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걱정 많은 중딩이 교장선생님께 (2021.7.30. 수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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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논단

2021. 7. 30.

 

 

교장선생님! 저 서욱이에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과학 독후감 쓴 아이요. 과학자 같다고 하셨잖아요. “아하~ 서욱이!” 하시겠지요.

 

여름방학이니까 한 학기만 지나면 졸업이네요. 코로나 열풍으로 학교생활도 ‘그럭저럭’이었는데 고등학교 진학도 걱정이에요. 전면 시행은 아니라지만 학점제는 특히 부담스러워요. 실패하면 어쩌지? 다들 괜찮은 척해도 속으로는 궁금해하죠. 우리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게 한다면서요? 내 적성은 어떤 것일까?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해져요. 그때 가서 부모님과 상의하면 답이 나올까요? 고등학교 진로 담당 선생님은 아이들 적성과 진로를 꿰뚫어 보시는 족집게이면 좋겠는데 각자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해! 그러시면 어떻게 하죠?

 

과목이 확대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이웃 학교나 관련 기관에 가서 강의를 받아오라고 한다면 그건 생각만 해도 아득한 느낌이에요. 선생님들 얘기로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실제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선생님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좋아할 수가 없을 거예요.

 

학생들이 개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의아한 점이에요. 언제 그런 역량을 발휘하게 될까요?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선생님 강의시간을 줄이고 우리의 활동시간을 늘린다는 걸까요? 그게 아니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대폭 늘려서 우리가 그런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한다는 걸까요?

 

교장선생님도 더러 그 말씀을 하셨지만, 선생님들은 걸핏하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죠. 개인별 학점제라면 아무래도 자기 주도적 학습을 더욱 강조하겠죠? 교장선생님! 모처럼 하소연 좀 하고 싶어요. 우리가 언제 무엇을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시간에 자기 주도적 활동을 할 수 있나요? 또 어떤 공부를 자기 주도적으로 해야 하나요?

 

제가 생각하는 의미가 옳다면 전 자기 주도적 학습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일방적으로 선생님들 강의만 듣게 할 것이 아니라 각자 생각할 시간을 좀 주셔야 해요. 질문도 하고 옆 사람과 얘기도 해보고 관련 자료도 검색해보고 다른 책도 읽어봐야 하거든요. 그런 학습 없이 어떻게 자기 주도적 학습이 이루어질까요?

 

생각해보세요. 아르키메데스도 “유레카!”를 외쳤잖아요. 그는 밀도에 대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걸 왕관이 순금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적용하게 된 거니까 공부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린것들이 무슨 유레카냐고 하신다면 그럼 강의 내용을 소화할 시간이라도 좀 달라고 하면 이해하실까요?

 

이런 얘기 하면 선생님들은 늘 진도 나가기도 바쁘다고 하시죠. 그럼 어떻게 하죠? 답답해요. 교장선생님께서 교육부장관님께 건의 좀 하시면 안 될까요? 교과서 좀 줄여달라고요. 소화할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요.

 

교과서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전 교과서라는 책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책을 참 좋아하시는 교장선생님은 어떠신가요? 교과서라는 책도 보고 싶은가요? 자기 주도적 학습을 강조하고 과목 선택 기회를 확대해주려면 차라리 우리가 개별로 그 과목 담당 선생님과 의논해서 공부할 책을 정하고 그 책을 읽어가며 선생님께 질문도 하고 도움도 요청하고 다른 책도 읽고 관련 정보 검색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하게 해 주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는 과학책으로는 당장 “코스모스”(칼 세이건)를 선택할 거예요. 저는 그 책에서 과학시간에 배운 것보다 더 많이, 더 재미있게 배울 것 같았어요. 역사는 어떤가요? 서점에는 제가 읽어야 할 수많은 역사책이 얼른 나를 읽으라고 안달이 나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 책들을 보다가 교과서를 보면 한숨이 나와요.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실 것 같아요. 교장선생님은 우리 편이니까요.

 

교장선생님!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저를 지켜봐 주세요. 저도 늘 교장선생님 생각을 할게요.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