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03 2021년 05월

03

책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할머니의 목소리

전화를 통해 듣는 할머니 목소리가 묘사되어 있는 걸 봤습니다. 2010년 12월 17일 늦은 밤, 그런 할머니는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기록되는 할머니, 이렇게 소중한 목소리로 기억되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 것인지 한 자 한 자 필사를 하던 초겨울 밤이 있었습니다. 그 밤,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이 포스팅에는 댓글란을 두지 않았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할머니가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적마다 나는 할머니가 내게 하는 말을 언제나 두 눈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그 얼굴의 펼쳐놓은 악보에 비추어 따라 읽었을 뿐 할머니의 목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는..

댓글 책 이야기 2021. 5. 3.

07 2018년 04월

07

내가 만난 세상 판모밀

# 퇴근을 하려는데 S가 '판모밀'을 먹어봤냐고 물었습니다. 칼국수는 아니라 해도 짜장면이나 짬뽕, 콩국수 정도에서 벗어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더니 '그럼 그렇지!' 빙그레 웃으며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판모밀이란 것의 '마니아'인 듯해서 '나는 이런 것에조차 뒤졌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근무하는 학교는 그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 중 한 곳에 있었습니다. 판모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오르기도 했고, 묘한 음식을 파는 그 일식당이 학교에서 아주 가까워서 그것도 좋았습니다. # 그가 종업원에게 '호기롭게' 혹은 둘이 왔으니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판모밀 2인분!" 했고 우리가 뭔가 몇 마디 나누는 사이 곧 그 판모밀이라는 '물건'이 나타났습니다. '이게 판모밀이구나!' 그건..

28 2016년 11월

28

詩 이야기 「마음이 너무 많아서」

『현대문학』(2016.8)에서 평론 「너에게 이르는 길 : '나는 너다'의 모습들」(김종훈)을 읽다가 「마음이 너무 많아서」라는 시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눈을 내려볼게요. 마술사처럼 나도 '짠' 하고 하얀 추억들을 뿌려야겠어요. 너무 많이 우는 우리 엄마, 너무 많이 미안해하는 우리 아빠, 너무 많이 슬픔을 삼키는 우리 언니, 너무 많이 힘들어하는 내 단짝 주희, 내가 너무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너무 많은 마음 위에 깨끗한 눈송이들을 조금씩만 골라보았어요. 마음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오래오래 곁으로 보낼게요. 비가 오면 손을 뻗고요, 눈이 오면 혀를 내밀어주세요. 별이며 달이며, 자세히 보면 새로운 모양일 거예요. 제가 제 맘대로 디자인한 거예요. 좋다, 하고 말해주세요. "김소연, 「마음이 너무 많아..

댓글 詩 이야기 2016. 11. 28.

17 2016년 02월

17

11 201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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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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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그림 『얼굴 빨개지는 아이』 김호영 옮김, 열린책들 별천지 2009 초등학교 졸업 때였습니다. 중학교에 가려면 호적초본인가 뭔가를 떼어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면사무소는 6년간 오르내린 학교 앞 도로변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곳에 들어갔는데, 그걸 떼는 건 예상외로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건물 계단을 내려오며 주루룩 눈물을 흘렸고, 그러다가 자칫하면 굴러떨어질 뻔했습니다. 그런 아이였던 내가, 이렇게 뻔뻔해졌습니다. 웬만해선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저들과 상대하고 저들을 누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지, 겉으론 이렇게도 뻔뻔하고, 이렇게 뻔뻔한 척밖에 못하는 것인지, 아이들이나 볼 것..

댓글 책 이야기 2014. 9. 24.

14 2013년 08월

14

내가 만난 세상 그렇게 더워요?

남양주시청에서 발간하는 『쾌한도시』 8월호 표지 뒷면입니다. 전철을 타고 오며 펼쳤습니다. 철썩 철썩 파도소리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빠, 엄마와 함께 쌓던 모래성, 혹시라도 파도에 쓸려 내려갈까 조심조심 토닥이며 한 단, 한 단 모래를 쌓으면 아슬아슬한 나만의 성이 맞이해 준다. 이 글과 그림을 보며 아무것도 없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나의 여름방학들을 생각했습니다. '모래성'은 무슨…… '아빠, 엄마'는 무슨…… 나는 방학만 되면, 방학숙제를 했다 하면, 커다란 수박과 넓고푸른 바다를 그렸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 위의 저런 그림과 글들이 주는 막연한 '기대'를 생각하고 그리워했습니다. 내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겠지 이번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그렇게 여섯 번의 여름방학과 여..

07 2013년 06월

07

내가 만난 세상 '고추잠자리'(조용필)에 대하여

무대에서 내려서면 시지몽은 더이상 대수로울 게 없다. 두 시간 후엔 그가 밖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을 일러 인생은 하나의 꿈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지몽 뒤에 또다른 사람이 온다. …(중략)… 이렇게 수많은 세기들과 수많은 정신들을 휩쓸고 자신이 될 수 있는 혹은 자신이기도 한 사람을 흉내냄으로써, 배우는 그 다른 부조리한 인간인 나그네와 많은 공통점을 갖게 된다. 나그네와 마찬가지로, 그는 무엇인가를 소모시키면서 끊임없이 움직여 나아간다. 그는 시간 속의 나그네이며, 그것도 잘해봤자 영혼들에게 추적당하면서 쫓기는 나그네인 것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살하기보다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렇게 썼다.1 배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