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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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2021. 9. 22.

 

 

어머니는 구석에 웅크린 채 책을 읽었다. 편한 자세로, 천천히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맨발을 다리 아래로 감추고 책을 읽었다. 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책 위로 굽히고, 책을 읽었다. 등을 웅크리고, 목은 앞쪽으로 숙이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초승달처럼 하고 책을 읽었다. 얼굴은 반쯤 검은 머리칼로 가린 채, 책장 위로 몸을 구부리고 책을 읽었다.

내가 바깥 뜰에서 놀고, 아버지는 자기 책상에 앉아 연구하며 갑갑한 색인 카드들에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 저녁 책을 읽었고, 저녁 먹은 것들을 다 치운 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아버지와 내가 함께 아버지 책상에 앉아, 내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아버지 어깨에 고개를 가볍게 대고, 우표를 분류하고, 분류 책에 있는 것들을 점검하고, 앨범에 우표를 붙이는 동안에도 책을 읽었고, 나는 자러 가고 아버지는 자기 색인 카드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창문 셔터가 닫히고, 소파를 펼쳐 안쪽으로 숨겨두었던 2인용 침대가 드러나도록 뒤집은 후에도 책을 읽었고, 심지어 천장 불이 꺼지고 아버지가 안경을 벗고는,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라 굳게 믿는 악의 없는 사람들이 잠에 빠져들듯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잠에 빠져든 뒤에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녀는, 여러 의사들이 강력한 알약과 온갖 종류의 수면제 및 해법을 처방하기로 하고, 사페드에 있는 가족호텔이나 아르자에 있는 건강 기금 요양소에서 2주간 푹 쉬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해주었던 삶의 마지막 해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는 불면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후 아버지는 자기 부모님에게서 얼마간의 돈을 빌리고 아이와 집을 돌보는 일을 자원했고, 어머니는 정말로 아르자에 있는 요양소로 혼자 떠났다. 그러나 거기서조차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거의 밤낮으로 읽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덕 옆에 있는 소나무 간이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저녁이면 다른 환자들이 춤을 추거나 카드 게임을 하거나 여러 다른 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때 불이 켜진 베란다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이면, 자기와 방을 함께 쓰는 여자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접수처 옆에 있는 작은 거실로 내려가 대부분의 밤 시간에 책을 읽었다. 그녀는 모파상과 체호프를 읽고, 톨스토이와 그네신과 발자크와 플로베르와 디킨스와 샤미소와 토마스 만과 이바스키에비치와 크누트 함순과 클라이스트와 모라비아와 헤르만 헤세와 모리아크와 아그논과 트르게네프의 책들을 읽었고, 서머싯 몸과 슈테판 츠바이크와 앙드레 모루아를 읽었다. 그녀는 쉬는 시간을 통틀어서도 책에서 눈을 떼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마치 그곳에서 매일 밤을 즐기기라도 한 듯, 눈 밑에 검게 그늘이 진 채 피곤하고 창백해 보였다. 아버지와 내가 쉬는 동안 어떻게 즐기며 잘 지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말했다.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모스 오즈의 자전적 소설《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에 나오는 장면입니다(511~513)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일찍이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져가기 전에 이렇게 책을 읽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정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만족해서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고 그렇다면 나라고 해서 이렇게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할 수도 없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나는 눈이 망가져가기 때문에 도저히 많이 읽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라면 이렇게 물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읽고 싶은 강도에 비해 어느 정도 읽고 있는지 숫자로 말해보세요."

그렇다면...... 1/10? 아니 1/20?

그러지 말고 썩 괜찮은 책들을 가려 읽을걸 그랬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