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왜 책읽기에 미쳐 지내나(지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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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22. 6. 29.

Andrea Solari(1460-1524) 「살로메와 요한 세자의 머리 Salome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 출처 :Helen of Troy의 블로그 『Welcome to Wild Rose Country』 ☞http://blog.daum.net/nh_kim12/17200566

 

 

지금은 들어앉아 있지만 최근까지 나는 '삼식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몇 시간짜리 나들이를 하게 되면 기차표 구입 다음에는 꼭 가지고 갈 책을 골랐습니다. 시내에 나갈 때도 매번 책을 갖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인가를 판단했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책을 읽는 걸 아내가 '승인'해 주는지 아닌지를 늘 느낌으로 판단하며 지냈고(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주고 있지만), 혼자 앉아 있는 자유시간 중 얼마만큼을 독서시간으로 할애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하곤 했습니다.

 

교사로서 교육행정가로서 일할 때에도 그게 단 5분, 10분이어도 늘 '지금 이 시간은 책을 좀 읽어도 되는가?'를 염두에 두며 살았고, 최근에는 세상을 떠날 때에도 '나는 일생 동안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여 읽었나?'를 계산하며 숨을 거두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므로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책을 읽는 일이 내가 하는 일, 해온 일 중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책을 거의 읽지 않고도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보면 미친 짓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억지스럽고 무지막지한 단언이 분명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중에 직위가 높은 사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직위가 높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중에 더러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알려지기도 하지만 드문 사례가 분명합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지도 않습니다. 길을 무슨 길이 있겠습니까? 실제로 책 속에서 길을 찾은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당장 지금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EBS 수능방송 교재나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이외의 책을 읽고 앉아 있어도 좋은지 물어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

 

 

"그럼 왜 그리 책을 읽고 싶어 하는가?" 이건 중요한 질문이고 나에게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그건 재미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더 있다면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한데 그것도 사실은 지금까지 읽은 책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어디 없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재미! 그 증거로 정영수 단편소설 「하나의 미래」(《현대문학》 2016년 2월호)의 일부를 옮겨놓겠습니다.

 

 

 (……) 나는 다음에도 그 모임에 나가고 말았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갔다. 나는 모임에 나가서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아래 욕망』을 읽고, 외젠 이오네스코의 『수업』을 읽고,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를 읽고,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읽었다. 주최자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우리가 읽은 희곡들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미친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 정도였다. 『느릅나무 아래 욕망』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아기까지 죽이는 여자가 등장하고, 『수업』은 그야말로 제대로 돌아버린 교수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여제자를 농락하다가 식칼로 난자해 살해한다는 이야기이고, 『오레스테이아』는 트로이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을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도끼로 쳐죽이는데 나중에는 복수의 여신들이라는 정신 나간 여자들이 등장하고 아무튼 난리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오하나와 어떤 정신적 결합(이 표현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설명할 만한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을 하는 계기가 된 『살로메』 역시 등장인물들이 모두 정상은 아니었다. 자신의 딸에게 구애하는 헤롯왕, 살로메를 너무 사랑해서 느닷없이 자살해버리는 젊은 시리아인, 계속 똑같은 말만 해대다가 결국 목이 잘리고 마는 요카난 등 전부 이상했지만 그중 가장 미친 사람은 살로메였다. 생각해보면 오하나와 그만큼 어울리는 역할도 없었던 것 같다. 예언자 요카난을 사랑하는 살로메는 그녀가 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헤롯왕에게 요카난의 머리를 요구한다. 그녀는 요카난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가 그의 추함을 경멸했다가 하며 계속 미친 소리를 하다가 결국에는 요카난의 머리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모두가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요카난 역을 맡았는데(대사가 거의 없었다) 우스운 것은 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그녀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하나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게 요카난이 아니라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터무니없는 감정은 낭독이 끝난 후에도, 그러니까 요카난의 머리가 잘리고 살로메가 병사들의 방패에 짓이겨져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쉽게 가시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 감정은 그녀와 만났던 그 여름 내내 지속되었던 것 같다. (……)

 

 

*

 

 

나는 지금은 거의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책을 거의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결국 책도 바쁘게 살 때 읽는 것이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