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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당 김지하가 쓰는 화엄개벽의 길]② ‘선재남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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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여러가지알음알이

2009. 2. 12.

[동학당 김지하가 쓰는 화엄개벽의 길]② ‘선재남행’의 시작
 
진안 운장산 아래 대불리가 화엄개벽의 실물
기사등록일 [2009년 01월 05일 18:29 월요일]
 

김지하 씨는 진안 운장산에서 바라본 대불리가 곧 화엄개벽 자체의 실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운장산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객을 맞는 운일암반일암을 마치 사천왕과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진안군 홍보실

다시 묻는다.
선재동자의 구법여행은 왜 항상 남쪽을 향하는가?
물론 믿음, 정진, 염력, 선정, 지혜의 다섯 힘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왜 하필이면 우선 남쪽으로부터만 얻어지는가?
결론을 불교학쪽으로부터 간단히 얻기 이전에 인연 따라, 구체적 경험을 통해서 오늘날, 이 땅에서, 나라는 사람, 또 우리라는 사람들이 수운의 이른바 ‘남쪽 별자리(南辰)’-화엄개벽의 조건인 남조선의 그 원만한 별-의 정체성을 직접 터득하기 위해, 조성된 현실에 부딛쳐보는 문자 그대로의 남쪽여행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覺)에 대한 행(行), 과(果)에 대한 인(因), 부처에 대한 털구멍 이야기, 또는 그 반대의 이야기다.

어쩌면 화엄개벽에 대한 이 땅의 남쪽으로의 구도여행에 있어 다른 이 보다는 나에게 조금은 그 적합성이나 이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재동자의 선세(先世)의 신종(信種), 즉 그 조상의 믿음의 인연 말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내 고향은 남쪽이고 내 조상들의 본디 뭍에서의 근거는 전북 김제군이다. 거기서 불교, 그것도 고려말 신돈(辛旽) 개혁 실패 이후 금강산과 지리산을 근거로 형성된 하급승려들의 비밀조직인 ‘당취(黨聚)’의 반정(反政)에 연루되어 암태도(岩泰島)로 피신했다.

이조 500년 동안 1670건의 반정사건 중 70% 이상에 불교승려들이 연관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당취다. 경제적으로도 당취는 난전(亂廛)이나 상조계(相助契) 등 비정규적 민중생활 조직에 연속되어 있었다. 사상적으로는 신라말·고려 전 시기를 관통했으나 이조에 들어와 전면적으로 억압당한 ‘화엄선(華嚴禪)’을 몸 수련과 연관된 선도(仙道)의 유사형태로 밀고 나갔다고 한다.

여기에 관련된 선조들의 섬 생활의 전설은 대체로 ‘우투리’이야기로 일관된다. ‘우투리’는 ‘오돌’‘오돌또기’와 같은 섬 지방 사투리로 ‘반항아’를 말한다.

역시 큰 ‘우투리’였던 증조부 ‘김영배(金永培)’ 씨는 암태도에서 투전판 끝에 복잡한 사건이 터져 섬을 탈출하여 옛 고향인 김제 봉서리(鳳捿里)의 사촌형 ‘김인배(金仁培)’ 씨 댁 근처에 정착한다. 김인배 씨는 김개남과 쌍벽을 이루는 과격파 동학 대 두령인데 증조부는 그 밑에서 소 두목으로 입도, 갑오년 광양전투에서 부상하고 영광 법성포 주아실에 피신했다가 거기서 돌아가신다.

요컨대 당취 계열의 화엄선과 김인배 과격노선의 동학개벽운동과의 연관성인데 내 경우 가족사 자체가 그 증거물인 셈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화엄개벽의 가능성이 단순한 양인농민(良人農民)의 단편적인 일상 생활적 요구라기보다 이른바 호민적(豪民的) 변혁사상 안에 포함된 사회생활의 전면적 개혁 요구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모님인 박경리 선생의 대표작 『토지』의 사상사적 주제 역시 ‘화엄개벽’이다. 지리산 연곡사의 호방한 우관 스님과 그 아우인 과격파 동학두령 김개주, 그의 아들 구천의 개벽유격운동과 그 애인의 슬프고 아름다운 불교적인 죽음의 관계, 지리산의 가슴 따뜻한 스님 혜관과 근본 모를 중생 출생의 외톨이 금어(金魚)인 길상, 법화(法華) 계열의 서희(西姬)의 신앙과 동학개벽계통의 항일운동으로 감옥에 투옥된 길상의 사랑 등은 모두 다 1894년 12월 갑오혁명 전쟁의 대 패전으로 대거 지리산에 숨어든 동학의 십 수만의 군세가 10년 뒤 제3차 항일의병전쟁의 실질적 주력으로 재기할 때까지의 긴 시간 지리산에서의 은둔과 직결된 당취의 화엄사상대 후천개벽운동 사이의 충분히 예상되는 대토론, 논쟁, 화해, 동의와 동지적 연대 및 합작의 가능성, 그리고 지리산 인근에 파다한 민간의 전설 등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자칭 좌파민족문학이나 서구 짝퉁의 우파 순수문학 양쪽의 똑같은 몰지각은 한심할 정도의 미학적 무지를 지나 화엄불교나 개벽적 남조선 사상사 전체의 대문명사적 인류비전에 대한 전면 반역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 변증법을 치고 나온 프랑크푸르트학파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을 『토지』와 연결시킨 최근 이순예의 새로운 미학적 시도의 참신함이 서구철학이나 미학의 한계를 넘어 동아시아 사상사에로까지 확대될 때 아마도 화엄개벽의 중도적 세계철학의 한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

선재의 끝없는 남쪽여행
그 의미는 나와 우리에게
전 인류에게 무엇인가

나는 지난해 초가을 어느날 통영에 있었다. 기독교장로회 목회자 수련 모임이었는데, 역시 동서문명이 융합하는 화엄개벽의 길에서 기독교, 특히 남도지방에서 진보적인 민중운동을 해왔던 기독교장로회가 불교나 동학과의 관계에서, 신과 부처의 관계에서, 개인과 전체적 우주융합 사이에서 이제부터 과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강의했다.
그 다음날은 목사들과 함께 미륵섬에 있는 장모님 묘소에 참배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호텔방에서 나는 문득 기이한 바람소리의 부름을 받고 한밤중 택시로 전북 익산까지 달렸다. 이튿날 익산에서 김제 봉서리로 가 전혀 뜻밖에도 이제까지 소문만 듣던 김인배 대 두령의 직손(直孫)인 김익태(金益泰) 노인을 직접 만나 거기서 증조부의 옛 이야기를 소상히 들었다.
아!
대지에 뿌리내린 내 삶의 역사. 내 조상들의 피투성이 개벽활동의 역사를 세세히 확인할 때의 나의 삶의 감각은 미국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의 감격 그 이상이었다.
증조부와 조부의 영의 인도였을까? 나는 그 길로 증조부께서 숨어 동학재건운동을 하시던 영광 법성포 칠산 바다가 보이는 주아실로 내리 달렸다. 주아실에서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곳은 바로 백제불교의 스승인 마라난타가 상륙한 지점이다. 거기 전에는 못 보던 장엄한 불교성전이 바닷가에 우뚝 일어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곁엔 증조부가 숨은 채 주아머리 절벽 길로 혹시 관헌이 오나 살피려고 칠 년 동안 눈썹 위에 손을 얹고 사셨다는 두 그루 거대한 미루나무가 그대로 서 있었다.

집안의 전설에 의하면 증조부는 그 두 그루 미루나무 밑 오두막에 숨어 동지들과 동학재건운동, 그것도 불교와 동학의 결합을 통한 이른바 ‘화엄개벽’의 정세운동(靖世·비폭력평화개벽운동)을 논의하고 추진하던 중 영광에서 광주 나가는 어두운 고갯길 ‘강토봉재’에서 배신자들에게 살해당하셨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 손에 웬 조끼를 쥐고 계셨다는데 그것은 그 살인자들이 다름 아닌 화엄개벽의 반대자들이라는 증거물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내게 무엇을 뜻하는가?
나 역시 내 나름의 ‘강토봉재’에서 또한 그렇게 죽을 것인가?
철저한 개벽운동. 나아가 ‘화엄개벽’의 모색, 그리고 그로 인한 비참한 최후.
이것이 내 가족사의 ‘남쪽’이다.

그리고 이 ‘남쪽’은 주아실의 그 날 이후 내 가슴에 뜨거운 눈물과 함께 ‘화엄개벽’이 다름 아닌 나와 우리의 이제부터의 목숨을 건 ‘흰 그늘의 길’임을 상징하는 그날 증조부님의 나를 향한 메시지 그 자체였다.

남쪽은 이어 또 나를 불렀다.
오체투지로 천주교 신부들과 함께 동서융합과 남북화해의 거룩한 고행을 계속하고 있는 수경 스님의 부탁으로 전남 광주의 불교환경연대 특강을 맡게 된 것이다.
역시 ‘화엄개벽’이 주제였다.

6·25 전쟁 직후 열 세 살에 쫓겨나다시피 고향 목포를 떠나 아버지계신 강원도 원주로 이사한 뒤 55년만에 정식으로, 공개적으로 귀향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전쟁 때 공산주의자였고 영암 월출산의 빨치산이셨다가 내가 생매장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하산하여 자수한 뒤 자살하고 또 자살하고 그리고 마침내는 살아나셔서 고향을 떠나셨다.

백제 망국 이후 길고 긴 저주받은 이 땅의 역사, 그럼에도 끈질긴 저항으로 얼룩진 이 땅의 역사, 나는 그날 이 땅의 역사를 한마디로 ‘화엄개벽’으로 규정하였다.
화엄선의 당취사, 동학사, 남학사 혹은 오방불교와 금강불교의 역사, 강증산 용화불교의 음개벽운동사, 그리고 소태산 원불교의 일원상 법신불의 정신개벽운동사.…….
그러나 그날 앞자리에 앉아 있던 스님들은 막상 화엄소식에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고 뒷자리의 젊은 보살님들이 도리어 큰 관심을 보였다.

큰 관심이긴 했으나 그 관심의 초점은 역시 지금 막 불고 있는 미국 등의 금융위기, 국내의 경제침체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동북아시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문명의 창조과정에 불교가 적극적 작용을 하게 되리라는 나의 전망에 대한 관심이었다.
결국 핵심은 ‘호혜와 교환과 획기적 재분배’가 결합되는 ‘새로운 시장’이야기인데 이러한 ‘신시(神市)’의 현대적 전개의 배후에서 불교가 ‘먼지투성이 장바닥에는 늘 함께 하되 결코 물들지는 않는, 중생을 위한 향상된 실천(同塵不染利生常道)’을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결단해야된다는 새로운 보살 모습 이야기에 호응하고 있었다. 화엄개벽의 경제생활적 전개다.

이것은 반드시 앞으로 많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드넓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불교가 시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인들 할 수는 있을 것인가?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는 어쩌면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요구되는 철저한 ‘이생상도(利生常道)’이기 때문이다.

광주방문을 전후하여 나는 새벽마다 탄허 『화엄경』, 김지견 화엄요약과 법정 화엄 그리고 이정호의 정역 연구, 왕필주역, 동학, 소태산, 혼돈학, 풍수학, 생태학, 경락학, 단전학 등을 함께 공부한다.

이 과정 내내 많이 놀라고 크게 깨닫고 깊이 감동한다.
그럼에도, 그 기쁜 공부과정 전체에서 내내 나를 홀리는 것은 역시 똑같은 의문이다.
선재동자의 끊임없는 남쪽여행의 의미는 과연 나에게, 오늘 우리에게, 전 인류에게 참으로 무엇인가?

어느날 ‘남학(南學)’의 본 고장.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奎) 선생과 김광화(金光華)의 저 유명한 남학, 오방불교, 금강불교의 본 고장인 전북 ‘진안(鎭安)’을 가기로 작정했다.

작정한 뒤로부터 밤이고 낮이고 진안은 내게 있어 마치 그야말로 ‘남쪽(南)’ 그 자체였다. 끝없는 전설과 소문으로만 듣던 그 진안. 어렸을 적 어른들 이야기 속에서 늘 들어왔던 바로 그 ‘남학 밭’이란 말의 근거지!

지리산 당취로부터 이어진
화엄개벽 비밀조직 모르면
남쪽 빛의문명사 알 수 없어

갑오혁명에서 일제 때와 6·25전쟁 전후까지, 좌익관련의 유언비어 차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른바 ‘남의 모스크바’니 ‘불갑(佛甲)콤뮨’이니 ‘남조선 본부’란 비밀스런 어휘 속에서 항상 그 밑바닥에 영생불패의 민중비밀조직으로 살아 있다는, 그래서 그 조직에 뿌리내린 운동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본디는 지리산 당취로부터, 아니 그 이전엔 백제 부흥군으로부터, 그리고 가장 가까이는 불멸의 천재사상가 연담 이운규와 영생의 조직적 구세주 김광화의 그야말로 명실공히, ‘화엄개벽 비밀조직’인 ‘남학 밭’을 모르면 남, 남쪽, 남도, 전라도의 ‘빛의 문명사’, ‘궁궁저항운동사’를 단 한치도 알 수 없다는 그 신비의 땅 진안을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날 나는 진안에 도착해서 이윽고 강증산이 ‘만국활계 남조선’이라고 표현한 바로 그 ‘남조선’ 자체를 내 눈으로 직접 똑똑히 보았다.
험준한 산골짜기 산골짜기를 뚫고 지나서, ‘운일암반일암(雲日岩半日岩)’이라는 기암괴석의 신이(神異)한 돌 입구를 또 지나서 거기 참으로 편안한 땅, 무릉도원이 함푹 숨어 있었다. ‘어자마을’이라는 조그마한, 그리고 옴팍한 분지. 산으로 둘러싸인 그 ‘무릉리(武陵里)’ 옆엔 광활한, 운장산(雲藏山)이란 우람한 큰산 아래 저 유명한 ‘대불리(大佛里)’가 표표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 알겠다.
나는 금방 깨달았다.
이곳이 곧 ‘남조선’이고 이곳이 곧 ‘화엄개벽’ 그 자체의 실물이다. ‘무릉’은 동아시아 개벽사상사의 공통된 이상향의 이름이고 ‘화엄’은 중앙아시아 6세기 중심 장기 결집의 전세계적 우주사상의 실체인 ‘비로자나불’의 다른 표현인 ‘대불(大佛)’, 그 ‘거대한 부처’의 장엄한 공덕을 일컫는 말이다.

바로 여기다. 여기가 이제부터 화엄개벽이 참으로 시작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오늘날 어째서 남학이 싸그리 자취를 감추었는가?
일제(日帝)다. 분명 남학은 ‘화엄개벽’을 철저히 조직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다른 민족종교들을 어느 정도 묵인한 일제가 당연히 잔인하게 짓밟은 것이다. 최근 전북대 국문과 김익두(金益斗) 교수의 끈질긴 노력으로 김광화 저작의 한문텍스트가 입수되었다.
그러니까 ‘남진원만’이고 그러니까 ‘북하회’는 개벽! 바로 ‘화엄개벽’인 것이다. 문제는 또 남는다. ‘별’이 무엇인가?

김광화가 바로 별이다. 그리고 꽃이다. 빛(光)이니 별(辰)이고, 꽃(華)이니 화엄(華嚴)이요, 화엄이니 원만(圓滿)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상 우리의 ‘선재 남행’은 이제부터다. <계속>

 

 

김지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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