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결별(訣別)

댓글 12

작별(作別)

2020. 9. 26.

2009년 11월 2일, 나는 한 아이와 작별했습니다. 그 아이의 영혼을 저 산비탈에 두었고, 내 상처 난 영혼을 갈라 함께 두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새로 탑재하면서 댓글 두 편도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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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산비탈에 죽어서 가버린 또 한 아이 제 영혼의 일부를 두고, 이제 저는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전략)…

 

우리는 흔히 학생들에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애에게 교육은 무엇이고 장래는 다 무엇이었을까. 장래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얼마나 고달픈 삶으로써 고사리 같은 짧은 인생을 채우고 마감하게 되었는가. 그걸 살아간다고, 어린 나이에 뿌린 눈물은 얼마였을까. 그러므로 교육의 구실은 우선 그날그날 하루하루가 행복하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애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그 머나먼 길을 갔을까. ‘세상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갔을까. 그 짧은 생애에 잊어야 할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므로 '레테의 강' 대신 눈물의 강이나 건넜을까.

 

그 여린 영혼, 이 세상에 잠시만 머물렀던 그 영혼을 담고 있던 초라한 모습의 애잔함이 가슴을 저민다. 이제 무디어진 가슴인데도 녹아내린다.

 

                                           - 졸고,「살아 있을 때라도 사랑해주자」(『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2005)에서 -

 

 

 

 

  서글프죠?

  가을이어서 그렇다면 나에겐 사치입니다.

  봄이 오고 있지 않습니까?

  떠난 사람이 남긴 추억들도 사치입니다.

  애틋함을 자아내는 노래 따위도 그렇습니다. 감상일 뿐입니다.

 

  일찍 떠나서 돌아오지 않을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교육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와서 가슴 아픕니다.

  세상이 냉혹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무엇을 그렇게 이해할 수 없었을까?

 세상에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왜 그렇게 외로웠을까?

 이렇게 무력한 교육보다 몇 배, 몇십 배, 몇백 배는 더 중요한 그걸 알아보는 일을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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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Lethe)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후 세계의 강. 죽은 사람의 혼이 그 냇물을 마시면 자기의 과거를 모두 잊어버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