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즐거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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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야기

2021. 11. 19.

 

 

 

 즐거운 일기

 

 

                                                                           최지은

 

 

11월에서 11월까지

 

그림 그리고

 

12월 마지막 날은 아무래도 슬퍼

그림 그리다

깜박

 

잠들기로 해요

 

당신이 꿈에 와 그간 이야기 들려주도록

모른 척 잠에 빠지고

 

이파리 갉아 먹히듯 점점 꿈이 좁아지고

잠이

달아날 듯 말 듯 꿈이

잊힐 듯 말 듯 당신이 떠나려는

 

사이에도

 

11월에서 11월이 가고

또 다른 11월

 

가도록

 

깊은 잠 들기로 해요

 

눈 내리는 밤이면 나쁜 기억이 있어

무서운 꿈을 꿨어요

 

그런 밤에도

 

눈을 기뻐하는 나의 늙은 개를 위해

채소를 삶고 저녁을 짓고

지친 마음은 그림 속에 주저앉히고

무엇이든 넘치지 않도록

얌전히 걸으며

 

그렇다 해도

 

12월의 끝

혼자, 식은 저녁을 다시 데우면서

 

잠시 창밖은 보겠지요

 

그때에도 가슴에 내리는 눈은

빈 접시 위에

헛것의 노래 되어

맴돌겠지만

 

내가 사라지더라도 가장 나중 사라졌으면 하는

내 안의

 

사랑이 있어

 

나는 불길처럼 달려요

 

조금 늦어도

의심하지는 말아요

 

11월에서 11월까지

 

당신 꿈에 닿으려는

나의 생활이

 

나를 지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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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1986년생. 2017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새벽에 녀석이 머리맡에 다가와 나지막히 불렀습니다. "할아버지이~"

눈을 떴습니다.

어제에 이어 병원에 가야 하는 날입니다.

녀석이 고마웠습니다.

 

점심때쯤 돌아와 쉬고 한참을 걸려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런 가을날 이런 시간에 대해 굳이 뭐라고 이름 지을 이유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따듯하다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녀석이 나를 부르던 그 시각부터 따듯했습니다.

 

가져온 책을 꽂아 두려고 하다가 이미 읽었던 이 시를 또 읽었습니다.

이 페이지가 열린 것은 좋은 우연이었을까요?

그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현대문학』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