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29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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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야기 《매달린 낙서》

조은희 동시집 《매달린 낙서》 소야 2021 코스모스 핀 가을 강변을 함께 수놓는 고추잠자리 이야기 같은 건 없다. 책상 앞에 앉아서 그런 장면을 떠올려 노래하던 동시인들이 보면 충격을 받겠구나, 머썩하겠구나 싶었다. 순전히 삶에 관한 '이야기'다. 가짜 엄마 진짜 엄마 농사일로 엄마는 너무 바쁘다 거의 밖에 있다 집에 와도 일만 한다 하루 종일 엄마를 일에게 빼앗겼다 가짜 엄마. 잠자리에 누워야만 다정한 엄마 목소리가 찾아오고 토닥이는 손길이 찾아온다 밤에 비로소 진짜 엄마가 옆에 와 있다. 이 아이가 진짜 '진짜 엄마'만 좋아하겠나? '가짜 엄마'라고 싫어하겠나? 그렇게 일만 하면서 아이를 여럿 낳은 뒤 얼른 저승으로 가버린, 오십 년 전 마지막으로 본 나의 그 '가짜 엄마'가 떠올랐다. 빨간 오토바..

댓글 詩 이야기 2021. 8. 29.

27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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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논단 선생님! 민이가 선생님 뵈러 갔어요 (2021.8.27. 수원일보)

선생님! 저 민이 엄마예요. 민이는 오늘도 선생님 뵈러 갔어요. 민이의 이 시간이 전에 없이 고맙게 느껴져요. 유행가 가사 같아서 좀 그렇지만 행복이 별것 아니라면 전 지금 행복해요. 코로나가 뭔지도 모른 채 살던 지지난해까진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이죠. 민이가 읽은 동시 한 편 보여드릴게요. “아침에 일어나니/목이 돌아가지 않는다//친구가 부르면/목을 돌려야 하는데//몸을 돌린다//근데 친구들이/이런 나를 더 좋아한다//목만 돌렸을 때보다”(몸을 돌린다, 이장근) 이 시가 새삼 다가왔어요. 요즘 아파트 사람들이 서로 잘 쳐다보지를 않아서예요.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서라고 하겠지요. 아니에요. 행색만 봐도 알잖아요. 눈인사라도 하며 지내던 사람들이 서로 외면하는 것 같아요. 일부러 그러진 않겠지만 ‘사회적 ..

댓글 교육논단 2021. 8. 27.

25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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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떠남》

앨리스 먼로 《떠남》(단편소설) 김명주 옮김, 따뜻한손 2006 칼라˙클라크 부부는 승마 강습장을 운영합니다. 수강생이 적어 생활이 어렵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마구간에 들어갔다가 안장을 매고 있는 클라크와 마주쳤다. 그것이 칼라가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다. 당시에는 클라크와의 관계가 단지 성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들 사이에는 남녀 간의 육체적 욕망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활달하고 건강미 넘치는 젊은 여성 칼라는 실비아·제이미슨 부부 집 청소를 해주며 생활합니다. 실비아는 식물학 교수이고 제이미슨은 이름난 시인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그 단조로운 삶의 리듬은 좋은 것이지만 실수는 그 리듬이 좋은 걸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클라크가 실비아를 위협해서 돈을 뜯어내자고 합니다. "신문에 ..

댓글 책 이야기 2021. 8. 25.

23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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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겨버렸다

"실례지만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군요." "텔레비전에 나오던 분 아닌가요?" 하지만 그런 질문도 잠시뿐이다. 이제 줄리엣은 책을 읽거나, 길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줄리엣을 알아보지 못한다. 짧았던 머리를 다시 길렀지만, 염색 때문에 머리카락은 예전의 윤기를 잃어버려서 은빛을 띈 갈색이 돼버렸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힘없이 흐늘거리고 있다. 마치 생전의 엄마 같다. 부드럽고 찰랑거리던 엄마의 머리칼도 점점 빛바래더니 결국 하얗게 변해버렸다. 초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찾아오는 손님도 뜸해졌다. 그러니 요리에도 도통 관심이 없다. 영양이 충분한 음식이긴 하지만, 매일 똑같은 것을 되풀이해서 먹는다.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어쨌든 점차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겨..

20 2021년 08월

20

詩 이야기 「아르보 페르트 센터」

아르보 페르트 센터 황유원 저희 센터는 탈린에서 35킬로미터 떨어진 라울라스마, 바다와 소나무 숲 사이의 아름다운 천연 반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희 센터를 방문하실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나, 버스나 자전거 혹은 두 발을 이용해 방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 센터 주차장에는 자전거 보관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탈린에서 센터까지 두 발로 걸어오는 방법입니다. 35킬로미터가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는 건 물론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멀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당신은 음악이 가까이 손 닿을 데에 있어서 그것을 찾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종소리는 또 어떻습니까. 종소리는 늘 사라짐의 장르여서 사랑받습니다. 사라지려면 우선 멀어야 하..

댓글 詩 이야기 2021. 8. 20.

18 2021년 08월

18

내가 만난 세상 이 인생의 길

"너 거기 서! 왜 거기로 다녀?" 개구멍 앞에서 그런 지적을 받으면 당장 뉘우쳤겠지요. 다시는 이 길로 다니지 말아야지. 다른 넓고 버젓한 길을 떠올리며 다짐했겠지요. 잘못은 고치면 되니까요.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하고 편리한 것인지요. 그렇지만 그건 아이들의 특권이죠. 성인의 것, 특히 노인의 것은 아니죠. 인생의 이 길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살아왔습니까?" "자네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살았나요?" "왜 그랬어. 이 한심한 사람아!......" 이런 경우 어떻게 합니까? 죽어서 다시 태어납니까?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까? 아니면 항의하거나 적극 변호합니까? "내가 잘못 살아왔다고?" "나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

16 2021년 08월

16

내가 만난 세상 "명연주 명음반 정만섭입니다"

"안녕하세요~ 명연주 명음반 정만섭입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좋다. 이 프로그램 진행자라고 할 말이 없겠나. 음악에 대해 해야만 할 말, 하고 싶은 말이 왜 없겠나.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또 시청자들 얘기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조용하다. 인사를 하고 오늘은 이런 음악을 듣겠다고만 한다. 어쩌다가 한번 이 음반은 귀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지만 그것도 그뿐이다. 간단히 하고 곧장 음악을 듣는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고맙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두 시간 음악만 듣는다. 생각만 한다. 음악만 듣고 생각만 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 나라에, 방송이 많고 많은 나라에 음악만 듣는 프로그램이 이 하나뿐이라니. 딱 두 시간뿐이라니. 어느 날 나는 자리에 눕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