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카라얀의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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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2020. 8. 19.

DAUM 이미지(부분; 2020.8.19. 저녁)

 

 

젊은 시절의 그의 지휘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실로 시원시원하고 늠름한 몸짓이었다. 70년대 후반까지는 신체의 움직임도, 지휘봉을 휘두르는 방식도 활달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다리를 끄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신체의 움직임이 점점 적어지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갔다. 만년에는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서서 지휘봉으로 그저 몇 번 공간을 날카롭게 찌르는가 싶더니, 공중을 나는 듯이 조용히 휘두르고는 지휘봉을 쥔 손을 들어 올린 채 멈추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것은 지휘를 한다기보다, 거기에 울리고 있는 오케스트라를 듣고 있는 모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멋지게 지휘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니 놀랍다.

 

                                                                      이우환(에세이)「카라얀의 지휘」(『현대문학』2020년 8월호, 225~226) 중에서.

 

 

 

서장 귀퉁이에 넣어둔 CD들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의무감이 작용할 때이다.

사정이 좀 나아지면 들어보겠다고 모은 것들이다.

십 년, 또 십 년........

세월은 가고 가능성은 사그라든다.

나의 음악은 가련하다.

가련한 나의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가련한 카라얀, 나의 클라우디오 아바도..........

그들은 내가 잠든 사이 잠깐씩 서장 밖으로 나와 큰 숨을 쉬어 연주해보고 지휘봉을 휘두르다가 새벽에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조급하다. 그렇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포기하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