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독도와 SCAPIN 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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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21. 3. 27.

성삼제 《독도와 SCAPIN 677/1》

일본 영토의 범위를 정의한 지령

우리영토 2020

 

 

 

 

 

 

 

1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는 차고 넘친다. 우리 땅을 지키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더 조사하고 연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증거 자료가 많이 쌓여 있다. 대한민국은 독도를 스스로 지킬 힘이 있는 국가이다. 찾아다니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독도를 교육하고 독도연구를 계속하는 것은 독도를 통하여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시작된 서문부터 끝까지 부사·형용사가 동원되지 않는 문장이 이어진다.

시원하고 분명하다.

 

 

2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항복했다. 1951년 9월 8일, 6년간의 군정 통치를 거쳐 연합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이때 '독도'와 '북방영토 4개 섬'(러시아 영토)이 일본이 포기하는 영토 조항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조약에 의해 일본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SCAPIN이란 일본이 1945년 9월 2일 항복 선언문서에 서명한 날부터 1952년 4월 27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기 전날까지 연합국최고사령관(SCAP)이 일본 정부에 내린 지령(Instruction)을 말한다. 연합국에 의한 일본 군정 통치 기간 중 총 2,635개의 지령이 발령되었다. 이중 일본의 영토와 관련된 지령은 3개이다. 지령 SCAPIN 677과 SCAPIN 841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발령되었고 SCAPIN 677/1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체결된 뒤에 발령되었다. 마지막 지령은 연합국이 포츠담선언 8조에 따라 최종적으로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북방영토 4개 섬을 소련의 영토로 결정한 것이다.(19)

 

이 내용을 분명하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 일본의 영토 문제 • 포츠담선언 • SCAPIN • SCAPIN 677, SCAPIN 841 •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 SCAPIN 677/1을 설명하고 • 독도 문제와 국제사법재판소 • 저자가 SCAPIN 문서를 열람하게 되는 경위와 SCAPIN 677/1의 발견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이 문서들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  •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인 근거들을 보여준다.

 

 

3

 

이런 얘기는 흔히 재미가 없다. 논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도 재미가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맥아더 초대 연합국최고사령관과 일왕이 함께 찍은 사진은 일본인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일본인들은 일왕을 살아 있는 신으로 알고 있었다. 점령군 사령관은 뒷짐을 지고 일왕은 손을 가지런히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했다는 것을 일본인들이 실감할 수 있는 사진으로 기록되었다.(34)

 

 

 

 

 

어떤 사람에게는 끔찍한 느낌을 줄, 다른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될 이 사진 설명 외에는 그리 재미있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가 있다.

설명보다 더 많은 양의 자료가 제시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나타난 그 이름을 부지런히 암기하던 자료들도 볼 수 있다.

 

* 카이로 선언

* 포츠담선언

* 항복문서 (일본 무조건항복선언 서명 문서)

*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4

 

나는 교육부에서 저자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고 그에게서 잊을 수 없는 도움도 받았다. 그는 논리가 분명하면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행정가였다.

그렇지만 그는 독도 전문가도 역사학자도 아니다.

그가 이 책을 썼다.

 

1990년대에도 한일 간에 이미 독도 문제는 있었고, 일본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우리 정부는 항의를 하고 신문에는 전문가의 논설이 실렸다. 그러면 일단락 짓는 느낌이었는데, 묘한 것은 며칠 후 우리나라에 유학 온 일본 학생의 글이 실리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정부청사 로비에서 만난 우리의 '소중한' 독도 문제 전문가 A 교수와 차를 마시며 "우리도 일본인들처럼 누구나 독도에 대한 주장을 쓸 수 있으면 좋겠고, 대학에서라도 그런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런 거지 같은... 우리의 그 전문가는 독도 문제에 대한 글은 전문가가 써야지 왜 아무나 써야 하느냐고 대어놓고 노발대발이었다.

나는 당황하긴 했지만 그가 노발대발한 것에 대해 원고료 문제 말고는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역사 소설 《로마인 이야기》등 그녀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팔렸다는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인에게-리더(leader)편(篇)》(2010)에서 한중일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녀는 한중일 과거사 문제를 재판에 비유했다. 즉 한국과 중국을 원고(原告), 일본을 피고로 규정하고, 배심원은 다른 나라가 맡아야 한다면서, 피고는 원래 유능한 변호인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죄(斷罪)를 피하려면 철저히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원고 측(한국과 중국)은 탁자를 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전법을 잘 쓰기 때문에 일본은 침묵해버리기 쉽고, 침묵하고 있으려면 증거로써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2010년 어느 날 이 증거 문제에 대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 한 역사 저술가의 견해라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 인식이 일본에선 특별한 게 아니다. 필자가 일본에서 보았던 마음씨 좋은 복덕방 아저씨부터 패션모델까지 과거사 얘기만 나오면 "증거를 대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남의 나라를 강제 점령하고, 독립 만세 불렀다고 7500명을 죽이고, 강제 징병과 징용으로 수없이 목숨을 빼앗고, 식민지 여성들을 위안부로 학대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증거를 대라"고 하는 것은 '너희가 못나서 당해놓고 왜 징징거리느냐'는 것이다. 일본에는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사람이 1억 명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을 알게 되고 이 칼럼도 읽은 나는 이 나라에선 1억 명은 불가능하고 《독도와 SCAPIN 677/1》을 쓴 독도 문제 비전문가 성삼제 선생을 들 수밖에 없다.

아니 지금 독도 문제 전문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보다는 성삼제 선생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독도 문제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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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상, '1억 명의 시오노 나나미'(조선일보, 2010.8.14,A26면, 조선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