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 캐나다

단풍나무 2011. 4. 18. 02:06



캐나다의 공공의료 1편에서는 캐나다 국민(영주권자 포함)이 받는 의료혜택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2편에선 그 제도와 개념 그리고 계속되는 논쟁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캐나다 시민, 영주권자들의 모든 의사진료 및 병원내에서의 치료와 약값은 정부가 낸다. “무료라는 표현 보다는 비용을 정부가 지불한다는 말이 더 맞다. “무료라고 하면 의사 및 병원이 공무원이나 정부 기관(보건소) 처럼 보이겠지만 병원은 모두 사설 기관 (물론 비영리재단이 많음)이며 의사들도 한국 처럼 병원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고 개인 병원을 개업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명의 전문의가 모여서 기업 형태로 여러 종합병원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도 많다고 한다. 의료비를 환자에게 청구하지 않고 보험공단에 청구하는 한국의 의료보험과 매우 유사한데 거의 모든 진료와 병원내 치료에 대해서 개인에게 청구하는 금액이 없다고 보면 된다. 또한 의료비를 지불하는 돈의 출처가 정부 예산 (세금)이라는 것이 의료보험과는 다른 점이다. 병원 또는 의사는 모든 비용을 주정부(한국의 도청)에 청구한다. 주정부는 의료비에 대해 연방정부의 보조를 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시행되는 의료제도는 주마다 약각씩 다르지만 전체적인 의료체계가 전국적으로 동일한 개념하에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의료는 캐나다에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게 시행되는 것이므로 캐나다 영토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 어디에서라도 믿을 만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청구 (이 경우는 치료 받은 개인이 사후 청구를 하게 됨)를 하면 정부는 그 비용을 지불한다. 미국과 붙어있다보니 미국에 가서 아예 사는 사람들도 있고 캐나다에서 수술을 기다려야 되는 경우엔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는 경우도 많다. 캐나다 주정부들에서 미국 병원에 지급하는 돈이 한해에 30억불(3조원)가량 된다는 이야기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중의 상당수가 캐나다정부의 연금을 받으면서 아예 플로리다에 가서 사는 노인들의 병원비라고 한다. 그래서 2006년 부터는 6개월이상 해외에서 거주하는 경우에는 의료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공짜 치료라서 의료의 가짜 수요, 과다 수요가 생길 수도 있지만 실수요 중심으로 상당히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1차진료를 담당하는 가정의 (Family Doctor) 제도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까운 동네 병원 (개업의사 또는 가정의를 여러명 고용하고 간단한 피검사, 촬영실을 갖춘 중견 병원)에 담당 의사를 정해두고 정기검진과 감기와 같은 간단한 치료와 처방을 받는다. 가정의는 간단한 병은 직접 치료하고 심각하거나 확실치 않아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2차진료병원 (한국의 3차진료기관)에 있는 해당 전문의에게 예약을 해주고 자기 환자를 그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보낸다. 환자가 직접 좋다는 병원 여기 저기 찾아 다니지 않기 때문에 건강/병력등이 한 명의 가정의에게 기록되어 있어 매우 효울적이다. 또한 이런 제도 때문에 감기 환자가 서울대학병원이나 삼성의료원등의 내과 전문의를 만나는 비효율도 없다. 가정의를 통하지 않고 전문의을 직접 만나는 다른 방법은 앰블런스에 실려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는 통로가 있다. 구급차를 타기 전에 간단한 응급조치를 하므로 심한 엄살일 경우에 퇴짜를 맞을 수도 있다. 직접 자기발로 응급실에 찾아가는 경우엔 접수실에서 인턴 의사가 환자의 위급을 판단하여 분류하므로 응급환자가 아니면 가정의를 찾아가라고 되돌려 보내기도 하고 응급이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는 감기 환자라면 우선 순위에서 밀려서 반나절 쯤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중병은 아니지만 열이 오르는 등 병세가 빨리 진행이 되어 당장 의사를 만나야 할 사람들은 자신의 가정의가 아니라도 가까운 Walk-in-clinic (예약없이 들어가는 지역내 병원)에 가서 치료나 처방을 받는다. 그래서 종합병원이 많지 않아도 한국처럼 북적거리지 않는다.    

 

캐나다 공공의료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철학은 비용에 관계없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라!”라는 것이다. 이것을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볼 것인지, 시장의 원리를 배척하는 빨갱이 철학으로 볼 것인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자유다. 우리는 조건없이 환자 치료에 일생을 바친 슈바이쳐 박사를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돈이 없으면 병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이율배반적 사고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종종 머리 속에 혼란이 온다. 심하게 아픈 사람이 돈이 없어 병원에서 쫓겨날 때 그 병원과 의사들을 비난해야 할까? 아니면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에서는 물론 후자로 결론이 난다. 캐나다에서는 그런 갈등의 싹을 아예 없앴고 그런 비인도적인 일은 있을 수도 없다. 여기서는 의료카드가 없는 여행자라도 위급환자는 일단 치료부터 하고 비용은 나중에 청구한다.

 

치료에 있어서 비용이 배제가 되면서 자연히 따르는 개념이 의료 평등주의. 환자는 모두 평등하며 치료의 우선 순위가 순수하게 의료적으로 결정된다. 돈 많고 빽 있는 사람이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더 급한 환자가 먼저 치료를 받는다. 이것은 돈이 많아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에게 최선의 치료를 받아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달갑지가 않다. 또한 환자 치료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일부 의사들에게도 환영할 만한 제도가 아니다. 급한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응급실에서 반나절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역시 잘못된 제도로 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이 무료공공의료 제도를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 제도에 대한 지지도는 캐나다에서 약 85%. 지지율이 엄청 높은 것이지만  15%가 싫어한다는 이야기이고 그 15%가 힘있고 영향력있는 사람들이다. 캐나다는 그래도 사회지도층과 부자들이 인도주의적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15%는 어떨까? 더우기 이런 제도를 입법화해야 할 국회의원들 중에 이에 동의하실 분들은 몇 명이나 될까?

 


캐나다도 이 제도가 순조롭게만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천문학적인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가운데 의료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에 대한 논쟁이 끊일 날이 없다. 오래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MRI 사진 찍는데도 몇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암수술 받으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된다(사실은 그렇지 않음. 위급한 경우는 바로 수술을 받음)는 이야기며,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이 초만원이라 좀 더 멀리 있는 곳으로 앰블런스에 실려가던 응급환자가 죽었다는 일 등이 언론에 떠들석하게 보도된다. 그럴때마다 제도를 비난하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캐나다 의사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한 양반이 이 나라에서는 개는 엉덩이 뼈 교체 수술 (의족 다는 것) 1주일 안에 받을 수 있는데 사람은 2~3 (어떤 근거로 이런 기간을 이야기한 지는 말하지 않음)을 기다려야 한다.”라며 의료제도를 비난한 적이 있다. 그러자 캐나다 건강연맹 관계자가 개는 주인이 지불 능력이 없으면 주저 앉아 있을 수 밖에는 없지만 사람은 돈에 관계없이 치료받을 수 있다.’ 라고 맞받아쳤다. 이런 논쟁 속에 개인이 돈내고 다닐 수 있는 병원을 인정하여 급한 사람은 자기가 돈내고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었다. 그러나 주정부의 의료비중 상당부분을 지원하는 연방정부에서 그런 사설 병원을 허용하는 주정부에 지원을 않겠다는 엄포를 놓아 그런 주장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무료공공의료에 대한 우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날로 늘어가는 의료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연방정부에서 주정부에 지원하는 예산을 줄임에 따라 주정부에서도 병원 등에 대한 지원예산을 줄이게 되었고 시설투자와 전문의의 충원이 제때 이루어 지지않게 됨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공급부족이 시작되면서 환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선거때마다 주요 이슈가 되어 왔고 2003년부터 연방과 주정부들 사이에서 현의료체계의 유지/발전에 대해 합의가 되고 연방에서 의료적체 해소를 위해 55억달러(약 6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적체는 크게 해소된 상태다.

 

캐나다에 공공의료제도가 최초로 사스콰츄완주에 도입된 것이 1946년이고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이 1957년이다. 지금 (2011) 시행 54년째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한국에서 정당의 정책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무상의료는 매우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좀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건강은 의식주와 마찬가지로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무료로 했을때 그 수요는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최고의 의사에게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까지 감안한다면 수요와 공급의 괴리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정부예산을 모두 퍼부어도 수요을 감당 못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준비안된 무상의료는 커다란 혼란을 불러 올 수 있고 반대자의 역공으로 시작단계에서 좌초될 수도 있다.  

 

만인의 행복을 위해 무상의료는 꼭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그런데 그 제도의 도입을 위해 첫째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 다른 복지와 달리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가 아니다. ‘무상의료정책이 선거용이 아니라면  어떻게하면 의료수요를 실수요만으로 한정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먼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할 것을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