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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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2021. 9. 29.

 

 

 

TV 채널이 0부터 999번까지 있다는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마치 스마트폰의 기능 중 전화는 겨우 1/100쯤이라는 IT 애호가의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 100가지 채널을 어떻게 다 파악해서 골고루 보고 중요한 걸 꼭 챙겨 보고 봐야 할 걸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을까, 그게 걱정스러웠고,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지상파'(그런데 지상파가 도대체 뭐지?) 방송도 제대로 시청하지 않는(한때 교육자였으면서도 EBS 교육방송 중 유익한 프로그램조차 전혀 시청하지 않고 있는) 자신이 더욱 형편없고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말거나 세상의 방송은 잘도 돌아가는구나... 방송이 천 가지라니... 아따 세상 참...'

 

그러다가 곧 돈을 더 내고 이른바 지상파와 종편 두 가지 다 보게 되었는데 나는 지금은 그것들을 아주 혐오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저것들과 함께하지 않고 외면하고 지낼 수 있을까?'

 

평소에도 최소한으로만 바깥 출입을 해왔지만 미증유의 코로나 시대가 닥쳐서 2년 가까이 거의 두문불출하고 있는 아내도 그렇게 말한다. TV 아니면 함께할 게 없는 시절이 됐는데도 딱 잘라서 "볼 게 없네" 하고 평가한다. 아내가 0에서 999까지 일일이 다 돌려봤는지 의문이긴 하다. 그렇지만 다 돌려보면 뭐 하나? 다 돌려본다고 별 수 있겠나?

 

1980년대에 마가렛 대처 총리는 영국 텔레비전 방송국 규제를 철폐했다. 채널 4는 독립 제작사들에게 돌아갔고 ITV와 BBC는 방송 출력의 25%를 독립 제작사들에게서 공급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대부분 옥스브리지(옥스포드대+캠브릿지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BBC와 ITV가 편안하게 나눠 먹던 독점 구조가 산산조각 나면서 온갖 종류의 재능을 가진 신인들이 열린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 동안 작가, 예술가, 심리학자, 기자, 사회복지사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제작사들이 천 개 정도 우후죽순처럼 솟아났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업체들이 서로 통합되었고, 놀라울 정도로 균일한 취향을 가진 동일한 종류의 사람들이 윗자리로 올라왔다.

여기에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의 뇌는 익숙한 것을 분명하게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게으르다. 매번 만날 때마다 정보를 새로 처리하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어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없는 비슷한 부분을 찾으려 한다.

 

《경쟁의 배신 A BIGGER PRIZE》(마거릿 헤퍼넌, RHK, 2014)에서 본 이야기다(354~355).

사실이 저러해서 혹 '볼 게 없다'는 평가는 영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라면 이건 세계적인 현상일까?

그런데도 방송국은 번성하고 연예인들은 잘만 살아가고 있지 않나?

나는 세상을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나 혐오스러워하지만 말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봐야 할까?

정치에 관심을 표명하며 "2강 2중 구도"니 뭐니 하고 우유값이고 뭐고 다 올라서 큰일이라고 드러내어 걱정하고 아프가니스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북미 문제는 또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계속 추적하고, 북극의 빙하는 그렇게 계속 녹고 있는지 알아보고...

 

근데 그걸 누구하고 이야기하지?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은 이제 아내밖에 없잖아.

2강이니 뭐니 하다가 괜히 관계만 더 악화되는 거 아닐까 몰라.

만약 그런 사태가 전개되면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된 건 따지고보면 순전히 TV 때문!"이라고 어디 가서 호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