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모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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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2022. 1. 9.

 

 

 

코로나가 난동을 부리기 전의 초겨울에 우리는 둘이서 만났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여럿인데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사당동에서 처음 만날 때는 열 명 정도는 되었고 너도나도 그 산촌에서 태어나 서울 올라와 산다는 의식으로 서로 어깨를 올리고 잘난 척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잘난 척하는 꼴을 연출한 뒤로는 하나씩 하나씩 줄어들었습니다.

맨 처음에 누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는 마음이 살짝 어두워지고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또?' '또!' 하게 되었고 드디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싶었습니다.

 

O는 하필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지병으로 죽었습니다. 집 짓는 일을 하고 자신의 집이 열 채는 된다고 하더니 그게 다 빚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대여섯 명의 가족이 출입구조차 지하인 어두컴컴한 셋방으로 들어갔는데 우리는 그 동굴 같은 집을 방문한 적이 있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그 얼마 후에 죽었습니다.

 

C는 건축자재상을 했는데, 모이는 날만 되면 우리를 그 좁은 가게로 불렀고, 우리는 앉기는커녕 설 자리도 없는 그곳에서 고스톱을 하거나 소주를 마시다가 다 모이고 난 뒤에도 겨우 화투판을 걷어치우고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는 그 가게 운영조차 어려워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이후로는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S는 나이가 좀 적은 편인데도 우리와 같다고 우겼고 우리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눈감아 주었는데, 그는 다른 일을 가지고도 허풍을 떠는 느낌이었고 그런 것도 '좋은 게 좋다'고 하면 그만일 텐데도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색을 하고 따져서 결국은 그가 토라지게 되었고 모임에도 영영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까짓 나이가 다 뭐라고......

그렇게 서운해서 나오지 않게 된 사람은 S 말고도 있는데 이젠 생각해내기도 싫습니다.

 

Y는 그 모임에는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여자 동기들과는 자주 만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 나이가 된 이성이 그렇게 좋을까?) 그러던 차에 나에게 전화하여 무슨 서당 교육을 받을 사람 좀 모아달라고 해서 우선 우리 모임에나 나와서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상면도 못하고 연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H는 주유소 근무도 하고 절에 들어가 연명하기도 했는데, 혹독하게 추웠던 어느 겨울밤에 동사(凍死)했습니다. 주유소 근무를 할 때는 대기업 이름을 대며 그 회사 직원이라고 했고 자신이 주유소 사장인 척하기도 했습니다. 절에 들어가서는 "어이, 나 월산스님이야!" 해서 한번은 "야, 이 녀석아! 스스로는 '중'이라고 하는 거야! 가짜 중이 자신을 '스님'이라고 하는 거야, 이놈아!" 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집에서 (말하자면 부인으로부터) 쫓겨나 마침내 절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춘부장이 잘 나갈 때 얻은 소실의 자식으로, 우리와 함께 초등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제법 잘했지만 소실의 자식이라는 그 이름으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일생동안 무언가 감추려는 듯한 말을 하는 느낌을 주었고, 걸핏하면 사람들로부터 "미친놈 아니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얼어죽었는데, 얼어 죽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라도 그 소식을 한겨울 어느 날에 들으며 참 가슴 아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둘이서만 만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