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02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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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소설 《행복한 그림자의 춤》 곽명단 옮김, 뿔 2010 편하다. 읽으면서 내가 구태여 그 흐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런 느낌이다.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는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는 외판원 아버지지 이야기다. 감기약, 철분 영영제, 티눈 약, 변비약, 부인병에 좋은 알약, 구강 청결제, 샴푸, 로션제와 연고, 레몬과 오렌지와 라즈베리 따위의 음료용 농축액, 바닐라 향료, 식용 색소, 홍차와 녹차, 생강, 정향유 따위의 양념들, 그리고 쥐약 같은 것들을 판다. 아버지는 이런 노래를 지어서 부른다. 티눈 약부터 부스럼 약까지 연고라면 갖가지 다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어느 날 딸을 데리고 트럭에 올랐는데 장사는 되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댓글 책 이야기 2021. 9. 2.

25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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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떠남》

앨리스 먼로 《떠남》(단편소설) 김명주 옮김, 따뜻한손 2006 칼라˙클라크 부부는 승마 강습장을 운영합니다. 수강생이 적어 생활이 어렵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마구간에 들어갔다가 안장을 매고 있는 클라크와 마주쳤다. 그것이 칼라가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다. 당시에는 클라크와의 관계가 단지 성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들 사이에는 남녀 간의 육체적 욕망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활달하고 건강미 넘치는 젊은 여성 칼라는 실비아·제이미슨 부부 집 청소를 해주며 생활합니다. 실비아는 식물학 교수이고 제이미슨은 이름난 시인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그 단조로운 삶의 리듬은 좋은 것이지만 실수는 그 리듬이 좋은 걸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클라크가 실비아를 위협해서 돈을 뜯어내자고 합니다. "신문에 ..

댓글 책 이야기 2021. 8. 25.

07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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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신의 호텔》

빅토리아 스위트 《신의 호텔》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이야기 김성훈 옮김, 미래엔(와이즈베리) 2014 주제넘지만 죽을 때 이런 병원이라면 좋겠다. 라구나 혼다 병원은 빈민구호소almshouse이며 프랑스에서는 이런 곳을 '신의 호텔'이라고 부른단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의대 빅토리아 스위트 교수가 미국 최후의 빈민구호소 라구나 혼다에서 외과의사로 일한 이야기다. 두 달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러 갔다가 인간 중심의 진료, 충분한 시간에 환자의 몸과 마음, 환경을 돌보는 '느린 의학'에 끌려 20여 년 혁신적·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녀는 첫 부검 때, 병리학자가 전기톱을 들고 그녀가 처음 진료를 맡았던 베이커 씨의 흉곽을 열어 폐와 심장을 꺼내 무게를 재고 복부에서 간, 비장, 췌장, 신장 등을 꺼..

댓글 책 이야기 2021. 8. 7.

03 2021년 08월

03

책 이야기 최은영 단편 《답신》

그렇게 지내서는 안 될 사이에 담을 쌓고,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게 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연이야 개별적인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그런 일에 대해 막막한 느낌입니다. 어찌할 수가 없다는 한계를 느낍니다. 젊었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뿐입니다. 이것이 늙음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르렸습니다. 이건 누가 고치라고 한다고 고쳐질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넉넉지 않다는 현실적인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은, 어렴풋한 아니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얘기할 필요도 느끼지 않고 그럴 힘도 없습니다. 그런 얘기 한 편의 여러 장면에서 '현재' '과거' '관..

댓글 책 이야기 2021. 8. 3.

26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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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위대한 수업》

에스퀴스 선생님의 《위대한 수업》 평범한 아이를 특별한 아이로 바꾸는 기적의 교육법 레이프 에스퀴스 지음, 박인균 옮김, 추수밭 2008 운동선수와 스타 연예인을 과학연구원이나 소방대원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런 세상에서 사려 깊고 총명한 개인을 키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너무나 많은 훌륭한 교사와 부모들이 그들의 잠재된 재능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실패도 배우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평소 아이들이 실험을 할 때 끼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은 도구가 문제였다. (...) 그 여자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나는 한순간이라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교육계에는 허풍쟁이들이..

댓글 책 이야기 2021. 7. 26.

24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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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냄새를 분류해서 보관한 거대한 집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열린책들 1991)에서 이 부분을 찾으려고 또 읽었습니다. 어디 중간쯤에 나오는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다행히 62쪽쯤에 나왔습니다. 아예 여기에 필사해 놓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에는 깬 상태로, 그 후에는 꿈속에서 자신의 기억에 보관된 거대한 냄새의 폐허 속을 뒤지고 다녔다. 그는 수백만 가지의 냄새를 검사해서 체계적인 질서에 따라 배열했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 섬세한 냄새와 조잡한 냄새, 악취와 향기를 따로따로 분류했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 그의 분류는 점점 더 자세해져서 냄새의 목록은 더 풍부하게 세분화되었고 그 체계가 더욱 뚜렷해졌다. 이제 곧 처음에 계획한 대로 냄새의 건물을 짓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집과 담, 계단과 탑, 지하실과 방, 감추..

댓글 책 이야기 2021. 6. 24.

20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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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인간 인터넷 INTERNET OF US》

마이클 린치 《인간 인터넷 INTERNET OF US》 이충호 옮김, 사회평론 2016 사물 인터넷이 모든 것의 인터넷, 인간 인터넷이 되어가는데 대해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미래에 다가가야 한다는 전망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책인지 요약하거나 기억해야 한다면 다음 부분을 발췌하고 싶다. 서양 역사에서 무엇을 지식으로 간주할지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 결정한 주체는 교회였다. 이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은 대체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기록되는 내용을 통제하는 능력에 있었다. 교회는 대학을 운영했고, 텍스트를 (손으로) 베끼는 행위를 통제했다. 물론 인쇄 혁명 후에는 이런 상황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198) 사물 인터넷과 네트워크화된 인식 주체는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지식의 정치..

댓글 책 이야기 2021. 6. 20.

07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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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6(3판) 안티고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해서 아들 둘, 딸 둘을 둔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의 맏딸입니다. 어머니가 낳은 딸이니까 그렇게 따지면 동생이기도 하겠네요. 나는 이 비극을 읽고,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인 일이나 라이오스의 아내 그러니까 자신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한 일에 대해 그를 원망하는 건 뭔가 마땅하지 못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코린토스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살아가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코린토스를 떠나 테바이의 ..

댓글 책 이야기 2021.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