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22 2021년 09월

22

내가 만난 세상 내 눈

어머니는 구석에 웅크린 채 책을 읽었다. 편한 자세로, 천천히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맨발을 다리 아래로 감추고 책을 읽었다. 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책 위로 굽히고, 책을 읽었다. 등을 웅크리고, 목은 앞쪽으로 숙이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초승달처럼 하고 책을 읽었다. 얼굴은 반쯤 검은 머리칼로 가린 채, 책장 위로 몸을 구부리고 책을 읽었다. 내가 바깥 뜰에서 놀고, 아버지는 자기 책상에 앉아 연구하며 갑갑한 색인 카드들에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 저녁 책을 읽었고, 저녁 먹은 것들을 다 치운 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아버지와 내가 함께 아버지 책상에 앉아, 내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아버지 어깨에 고개를 가볍게 대고, 우표를 분류하고, 분류 책에..

16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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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서귀포 이종옥 선생님

오랫동안 교육부에서 근무하다가 용인 성복초등학교에 가서 이종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 선생님들은 모두 이종옥 선생님 후배여서 그분을 "왕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왕언니"라는 호칭은 거기서 처음 들었기 때문에 매우 신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매우 미워했습니다. 교육부에서 내려온 교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이 나를 그렇게 미워한 사실을 나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교육부에서 교장이 되어 온 것이 미운 것이 아니라 교육부 직원이었기 때문에 미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만큼 미웠는가 하면 "교육부에서 교장이 온다고 해서 당장 사직을 하려다가 교육부에서 근무한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교원들이 그렇게들 미워하는가 직접 만나보기나 보고 명퇴를 하겠다"고 그 학교 교직원들에게 공언했다는 것이었습니..

15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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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21년 08월

23

내가 만난 세상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겨버렸다

"실례지만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군요." "텔레비전에 나오던 분 아닌가요?" 하지만 그런 질문도 잠시뿐이다. 이제 줄리엣은 책을 읽거나, 길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줄리엣을 알아보지 못한다. 짧았던 머리를 다시 길렀지만, 염색 때문에 머리카락은 예전의 윤기를 잃어버려서 은빛을 띈 갈색이 돼버렸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힘없이 흐늘거리고 있다. 마치 생전의 엄마 같다. 부드럽고 찰랑거리던 엄마의 머리칼도 점점 빛바래더니 결국 하얗게 변해버렸다. 초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찾아오는 손님도 뜸해졌다. 그러니 요리에도 도통 관심이 없다. 영양이 충분한 음식이긴 하지만, 매일 똑같은 것을 되풀이해서 먹는다.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어쨌든 점차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겨..

18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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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이 인생의 길

"너 거기 서! 왜 거기로 다녀?" 개구멍 앞에서 그런 지적을 받으면 당장 뉘우쳤겠지요. 다시는 이 길로 다니지 말아야지. 다른 넓고 버젓한 길을 떠올리며 다짐했겠지요. 잘못은 고치면 되니까요.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하고 편리한 것인지요. 그렇지만 그건 아이들의 특권이죠. 성인의 것, 특히 노인의 것은 아니죠. 인생의 이 길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살아왔습니까?" "자네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살았나요?" "왜 그랬어. 이 한심한 사람아!......" 이런 경우 어떻게 합니까? 죽어서 다시 태어납니까?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까? 아니면 항의하거나 적극 변호합니까? "내가 잘못 살아왔다고?" "나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

12 2021년 08월

12

내가 만난 세상 누리장나무에게

누리장나무를 처음 발견한 건 내가 참 쓸쓸한 때였다. '뭐지?' 모습은 그럴듯하지만 냄새가 실망스러워서 전체적 인상은 '꺼림칙한 나무'였다. '내가 여기서 나쁜 냄새를 맡아 더 쇠약해지면 또 드러눕는 수밖에 없겠지?' 악취가 내 심장을 짓눌러 쪼그라들게 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 나무가 가까워지면 숨을 충분히 들이마신 다음 마치 엑스레이 사진을 촬영할 때처럼 숨을 참으며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가서 더 이상 숨을 참다가는 무슨 수가 날 것처럼 고통스러울 때에 이르러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쉬면서 그 고통으로 헐떡이곤 했다. 이렇게 해서 이 길이 어떻게 좋은 산책로가 되겠는가. 그 나무는 또 한 군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인터넷 검색창을 떠올리고는 그날 저녁 내내 찾아다니다가 밤..

08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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