 

중고본을 구입한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생일'"의 면지에는 이런 헌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에게

뉴질랜드에서 뜻깊은 인생 공부를 하고 온 걸 축하하며...

2007. 5. 31.

○○○ 드림

 

 

색바랜 책을 펴보면 이 집 저 집 그 책을 가지고 이사를 다닌 지난날들이 떠오릅니다.

내 메모든 전 주인의 메모든 혹은 보내준 사람의 메모든 면지에 적힌 메모가 있으면 일삼아 들여다봅니다.

사놓고 내내 읽지 못한 책 속에서 주인을 잃은 편지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안녕하신지 문안드립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저께는 조금 기다려졌습니다.

기다린다는 것,

우습긴 하지만

그러나 기다린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백설이 날리는 날!

내가 아는 사람이 산책한 풍경도

보고 싶다는 것, 거짓말이 아닙니다.

눈이 내리기에 맘대로 나가 놀지 못하는 꼬마 동무가

누나! 사슴이 꽃을 팔고 산돼지가 그네 뛰던 옛날 얘길 들려달라나요.

 

낙동강이 흐릅니다.

마을을 돌아 나설 때쯤 울퉁불퉁하고 밋밋한 바위가 무척 높게 서서 조그마한 정자를 이고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울창한 숲속에서 사람의 눈을 끌기도 하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에 설매화를 피워

조그마한 옛 궁의 눈을 밟으며

사슴이 찾아가는 느낌을 주는 그 정자를

영락정이라 하여 그 전설을 얘기해 주었읍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손자가 되어 있는데

"편지요!"

얌전한 우체부의 음성,

문득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여러 가지가 궁금합니다.

창밖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군요!

안녕히……

 

                                2. 4.

                                                             숙 드림

 

 

 

어떻게 나이 든 사람들일까?

때 이른 진달랫빛 봄옷을 그림처럼 갖추어 입고 헤어졌을까?

추억이 된 봄바람이 불었을 날에……

 

내가 버린 책 속에도 혹 이런 편지가 들어 있었을까?

어느 책의 면지에는 내 간절한 다짐이 기록되어 있었겠지?

 

그 책들은 단 한 권도 되돌아올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