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안병영 에세이 《인생 삼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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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21. 10. 11.

안병영 에세이 《인생 삼모작》

21세기북스 2021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두 번 교육부 장관을 지낸 분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때였고, 공교롭게도 그 두 번 다 근무 기간이 겹쳤다. 곁에서 보면 어이없지 않은가 싶은 분도 없진 않지만 이런 분도 있나 싶은 분도 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말단 직원이어서 개인적으로 장관을 만날 일은 없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자주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고 사사로운 격려와 함께 심지어 꾸중을 듣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교장으로 나갔을 때 부총리직에서 물러나 연세대 교수로 복귀했을 때였고 학교를 찾아와 아이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각각 강의를 해주기도 해서 나로서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언젠가 보좌신부님이 교리반 아이들을 모아, 성당에서 봉사해야 할 역할에 따라 어린이들을 몇몇 그룹으로 나누셨다. 신부님께서는 우선 각자가 원하는 대로 지망을 하게 하고 경합이 심한 그룹은 다시 조정한다는 원칙을 미리 밝히셨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 학생들이 복사반(服事班)을 지망했다.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에게 붉고 예쁜 복사복을 입고 제대 앞에서 신부님을 돕는다는 일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음은 쉽게 이해가 될 일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가까이서 독점하는 느낌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나는 복사반 지망을 처음부터 생각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분명치 않으나 모두가 그쪽을 원하니 경합하기를 꺼렸던 듯도 싶고, 또 원래 허둥대는 편인 내가 제대 앞에서 실수나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보좌신부님의 의아한 눈초리가 나에게 향해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신부님께서는 "주일날 가톨릭 신문 팔 사람?" 하고 외치셨다. 나는 호기 있게 손을 번쩍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30명 가까운 아이 중에 유독 나 혼자만이 손을 치켜든 것을 알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 보좌신부님이 급히 나에게 다가오시면서 "분도(내 세례명), 그건 안 돼!" 하고 노한 목소리로 외치셨다. 이윽고 놀라서 올려보는 나를 부둥켜안으시며 "내가 너 고생하는 것을 아는데 성당에 와서도 신문을 팔다니, 그건 말도 안 돼!" 하시며 팔에 힘을 주셨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신부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엉겁결에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중얼거렸다. "신부님, 자 자신 있어요. 신문도 팔아 봤고요. 정말 제가 원하는 일인데요."

 

결국 신부님은 내 고집에 꺾이셔서 가톨릭 신문을 팔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러면서 신부님께서는 복사복을 입은 내 모습이 보고 싶으셨다는 얘기와 하느님께서 신문 파는 소년을 더 사랑하실 것이라는 말씀도 들려주셨다.

 

지금도 나는 왜 내가 그토록 신문을 팔 것을 주장했는지 분명치 않다. 혹 어린 마음에 내가 좋아하는 보좌신부님의 심리적 반향을 미리 간파하고 의식적으로 일을 그렇게 꾸몄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랬다면 교활한 소년의 페이스에 순진한 신부님께서 말려 들어간 셈이 된다.

(「기억 속의 보좌신부님」부분)

 

 

나는 《인생 삼모작》의 수필들을 블로그 《현강재》에서 대부분 다 읽었다.

그런데도 책이 되어 나온 작품들을 새로 읽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다시 읽는 것이 더 재미있다.

단어 하나하나에도 그분의 성품이 그대로 배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더구나 인생 삼모작이 아닌가.

 

 

서울 태생인 나는 젊은 시절부터 노후에는 시골에 가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15년 전 정년퇴임에 앞서 마지막 학기가 끝나기 무섭게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왔다. 처음 2년 가까이 속초에 살다가, 이후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로 옮겨 와서, 한여름에는 농사짓고, 겨울에는 글 쓰며, 남들이 다니는 큰 길가에서 얼마간 비켜서서 한적하게 살고 있다.

(머리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