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16 2021년 09월

16

내가 만난 세상 서귀포 이종옥 선생님

오랫동안 교육부에서 근무하다가 용인 성복초등학교에 가서 이종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 선생님들은 모두 이종옥 선생님 후배여서 그분을 "왕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왕언니"라는 호칭은 거기서 처음 들었기 때문에 매우 신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매우 미워했습니다. 교육부에서 내려온 교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이 나를 그렇게 미워한 사실을 나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교육부에서 교장이 되어 온 것이 미운 것이 아니라 교육부 직원이었기 때문에 미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만큼 미웠는가 하면 "교육부에서 교장이 온다고 해서 당장 사직을 하려다가 교육부에서 근무한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교원들이 그렇게들 미워하는가 직접 만나보기나 보고 명퇴를 하겠다"고 그 학교 교직원들에게 공언했다는 것이었습니..

08 2021년 03월

08

내가 만난 세상 은행나무 아래 그 소녀의 일기장

육십여 년 비밀을 지켰네. 철저히 그 비밀을 지켰네. # 추석이 지나고 은행나무잎에 물이 들고 운동회가 다가왔습니다. 운동회 연습 때문에 오후 수업은 없어졌습니다. 그래 봤자 사시사철 아프고 사시사철 일에 지친 우리 엄마는 학교에 올 수도 없는 운동회였습니다. 점심을 굶은 채 운동회 연습에 시달린 오후, 혼자 은행나무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쉬는 시간의 그 운동장에 전교생의 반은 쏟아져 있는데도 거기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 거기 그 소녀의 까만 가방이 보였습니다. 어른들은 농사를 짓거나 기껏해야 장사를 하는데 그 아이만은 그렇지 않았고 그걸 증명하듯 꽃무늬가 수 놓인 가방을 갖고 다니는 소녀. 요즘의 쇼핑백처럼 학용품을 넣고 꺼내기가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그 소녀. 4교시 후에 선생님이 되돌려준 일기..

21 2020년 09월

21

내가 만난 세상 외손자와 놀던 곳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 계곡으로 들어갔다 나오곤 합니다. 그때마다 이 개울을 확인합니다. 녀석이 어디쯤에서 바지를 걷고 물속을 들여다보았지? 할머니는 어디서 녀석을 바라보았지? 그때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 대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한 해 월반을 해서 지금은 대학 2학년입니다. 코로나만 아니면 훨씬 더 좋겠는데, 매일처럼 홍대 앞에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잘 지내기를, 내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신나는 나날이기를 저곳에서 생각하고, 다시 올라갑니다.

03 2016년 06월

03

30 2015년 06월

30

내가 만난 세상 "어디 갔다 이제 오니?"

그 식당에는 정자 같은 좌석들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앉아서 바라보는 한낮의 유월 하늘이 너무나 맑고 시원해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떠오르고 무척 미안했습니다. 얼마나 덥겠습니까? 가뭄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요즘은 전화도 오지 않습니다. 추석이 오거나 가을걷이를 해놓아야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미안한 일입니다. 전화를 받기만 했습니다. 일하는데 전화를 하면 방해가 될 것이라는 건 핑계입니다. '아! 소 먹일 시간이 아닌가?' 며칠 전에는 시내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전철역에서 난데없이 그런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늦지 않을까?', '뭐라고 꾸중을 듣지 않을까?'…… 그러다가 이곳은 서울이고, 지금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갈 수도 없는, 21세기의 어느 날, 2015년 6월이라는..

24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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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그림 『얼굴 빨개지는 아이』 김호영 옮김, 열린책들 별천지 2009 초등학교 졸업 때였습니다. 중학교에 가려면 호적초본인가 뭔가를 떼어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면사무소는 6년간 오르내린 학교 앞 도로변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곳에 들어갔는데, 그걸 떼는 건 예상외로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건물 계단을 내려오며 주루룩 눈물을 흘렸고, 그러다가 자칫하면 굴러떨어질 뻔했습니다. 그런 아이였던 내가, 이렇게 뻔뻔해졌습니다. 웬만해선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저들과 상대하고 저들을 누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지, 겉으론 이렇게도 뻔뻔하고, 이렇게 뻔뻔한 척밖에 못하는 것인지, 아이들이나 볼 것..

댓글 책 이야기 2014. 9. 24.

08 2014년 02월

08

내가 만난 세상 눈 내리는 날

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그렇게 많이 내려 쌓이진 않았지만, 흡사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내리는 것처럼, 추억이 떠올랐다가 스러지는 것처럼, 예전처럼,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고 이리저리 흩날리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 옛 생각에 젖어들게 됩니다. 그대도 그렇습니까? 옛 생각을 하게 됩니까? 그 옛 생각이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의 눈발을 내다볼 때마다 어느 한 시기의 일들에 고정되는 생각들입니다. 대부분 어려웠던 시절에 생각이 머무는 걸 보면, 좋았던 일들보다 어려웠던 일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상한 것은, 지금 눈 내리는 모습을 내다보며 생각하는 그 일들이, 다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렇게 그리워하게 될 줄을 전혀 몰랐던 일들입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