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29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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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논단 학교교육의 변화를 가로막아 되돌려놓는 것 (2022.4.29)

세상이 삭막하다는 느낌일 때 학교를 바라보면 새삼스럽게 아, 저곳이 있지 싶고 아늑한 교실, 가슴 트이는 운동장, 정원, 꽃밭, 놀이터… 추억 어린 곳들이 옛 생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학교는 마지막 남은 마음속 안식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학교도 다 변했다. 우리가 가슴속에 담고 있는 그 학교는 실제로는 세상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다. 엄청나게 변해서 추억을 그대로 보여줄 만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옛 세대는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했지만, 지금은 많아 봐야 스무 남은 명이다. 아이들은 각자 책상 하나씩을 차지한다. 구타는 사라졌다. ‘사랑의 매’니 뭐니 하고 회초리 없이 어떻게 교육을 하겠느냐면서 그걸 존치하려는 교육자들이 있었고 ‘독서벌’ ‘운동벌’ ‘한자·영어 쓰기벌’ 등 ‘대체벌’이..

댓글 교육논단 2022. 4. 29.

28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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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야기 강기원「코끼리」

코끼리 강기원 오늘도 그녀는 위층 남자의 소변 소리에 잠을 깬다. 새벽 여섯 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는 오늘도 건재하시다. 누런 오줌줄기가 튀어 이마를 때리는 듯하다. 아니, 그가 뿜어내는 정액을 뒤집어쓴 듯하다. 묘한 모멸감 속에 그녀는 침상에 그대로 누운 채 한 마리 거대한 코끼리를 상상한다. 주체할 수 없는 긴 코를 새벽마다 사납게 휘두르는 코끼리. 어느 날 서커스장의 코끼리가 공연 도중 무대를 가로질러 도망갔다지. 의식 있는 코끼리라며 박수를 보냈었지. 추격 끝에 잡히고 만 코끼리가 위층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러고 보니 쿵쿵 울려오는 발소리마저 사람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 느리고 둔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녀는 코끼리 발밑에 깔린 채 숨 쉬고 밥 먹고 잠든 것이다. 알 ..

댓글 詩 이야기 2022. 4. 28.

27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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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고

나는 작별인사를 하러 왔어요(I have come to say goodbye)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의 옷과 마찬가지로 붉고 차양이 넓은, 순례자가 쓰는 모자 비슷한 것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내가 그녀 바로 옆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주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그녀의 멍한 눈길이 나를 관통하여 뒤쪽으로 나아갔다. 제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으니 언제든 원하시면...(I haveleft my address and telephone number, so that if you ever want...) 나는 문장을 완성할 수 없었고,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도 몰랐다. 카타리나 또한 내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언젠가(At one point),라고 운을 떼더니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말..

25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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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은퇴 전에 준비해놓을걸…'

은퇴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노후자금' '취미' '체력'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여가는 있는데 돈과 체력이 부족하고 뭘 할지 막연하다는 것이지요. 지난 2014년 연말에 삼성생명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조선일보 2014.12.3). 은퇴자 93명을 대상으로 돈·생활, 일·인간관계, 건강 세 가지에 대해 '무엇을 가장 후회하는가?' 물었더니 노후 여가 자금을 준비하지 않았고, 평생 즐길 취미가 없고, 운동으로 체력 단련을 못했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돈과 생활'에 대해서는 노후 여가 자금 준비를 못한 것 외에도 여행을 못했고,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고, 노후 소득을 위한 설계를 제대로 못한 것을 아쉬워하더라고 했습니다. 또 '일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취미를 개발하지 못..

22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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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책을 낸다는 것

책을 낸다는 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요? 자비출판(자신의 돈으로 책을 내어 지인들에게 뿌리는) 경우에는 아예 자신의 돈으로 그 책을 미리 다 구입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럴 일이 없지만 저작권료를 받기로 하고 출판한 경우, 책이 팔리지 않으면 본인도 비참하고 출판사에서도 실망스러워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책은 팔리지 않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작가들은 출판을 거듭하면서 실망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는, 매번 실패했음에도 '이번에는 대박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기대는 마치 카드놀이와 흡사하겠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매절'(원고료만 받고 출판사가 마음대로 하는 경우)로 넘긴 원고가 대박이 나서 출판사가 15년 간 떼돈을 벌었고, '이런 ..

댓글 책 이야기 2022. 4. 22.

20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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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야기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집의 좌우에 약초밭과 화원이 있어 어딜 가든 따라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마음이 아파도 책은 펼쳐보지 않는다. 책을 말리던 그날 네가 받쳐 들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喪兒後 初出湖上 悲悼殊甚 詩以志之 藥圃花園屋左右(약포화원옥좌우) 閑居何處不從行(한거하처불종행) 傷心未忍開書帙(상심미인개서질) 曬日他時憶爾擎(쇄일타시억이경) 영조 시대에 천재로 알려진 지산(芝山) 심익운(沈翼雲·1734~?)이 어린 딸을 잃고 썼다. 사는 집의 좌우 양편에는 약초밭도 있고 화원도 있어 한가로이 집에 머물 때면 자주 나가봤다. 그때마다 딸은 꼭 뒤따라 나와 함께 걸었다. 이제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약초밭이고 화원이고 가질 않는다. 그나마 아픈 마음을 잊기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텐데 그 책도 펼치..

댓글 詩 이야기 2022. 4. 20.

18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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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야기 「풍뎅이 두 마리가 사랑하고 있었다」

풍뎅이 두 마리가 사랑하고 있었다 김 윤 식 몸을 포갠 저것들 떨어지지 않게 위에 있는 놈이 밑의 놈을 꽉 껴안고 있다 남의 눈을 피하려는 듯 기쁨의 소리를 죽인 채 밑의 놈이 버둥거리며 나아간다 몸을 섞어 하늘 아래 한몸을 이루는 일 참 환하고 부끄럽다 잔등에 녹황綠黃 광택을 입은 풍뎅이 두 마리가 사랑하고 있다 ――――――――――――――――――――――――――――――――――――――――――――― 김윤식 1947년 인천 출생. 1987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고래를 기다리며』 『북어·2』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저문 종소리를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옥탑방으로 이사하다』 『길에서 잠들다』 『청어의 저녁』 2014년 7월 『현대문학』 에서 이 시를 읽을 때는 교미 중인 풍뎅이의 우스꽝스럽고..

댓글 詩 이야기 2022. 4. 18.

17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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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그리운 제라늄

# '이쁜준서' 님 블로그 《봄비 온 뒤 풀빛처럼》에는 화초 얘기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라늄 이야기가 등장해서 그 블로그 검색창에 제라늄을 넣어봤더니 스물네 가지쯤 올라와 있었습니다. 단어까지 치면 아마 수백 개가 될 것입니다. '하필 제라늄을 왜?' 제라늄 화분을 '옥상정원'에서 월동시켰는데 지금 아주 고운 꽃이 피었다고 해서 '그게 본래 그런(기특한! 든든한!... 그런) 녀석이었구나' 싶었습니다. # 내가 교사였을 때는 '1인 1화분' 시책이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1인 1화분'? 그 왜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한 학년 올라가면 교실이 바뀌고, 그 교실 환경을 그럴듯하게 조성하면서 창가에는 아이들이 가져온 화분을 올려놓곤 했지 않습니까? 초임의 산촌 학교에서는 1인 1화분을 하지 않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