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17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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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책갈피 속의 옛 편지

어느 시인이 그동안 낸 시집을 한꺼번에 보냈습니다. 한 권 한 권 헌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훗날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이 헌사들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했습니다. 중고본을 구입한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생일'"의 면지에는 이런 헌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에게 뉴질랜드에서 뜻깊은 인생 공부를 하고 온 걸 축하하며... 2007. 5. 31. ○○○ 드림 색바랜 책을 펴보면 이 집 저 집 그 책을 가지고 이사를 다닌 지난날들이 떠오릅니다. 내 메모든 전 주인의 메모든 혹은 보내준 사람의 메모든 면지에 적힌 메모가 있으면 일삼아 들여다봅니다. 사놓고 내내 읽지 못한 책 속에서 주인을 잃은 편지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안녕하신지 문안드립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저께는 조금 기다려졌습니다. 기다린다는 ..

댓글 편지 2021. 5. 17.

11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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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선생님께 - 어느 독자의 편지

2010년 2월 11일에 이 블로그에 실은 편지입니다. 이번에 블로그 시스템이 바뀌면서 글자는 잘 보이지도 않고 그나마 글씨체가 아주 이상해서 그대로 두기가 민망했습니다. 좀 잘난 척하려고 각주를 하나 달아 놓았었는데, 각주가 달린 글은 수정이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이 오늘 날짜로 새로 싣게 되었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은 6년 만인 1016년에 딱 하나가 달렸습니다. 그것을 옮기고 댓글란은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선생님. 몸 관리 잘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리곤 했는데 기어코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군요. ..

댓글 편지 2020. 9. 11.

19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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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카라얀의 지휘」

젊은 시절의 그의 지휘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실로 시원시원하고 늠름한 몸짓이었다. 70년대 후반까지는 신체의 움직임도, 지휘봉을 휘두르는 방식도 활달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다리를 끄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신체의 움직임이 점점 적어지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갔다. 만년에는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서서 지휘봉으로 그저 몇 번 공간을 날카롭게 찌르는가 싶더니, 공중을 나는 듯이 조용히 휘두르고는 지휘봉을 쥔 손을 들어 올린 채 멈추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것은 지휘를 한다기보다, 거기에 울리고 있는 오케스트라를 듣고 있는 모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멋지게 지휘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니 놀랍다. 이우환(에세이)「카라얀의 ..

16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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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 코이 잉어

작가들은 품위 있게 이야기할 줄 안다. 그러니까 작가겠지? 박선우의 단편 「밤의 물고기들」에는 코이 잉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코이 잉어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춰 성장하는 물고기"인데, 가정용 어항에서는 5센티미터, 큰 수족관에서는 30센티미터까지, 강에 풀어놓으면 1미터가 훌쩍 넘게 커진다. 사는 곳의 면적이 코이 잉어의 체적을 결정하는 것이다. 온기나 낙관, 선善과 선의에 대한 상상력은 코이 잉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없다고 생각하면 없고, 작다고 생각하면 겨우 머물지만, 어디에나 있고 틀림없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반드시 존재하며 하염없이 부피와 무게를 늘린다. 박선우의 소설 덕분에 나는 코이 잉어의 크기를 조금 더 키울 수 있게 되었다. 편혜영의 에세이 「내가 기대하는 작가 박선우|..

댓글 학교교육 2020. 7. 16.

14 2020년 07월

14

내가 만난 세상 그리운 그때 그녀의 그 윙크

'나'는 '잔'과 헤어집니다. '잔'은 헤어지지 말자고 하지만 돈도 없고 어쩔 수도 없습니다. '나'는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찰스 부코스키 『팩토텀』문학동네, 2017, 181~182). 잔은 나를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 바깥에 내려주었다. 그녀는 내가 간신히 짐 가방을 내려놓을 시간만큼만 차를 세웠다가 곧바로 출발해버렸다. 나는 대합실로 들어가 표를 샀다. 그런 다음, 안쪽으로 걸어가 등받이가 딱딱한 긴 의자에 다른 승객들과 함께 앉았다. 우리 모두는 거기에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러고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는 껌을 씹었고, 커피를 마셨고, 화장실에 갔고, 소변을 봤고, 잠을 잤다. 우리는 딱딱한 긴 의자에 앉아서 그다지 피우고 싶지 않았던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서..

11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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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나의 노후·사후

십이층 할머니는 내 또래였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눈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그녀의 아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그제야 '우리'(그녀와 나)가 한동안 만나지 못한 걸 알아챘습니다. “가까운 요양원에 모셨는데 오늘 생신이셔서 외출 나왔습니다!” 아들은 가까이 모셨고 외출까지 시켜주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그렇게 설명했고 그런데도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녀는 눈에 힘이 빠진 채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하니까 우리는 그만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괜히 그녀를 자주 떠올려보곤 합니다. 정말 괜히! 이층 할머니는 자그마한 키에 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만날 때마다 무슨 얘기든 해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꽤나 곱다고 생..

08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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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순수 박물관 2》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2》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케말은 영화인 페리둔의 아내가 되어버린 유부녀 퓌순을 그리워하고 다가가고 싶은 욕망을 일일이 설명한다. 두려움, 초조함, 고통, 번민, 고뇌, 환희, 상심, 분노, 반성, 후회, 다짐, 상심, 슬픔, 희망, 기대…… 사랑에 빠져서 헤어날 길 없는 마음의 변화를 낱낱이 보여준다. 무려 8년간! 일주일에 네 번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하고 통금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그 집을 나선다. 정확히 칠 년하고도 열 달간, 퓌순을 만나러 저녁 식사 시간에 추쿠르주마로 갔다. 처음 간 것은 네시베 고모가 “저녁때 와요!”라고 말한 지 십일일 후인 1976년 10월 23일 토요일이고, 퓌순과 나와 네시베 고모가 추쿠르주마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것이 1984년 ..

댓글 책 이야기 2020. 7. 8.

07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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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순수 박물관 1》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1》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행복을 지킬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평온으로 내 온몸을 감쌌던 그 멋진 황금의 순간은 어쩌면 몇 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 행복이 몇 시간처럼, 몇 년처럼 느껴졌다. 1975년 5월 26일 월요일, 3시 15분경의 한 순간은, 범죄나 죄악, 형벌, 후회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세상이 중력과 시간의 규칙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더위와 사랑의 행위로 땀에 흠뻑 젖은 퓌순의 어깨에 입을 맞추고,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천천히 그..

댓글 책 이야기 202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