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가던 길 멈춰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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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

2021. 12. 2.

 

 

 

지난번에 소개한 시인 W. H. Davies의 시 Leisure의 번역 전문입니다. 콜로라도 덴버의 "노루"(과학 교수) 님이 소개한 작품으로,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에세이)에서 발견했습니다.

 

 

가던 길 멈춰 서서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시인의 이 표현을 이렇게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아이들 쳐다봐 줄 시간도 없는데 뭘 가르친다는 걸까?"

 

내가 어떤 글에서 그렇게 썼더니 "노루" 님이 보고 이 시를 보여주었습니다.

교장인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교사들은 '좋아하네. 저 사람은 걸핏하면 저런 소리나 해' 하고 외면해버렸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지요?

게다가 나는 이제 외면받는 교장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예 내가 내 말을 들려줄 대상조차 없습니다.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만약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거지가 이 말을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장영희 교수는 시인 W. H. Davies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시인 중에도 '거지'가 있다. '걸인 시인'으로 알려진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W. H. Davies, 1871~1940)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열세 살 때 친구들과 도둑질을 하다 체포된 후 퇴학을 당하고 액자 공장에서 도금 기술을 배우지만, 그 일을 혐오해서 몰래 책을 읽다가 들키기 일쑤였다. 조모가 죽자 그는 고향을 떠나 일정한 직업 없이 걸식을 하면서 방랑한다. (후에 그는 '문학을 하고 싶은 야망으로 저주 받지 않았다면 나는 죽는 날까지 거지로 남았을 것'이라며 걸인 생활에 대한 향수를 토로한다.)

그러나 28세 되던 해 그는 금맥이 터졌다는 소문을 듣고 미국으로 가서 서부로 가는 화물 기차에 뛰어오르다가 떨어져서 무릎 위까지 절단한 장애인이 된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외다리로는 걸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자 시인이 되기로 작정, 서너 편의 시를 종이 한 장에 인쇄해 집집마다 다니며 팔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지비로 출판한 시집 《영혼의 파괴자 外》를 계기로 그는 특이한 삶을 산 방랑걸인 시인으로 서서히 관심을 끌기 시작,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의 대표작 〈가던 길 멈춰 서서〉는 다음(위)과 같다.(200~201)

 

 

이걸 보면 말하는 사람 혹은 글 쓴 사람이 누구든 그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 쳐다봐 줄 시간도 없는데 뭘 가르친다는 건지...."

그건 교장일 때 내가 한 말입니다.

W. H. Davies라는 시인이 있었는지, 더구나 '가던 길 멈춰 서서'라는 시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던 때에 한 말이었습니다.

교장일 때도 내 말을 들은둥만둥 하던 그들이 지금 내가 그 말을 한다고 해서, 저 시인도 저렇게 썼다고 해서 쳐다봐 주기나 하겠습니까?

그렇게도 바쁜 그들이.....

도대체 뭐가 그리 바빠서 우리의 저 아이들이 불러도 쳐다봐 주지도 못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