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나이든 사람들은 불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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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2021. 11. 14.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빅터 프랭클)》라는 책에서 세 토막의 글을 옮겨놓았습니다. 둘째 세째 토막만 옮겨쓰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면 의미 파악에 지장이 있어서 첫째 토막까지 옮겨놓았는데 첫째 토막은 그 의미가 어렴풋해서 둘째 토막의 맥락이 연결되는 것만으로 넘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적절하게 행동할 기회와 의미를 성취할 수 있는 잠재력은 실제로 우리 삶이 되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잠재적 가능성 그 자체도 큰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기회를 써버리자마자 그리고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키자마자 단번에 모든 일을 해버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거 속으로 보내고, 그것은 그 속에서 안전하게 전달되고 보존된다. 과거 속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모든 것들이 되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저장되고 보존된다. 사람들은 그루터기만 남은 일회성이라는 밭만 보고, 자기 인생의 수확물을 쌓아 놓은 과거라는 충만한 곡물창고를 간과하고 잃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 수확물 속에는 그가 해놓은 일,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용기와 품위를 가지고 견뎌냈던 시련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나이든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한다. 물론 나이든 사람에게 미래도 없고, 기회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 대신 과거 속에 실체, 즉 그들이 실현시켰던 잠재적 가능성들, 그들이 성취했던 의미들, 그들이 깨달았던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어느 누구도 과거가 지니고 있는 이 자산들을 가져갈 수 없다.

 

나는 노인에 대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불쌍하다? 불쌍하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다면 비참하다? 비참도 아닐까요? 그럼 한물갔다? 에이,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런 것인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노인들 중에는 젊은이 못지 않게 활발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없진 않습니다. 그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므로 생각만 있으면 몇몇 사례를 모아 책을 내면 읽어볼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의 삶에는 두서(頭緖)가 있습니다.

계획적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온 날들에 관한 증거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주제넘긴 하지만 나도 그 몇몇에 좀 넣어달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다가 얼른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지금에 와서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빅터 프랭클에 의하면 나는 결국 불쌍한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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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237~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