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어느 학교 교직원연수회-고것들이 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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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

2020. 8. 18.

출처 : 블로그 《봄비 온 뒤 풀빛처럼》 요즘은 다른 블로그로 '바로가기'를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안내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학교 교직원 연수 시간입니다. 교육청 혹은 교육부 직원 연수 시간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 학교(혹은 교육청, 교육부) 연수 업무 담당자인 블로거 '파란편지'는 (아, 파란편지의 멋진 변신!) 사회석으로 나가 강사 안내를 시작합니다.

 

"선생님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께 ‘옥상정원’(정원 이름 "봄비 온 뒤 풀빛처럼") 일기를 쓰시는 준서 할머님을 소개합니다. 저는 지금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준서 할머님 이야기가 여러분께 우리가 교육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혹은 해석해야 하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깊고 진한 진정성을 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님에게는 우리가 몇 날 며칠 동안 들어도 좋을 이야기들이 수두루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일단 화초 사진 몇 장을 보여주시면서 딱 하루치 일기만 들려주시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5분쯤? 조금 더 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기 제목은 「긴 장맛비 견디고 하루 햇빛이」입니다."

 

 

(사진 1: 제피란시스 로제아)

 

앙증스런 제피란시스 로제아

얘는 구근이 아주 작습니다.

살 때는 그해 꽃이 피는 구근 두 개에 몇 개를 끼워서 5,000원으로

옥상 식구로 등록한 것인데,

 

우리 집은 영문도 모르고 실내 월동을 하고 나면

구근이 줄어들었고,

이웃 친구네는 구근이 해마다 늘어났지요.

 

그런데 지난겨울 월동하고는

구근의 수염뿌리는 다 삭아지고,

그 작은 구근도 썩어 들어가는 듯했지요.

만지면 손에 쩍쩍 달라붙었습니다.

 

친구가 그래도 나누어 심어보자면서 주는 것을,

별 희망은 없어도 정성으로 심어주었지요.

이 아이는 본시 8월에 피는데,

제 계절에 꽃이 피어 아주 반가웠습니다.

 

 

(사진 2: 달리아)

 

달리아

늦게 출발한 달리아가 자라기 시작하니 쑥쑥 자랐지요.

꽃몽오리(꽃망울)가 아주 작았고,

잘 크지 않아서 아주 작은 꽃인가 했지요.

 

드디어 꽃 한 송이 피기 시작하더니 꽃송이도 그리 작지는 않을 듯합니다.

장맛비에서도 꿋꿋하게 견디고,

햇빛이 나니 횃불 깃발 높이 들었습니다.

 

 

(사진 3: 메리골드)

 

메리골드

장맛비에 쑥쑥 키를 키우다가 쓰러졌습니다.

세우면 가지 반쯤 접어져서 말라버릴 것 같아서 그냥 두었더니

은하수가 되었습니다.

 

그대로 프린팅 해서 꽃 보자기 만들어 나누어 가지고 싶습니다.

 

 

(사진 4: 머위)

 

세상에나 깜놀!!!!!

멀리서 온 산수국 포기에서 취나물인 줄 알았는 새싹이 나더니

좀 크고 나니 머위 여린 포기였습니다.

 

취나물보다 환영하게 되었지요.

그 여리던 포기가 이렇게 벌어났습니다.

싹 베어내면 한 접시 반찬이 되겠습니다.

 

내년을 위해서 잎 하나 자르지 않고 키우고 있습니다.

 

(사진 5: 머위 2)

 

잎은 초록이 화초처럼 시원시원합니다.

 

 

(사진 6: 독일붓꽃)

 

독일붓꽃

장마 중에도 중간중간 마른 잎을 정리해주어서

보기 좋았습니다.

 

독일 붓꽃은 장마철에

뿌리가 겉은 멀쩡해도 속에 물이 차서

장마 끝나고 잎들이 마르고

뿌리도 삭아진다고 했습니다.

 

내년에 걸지게 독일붓꽃을 키우고 싶어서

큰 화분에 분갈이해두었는데,

밭농사 놓친 농가도 있으니,

어찌 되든 간에 괜찮습니다.

 

(사진 7: 독일붓꽃 2)

 

(사진 8: 독일붓꽃 3)

 

(사진 9: 고광나무)

 

고광나무

늦게야 흙 위로 새싹을 올리더니,

한 개 대궁이가 마치 대나무 동네에서 살다 와서

키 크게 자라는 것만 아는 것처럼,

키를 키우다 가지가 갈라지더라구요.

 

햇 대궁이가 자라서 꽃까지 피우지는 않지 싶은데도,

자꾸 기대감을 가지게 잎새 모양이 의문스럽습니다.

 

(사진 10: 고광나무 2)

 

올해 늦게 올라온 여린 새싹이 이렇게 키가 컸습니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하늘이 키가 큰 고광나무에게 이젠 장맛비 다 지나갔다 하고

알려주셨을까요?

 

비가 주구장창 왔다고는 아무도 짐작도 못하게

하늘은 쾌청하고 흰구름 떠다닙니다.

 

2020년 8월 13일의 옥상 일기입니다.

 

 

준서 할머님의 일기 소개가 끝나자 박수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사회자 파란편지가 다시 등장합니다.

"여러분! 우리 준서 할머님 얘기를 소재로 이야기 좀 할까요?"

 

그렇게 해놓고 삼삼오오 이야기하자고 할 수도 있고,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론수업을 전개해서 세상을 놀라게 한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샌덜 교수처럼 전체적인 토론을 전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토론이 될지는 사회자의 역량 문제이고, 어떤 토론이 전개되든 당연히 여러 가지 얘기가 오고가겠지요.

얼마나 좋은 시간이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행복합니다. 세상의 온갖 시름이 거짓 같습니다.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비로소 흠뻑 느끼게 됩니다.

 

흔히 연수회라고 해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높은 사람이 독단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버립니다. 기껏해야 초대된 강사가 시간을 다 채우고 선생님들은 바보처럼 듣기만 하다가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끝낼 시간이 되면 부랴부랴 서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열띤 토론을 전개시키려면 사회자가 재주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준서 할머님 이야기를 들으며 단번에 알아차릴 것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 저건 아이들 이야기다. 여섯 가지 화초는 여섯 명의 아이를 의미한다. 아이들은 각각 다르다는 이야기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화초처럼 아이들이 열두 명, 스물네 명, 백 명, 천 명이라도 다 다르고 다 다른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저는 지금까지 적용해온 제 방법을 반성했습니다. 걸핏하면 전체를 대상으로 같은 내용을 주입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교과목별로 교과서의 잡다한 내용을 이해시키려고 애썼고 그렇게 하는 걸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는 양 어쭙잖은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자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라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걸 알면서도, 교육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인 줄 다 알면서도 알량한 지식을 주입하느라고 본질을 유보하며 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남들과 똑같이 성장하겠다고 이 교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걸 구체적으로 파악했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그 아이들이 꽃이므로 저는 지금부터라도 그들을 준서 할머님께서 꽃을 대하듯 바라보겠습니다. 아마도 준서 할머님은 손주들을 그렇게 대하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선생님들 이야기는 지금 이 시각에도 끝나지 않았고, 나는 퇴임에 이르러 학교를 떠나 지금 여기 이 방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