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12 2021년 07월

12

내가 만난 세상 지난겨울은 행복했네

이만큼 쓸었는데 다시 눈이 내립니다. 올라가서 다시 쓸어내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추위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눈 치우는 도구는 껑충한 대나무 비 하나뿐입니다. 눈이 그치지 않는 것도 걱정입니다. 일간 나가야 하는데 눈이 그치지 않을 것 같아 난감합니다. 사정은 늘 그랬습니다. 언제나 달라지면 더 나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달라져봤자 다 내리막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게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어 두려움 같은 것으로만 다가옵니다. 눈을 다 쓸었다고 해서 마음이 비워지지 않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행복했습니다. 지난겨울은 행복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19 2021년 01월

19

詩 이야기 「눈 내린 아침」

눈 내린 아침 조영수 지워졌다 깨끗한그리운기다리던보고싶은 솜털같은백설기같은솜사탕같은 꾸밈말들 다 지워지고 와!만 남았다. 미래동시모임동인지 《지구를 꺼 볼까》(2020, 아동문예) 어제는 정말 많이도 내렸습니다. 오후에는 구름처럼 일어나서 몇 굽이 산자락을 가볍게 넘어가 버리는 무서운 눈보라도 보았습니다. 다 요절낼 것 같았는데...... 시인은 새벽에 일어나 세상을 덮은 눈을 보신 것 같습니다. 깨끗한 그리운 기다리던 보고 싶은 솜털 같은 백설기 같은 솜사탕 같은...... 그런 말 다 지워(치워) 버리고 와! 하던 기억이 오롯합니다. 나도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첫새벽 저 눈 같은 사람......

댓글 詩 이야기 2021. 1. 19.

15 2020년 12월

15

내가 만난 세상 눈에 갇히지 않으려고 애쓰기

지난 일요일, 새벽까지는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눈이 와?" "오긴 뭐가 와?" 아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이런..... 일기예보는 분명했으므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전날 일찌감치 저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눈이 내리지 않는 건, 눈이 내릴 거라면서 얼른 나가자고 재촉한 내 촌스러운 입장을 난처하게 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마침내(!) 눈이 내렸습니다. '보라고! 창밖 좀 내다보라고!' 나는 말없이, 소리없이 외쳤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충분했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퉁명스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눈은 한꺼번에 내렸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더 더 더 풀렸습니다. "서둘러 떠나시기를 잘 하셨습니다. 저도 서둘러 들어오기를 잘했습니다." 저곳으로 들어간 친구가 저곳으로부터 탈출해온 나에게 저..

15 2018년 12월

15

詩 이야기 「한밤의 일을 누가 알겠어요」

한밤의 일을 누가 알겠어요 황인숙 어젯밤 눈 온 거 알아요? 어머, 그랬어요? 아무도 모르더라 토요일 밤인 데다 날도 추운데 누가 다니겠어요 저도 어제는 일찍 들어갔어요 한밤의 일을 누가 알겠어? 우리나 알지 4월인데 눈이 왔네요 처음에는 뭐가 얼굴에 톡 떨어져서 비가 오나 하고 가슴 철렁했는데, 싸락눈이더라구 자정 지나서는 송이송이 커지는 거야 아, 다행이네요 그러게, 비보다는 눈이 낫지 동자동 수녀원 대문 앞 긴 계단 고양이 밥을 놓는 실외기 아래 밥그릇 주위에 졸리팜 곽 네 개 모두 뜯긴 채 흩어져 있었지 빠닥빠닥 블리스터들도 빠짐없이 비어 있었지 졸리팜 가루 같은 싸락눈 쏟아지던 밤이었지 ―――――――――――――――――――――――――――――――――――――――― 황인숙 1958년 서울 출생. 198..

댓글 詩 이야기 2018. 12. 15.

23 2018년 03월

23

詩 이야기 「작은 집」

작은 집 김행숙 리셋하자, 드디어 신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신의 말에 순종하여 밤낮으로 흰 눈이 내리고, 흰 눈이 내리고, 흰 눈이 내려서…… 이 세상 모든 발자국을 싹 지웠네. 보기에 참 아름답구나. 그런데…… 신이란 작자가 말이지, 이 광활한 세계를 한눈에 둘러보느라 시야가 너무 넓어지고 멀어진 나머지 조그만 집 한 채를 자기 속눈썹 한 올처럼 보지 못했다지 뭔가. 옛날 옛적에 잃어버린 꽃신 한 짝과 같은 그 집에는 늙은 여자 혼자 살고 있었다네. 어느덧 늙어서 동작도 굼뜨고 눈도 침침하고 기억하는 것도 점점 줄어들어 인생이 한 줌의 보리쌀 같았대. 늙은 여자 한 명이 날마다 불을 지피는 세계가 있고, 마침내 늙은 여자 한 명이 최후의 불꽃을 꺼뜨린 세계가 있어서, 신이 견주어본다면 이 두 개의 시..

댓글 詩 이야기 2018. 3. 23.

25 2017년 11월

25

내가 만난 세상 눈 온 날 아침

마침내 2017년의 눈까지 내렸다. 첫새벽에 내려서 눈이 내린 것도 모르고 있다가 날이 다 밝은 뒤 창문 너머 눈 풍경을 보았고 늦잠을 잔 것이 아닌데도 무안한 느낌이었다. 너무 멀어진 날들의 겨울방학과 방학책들이 생각났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본 방학책이었는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받은 방학책이었는지, 이젠 그것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눈이 내려 저렇게 쌓였다. 그새 눈이 내려 저렇게 쌓이다니……. 이렇게 내린 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낸 나는 눈이 내렸다고 이러고 있지만 눈 같은 건 내려도 그만 내리지 않아도 그만인 채 지내고 있을까?

11 2017년 02월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