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눈물 너머 아카시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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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2022. 5. 25.

 

 

# 1

 

내 형제 중 한 명이 다 없애버렸지만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4학년 담임 ○인○ 선생은 우등상은 자신이 거주하는 그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상 따위는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걸핏하면 매질을 했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 그 짓을 자주 했는데 자신이 맞을 매를 자신이 준비해오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가느다란 것, 짧은 것을 가져오면 선생이 갖고 있는 매로 때리겠다고 해서 손가락 세 개 정도 굵기는 되어야 만족했습니다.

 

나는 늘 매 맞을 아이들 중 한 명이 되었는데 내가 뭘 잘못한 것인지 그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선생이 풀지 못하는 산수 문제를 말없이 풀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데 아이들은 귀신같이 눈치채고 선생에게 일러바쳤습니다. "선생님! 파란편지는 풀어버렸어요!"

우리는 비 오는 날 운동장 옆 개울 건너편 언덕에서 아카시아 나무를 잘라 매를 만들기 위해 칼을 가진 아이가 정한 순서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비를 맞았습니다. 칼을 가진 아이도 함께 비를 맞는 건 물론이지만 그 위세 때문에 비를 맞아도 서글프진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마음은 뽀송뽀송했습니다.

그 김 선생은 퇴근길에는 늘 술에 취해 해롱해롱 한다고 소문이 나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나도 교사가 되어 그 김 선생을 찾아가 그가 좋아하는 술을 사주었는데 알고 보니 몇 잔 마시지도 않고 금세 해롱해롱 하는 수준이어서 그래 가지고 어떻게 술꾼 행세를 하겠느냐고, 날 좀 보라고 나는 멀쩡하지 않느냐고 놀려주었고 그때 왜 나를 그렇게 두들겨 주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아카시아를 바라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합니다.

 

 

# 2

 

1965년 겨울, 나는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집에서 빈둥빈둥 놀았는데 그 꼴을 영 보기 싫어했던 아버지가 어느 봄비 내리는 날 새벽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나는 어쩔 수가 없어서 길을 나섰는데 어머니가 우산이라도 쓰고 가라면서 비닐우산을 내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황간역에서 서울행 완행열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수십 리 떨어진 황간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나는 울지 않았었습니다. 어머니는 여태 울고 있었겠지만, 내가 울면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할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열차를 탔고, 그 열차가 추풍령 고개를 넘을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철로 옆 아카시아 숲이 열차가 지나는 바람에 파도처럼 일렁거렸습니다. 아카시아꽃 숲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열차가 지날 때마다 그렇게 몸살을 앓을 텐데 철로변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걸 왜 그냥 두고 보는지, 자기네들 마음은 편한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나는 그 아카시아꽃이 만드는 파도를 바라보고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살아와서 학벌도 형편없고, 돈을 모으지도 못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배반이나 당하고, 몸 관리도 잘 못해서 골골하고, 가족들 애나 먹이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남들과 똑같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마치 두세 배는 더 받는 것으로 착각해서 미친놈처럼 일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다 잊으려고 수없이 다짐했는데도 아카시아꽃만 보면 또 생각나서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왔다가 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