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문학의 숲을 거닐다》

댓글 22

책 이야기

2021. 12. 6.

장영희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 2005

 

 

 

 

 

 

장영희 교수는 유방암의 전이가 척추암이 되어 세상을 떠나기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어 주었습니다.

젊었던 날들, 장왕록이라는 번역자의 이름을 자주 보았는데 장 교수가 그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신문의 칼럼에서 그 이름이 보이면 열심히 읽었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은 왜 그랬는지 읽다가 말았고, 독자들이 '아,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을 찾도록 해 달라는 신문사의 주문으로 쓴 칼럼을 엮었다는 이 책은 아예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고, 그리고 너는 아직 젊어......"(85)

 

장영희 교수는 문학작품에 나오는 유언에 대해 쓴 글에서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의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 1881》에 나오는 이 문장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생기발랄한 22세의 미국 처녀 이자벨 아처는 부모가 죽고 난 후, 런던에 사는 친척 타쳇 씨 집에서 살게 된다. 타쳇의 아들 랠프는 병약한 몸으로 이미 죽음을 예기하고 있지만, 이자벨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 이지적이면서도 상상력이 넘치는 그녀가 좀더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그는 자기가 상속 받을 유산의 절반을 준다. 이자벨은 미국의 실업가인 굿우드와 영국 귀족 워버튼 경의 구혼을 거절하고 이탈리아에서 자유롭게 예술적 삶을 즐기는 오즈몬드*와 결혼한다.

(......)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꿈꾸던 이자벨은 결국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랠프는 자신이 유산을 나누어 준 것이 화근이 되어 이자벨이 불행해진 데 대해 통한을 느낀다.(83~84)

 

죽어가는 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그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다고 흐느끼는 이자벨에게 랠프는 위와 같은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저 유언의 다음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있는' 삶, 사랑이 있는 삶을 나는 매일 쓸데없는 말, 마음이 담기지 않는 말, 진실이 아닌 말로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고통은 결국 사라지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내가 사라져 버린 후에도 이 지상에 남을 수 있는 사랑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 무슨 말, 무슨 일을 할까.

 

나는 장 교수 자신의 이야기들도 절실했습니다. 누가 그 중에서 한 군데를 고르라면 얼른 다음 문장을 고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리 입원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상하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꿈에도 예기치 않았던 일인데도 마치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그냥 풀썩 주저앉았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히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316)

 

 

 

* 돈을 노린 오즈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