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테라와다(Theravada)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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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09. 12. 18.

 

테라와다(Theravada)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일을 하면서 종종 음악을 듣는다. 주로 인터넷에 다운 받아 놓은 불교음악이다. 일반적으로 대중가요는 3분 내외가 보통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놓은 불교음악은 30분 가까이 되는 곡이 상당히 많아 듣는 맛을 느끼게 해 준다. 이들 불교음악의 내용은 대부분 짧은 진언이나 다라니 또는 경전등인데 주로 반복해서 들려 준다는데 특징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화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일을 할 때, 주로 단순작업을 할 때 음악을 띄어 놓고 듣는다.

 

그러나 때로는 불교tv와 불교방송 사이트에 들어가서 듣는 경우도 있다. 경전공부나 법문 또는 대담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그런 프로 중에 불교방송의 무명을 밝히고라는 프로가 있다. 그 프로에서 마침 들은 이야기는 성철 교수의 티벳대장경연구소에 대한 설립 이야기이었다. 일 하는 중에 들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듣지 못하였지만 딱 두가지가 뇌리에 남았다. 하나는 김교수가 상좌불교를 소승이라고 말한 대목이고, 또 하나는 티벳불교가 인도불교를 계승한 종합불교의 결정판이라는 말이었다.

 

왜 소승이라 할까

 

대부분의 대승불교학자가 초기불교내지 상좌불교를 소승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학창시절부터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대승에서 소승이라고 폄하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중생구제라는 키워드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 부파불교시대의 불교가 타인의 구제 보다 자신만의 수행에 너무 치우치고, 너무 학문적으로 몰두 하다 보니 민중들과 괴리감이 생겼고 이에 대한 반발로서 대승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승에서 소승이라고 폄하 할 때는 항상 대승의 보살사상을 강조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종교의 목적이 이타행을 강조 하고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남방상좌부 불교국가에서는 소승이라는 말을 인정 하지 않고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말 자체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뿌리를 부처님과 부처님의 직계제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종가는

 

불교에는 크게 두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남전이고 또 하는 북전이다. 남전은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전해져, 그곳을 근거로 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로 퍼진 불교를 말하고, 북전은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고, 다시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진 불교를 말한다. 보통 전자를 상좌불교라 말하고 후자를 대승불교라 말한다.

 

상좌불교를 테라와다(Theravada)’라 하는데 어원을 보면 테라(thera)’장로라는 의미이고 와다(vada)’말씀또는 교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테라와다는 장로들의 교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장로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상좌불교에서 테라라고 말하는 장로를 우리식으로 보면 큰스님정도 되는 덕망높은 인격의 소유자라 볼 수 있다. 장로를 또 우리식으로 해석 하면 상좌가 되는데 그 의미는 부처님의 직계제자라는 뜻도 된다. 따라서 테라와다불교는 그 출발점을 부처님의 10대 제자에서부터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출발점은 1차 결집이후 부터이다.

 

부처님이 입멸뒤에 500백명의 아라한들이 참석하여 결집이 이루어 졌는데, 이 결집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과 율이 7개월간 암송되었고, 그런 내용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라고 만장일치로 수용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결집에서 승인되고 동의된 내용을 장로들의 교의(Theravada)’라고 명명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상좌불교의 뿌리는 부처님 당시부터 부처님의 직계제자들로부터 비롯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현재의 상좌불교국가에서는 자신들이야말로 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종가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오늘날 현존 하는 스리랑카나 미얀마, 태국에서 보는 부파로서의 상좌부가 아니라 부파가 분열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원래의 불교를 믿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본다면 근본분열 이후에 성립된 부파로서의 성격도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다고 한다.

 

가장 보수적인 불교는

 

자료에 따르면 부파는 부처님의 입멸후 100년이 지나면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계율과 관계된 것이었다. 웨살리의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십사(十事)를 주장 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그런 주장이 비법이라고 결론이 나고 나서 정통파와 비정통파로 분열이 있게 된것이다.

 

이렇게 최초의 분열을 근본분열이라 하고, 이어서 지말분열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모두 20부파가 발생 된 것이다. 그런데 이중 상좌부가 가장 보수적이었고 그들의 교설이 빠알리어로 전승이 되어 온 것이다.

 

이렇게 부파가 나뉘어지고 난후 150년 정도 지나서 아쇼카 대왕이 나타난다. 이 아쇼카대왕 재세시에 3차 결집이 일어 났는데, 원인은 비불교도들이 승려가 되어 승단에 들어와 포살의식이 실행 되지 못하고 타락하게 된 이유에서 시작 되었다.

 

이에 대하여 아쇼카왕은 그 때 당시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목갈리뿟따 띳사(Moggaliputta tissa) 장로와 상의하여 많은 비정통파 승려들을 승단에서 추방시켰으며, 그들의 이단적인 견해들을 진압시켰다. 이렇게 이루어진 3차 결집으로 인하여 상좌불교의 교설을 정통으로 확정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정된 상좌불교를 포교 하기 위하여 세계각지에 전도단을 파견 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스리랑카이었다.

 

현재 상좌불교의 본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스리랑카 불교의 뿌리는 이렇게 시작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상좌불교는 1차와 2 3차의 결집과정을 거치면서 결집과 매우 관련이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표로 정리 하여 보았다.

 

 

결집

   

 

결집 이유

결집 결과

1

결집

불멸후 곧바로

 

라자가하(Rājagaha)

 

마하깟싸빠

(MahA- kassapa)주도

()과 율()을 승인하기 위하여

장로들의 교의(Theravada)를 승인

2

결집

불멸 100년후

(기원전 390)

웨살리(Vēsal)

 

웨살리의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십사()를 주장하여서

십사(十事)비법으로 판정하자 부파분열됨.

 

상좌부가 가장 보수적

3

결집

2차결집 150년후

(기원전 247)

파탈리 푸트라

(Pāaliputra)

 

목갈리뿟따 띳사(Moggaliputta tissa)

주도

승단에서 계율을 유지하고 승단을 정화하고자

비정통파 승려들을 승단에서 추방하고 이단적인 견해들을 진압

 

상좌부의 교설을 정통으로 확정

 

빠알리삼장의 성립

 

세계각지에 전도단을 파견

 

 

 

표를 보면 2차와 3차 결집의 경우 주로 계율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에서는 계율을 완화 하자고 주장 하고, 또 한편에서는 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율을 완화 하자고 주장 하는편은 보다 진보적이고 대중적임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엄격한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 하는 측은 매우 보수적임을 또한 알 수 있다.

 

테라와다는 항상 엄격한 계율을 지키자고 주장하여 보수중에서 가장 보수에 속한 부파교단 이었다고 본다.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오고 있는 것이다.

 

3차 결집에서 추방된 비정통파들은

 

3차 결집에서 추방된 비정통파 승려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들은 바에 따르면 다른 교단을 만들었을 것이라 한다. 비록 추방은 당했지만 타종교로 개종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쉽게 개종하지 않는다. 그 대신 새로운 종단이나 교파를 만들어 나름대로 유지 해 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것은 마치 어느 절에서 추방된 스님이 또 다른 종파를 만들어 불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유지 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수백개나 되는 종단이 이와 같은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설에 따르면 3차 결집 당시 쫒겨난 승려들이 만든 불교가 대승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승불교가 기원전 100년 경부터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시기적으로 어느 정도 맞아 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3차 결집후 오직 상좌불교의 교설만 정통으로 인정되고 나머지는 모두 배격 되었는데 그 후 전개된 대승운동의 전개상황을 보면 3차 결집의 결과와 어느 정도 관련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된 요인을 마성스님은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대승불교운동의 주체가 부파교단의 출가자 집단이었다는 주장과 기존의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그룹, 즉 불전문학과 불탑신앙을 주도했던 재가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이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881)

 

 

대승불교운동이 부파교단의 출가자 집단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3차 결집이후에 추방된 승려들이 주도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불탑신앙을 주도한 그룹에 의하여 주도 되었다면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집단에서 시작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연구 성과를 보면 대승불교는 대중부를 비롯한 제부파에서 유래 하였다는 증거와 불전문학과 불탑신앙에서 유래 되었다는 흔적이 동시에 발견 되고 있다고 한다.

 

대승경전은 누가 만들었을까

 

문제는 대승경전이다. 대승불교의 특징이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정토삼부경과 같은 수 많은 경전이 있는데 이들 경전을 누가 만들었을까 이다.

 

마성스님의 글에 따르면 대중부를 비롯한 부파 교단출신이 대승불교의 교단이었다면 대승경전을 굳이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대중부 같은 경우 마하기율(摩訶僧祇律)이라는 율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부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집단이 만들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 집단을 보살가나(Bodhisattva-gaa)’로 보고 있다. 교단사적으로 보았을 때 비구승가(Bhikkhu- sagha)’와 별도로 보살가나라는 집단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의 뿌리가 기존의 부파교단의 출가자집단이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집단에서 주도 하였는지, 그 것도 아니면 이들 둘이 절충 되어서 형성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경전을 찬술 하는데 있어서 태도 라는 것이다. 즉, 대승경전 찬술자들은 자신의 저작을 역사적 붓다가 직접 설한 것으로 가탁(假託)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이다.

 

대승경전을 편찬한 자들은 대승불교의 출가자일 것이라 한다. , 스스로 불타가 되었다고 자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종교체험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대승논사들이다. 이들 대승논사들은 스스로 각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대승경전의 작가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논거로서 미륵의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에 나오는 세친의 기술을 보면 알 수 있다.

 

 

(논에) 성립하고 있으므로(siddhes) 라는 것은 만약 다른 사람이 正覺하여(abhisambuddhaya) 설하고 그것이 불설인 것(buddha-vacanatva)으로서 성립하고 있으면 지금 정각하여 이와 같이 설하는 자는 곧 부처(buddha)이다.

 

 

스스로 자각하여 깨달아서 한 말이면 누구라도 부처가 말한 것과 동일 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미륵이나 세친의 시기가 되면 역사적인 붓다가 아니더라도 정각을 하여 그 가 설하는 모든 내용은 불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승경전은 스스로 정각한자, 즉 자각을 지녔던 사람들에 의해 쓰여 졌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불멸후 수 많은 부파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대승운동이 일어 나게 되었고 그 결과 대승경전도 편찬 되게 되었다. 그러나 불멸후 지금까지 변치 않고 교단을 유지 하고, 또한 부처님의 친설을 유지 해 오고 있는 불교는 테라와다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는 아마 보수 본능에서 일 것이다.

 

강한 보수 회귀 본능 때문에

 

종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아니 보수회귀적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이다. 역사와 사회가 진보를 외치면서 나아가지만 거꾸로 가는 것은 종교이다. , 종교는 본능적으로 보수적이다. 따라서 어느 종교이든지 해당 종교를 창시한 교조의 이념에 가장 충실한 교단만이 살아 남는 다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보아 왔다. 그 증거로서 이웃 종교를 보면 알 수 있다.

 

타종교 같은 경우 수많은 이단이 생겨 나지만 당대 이상을 넘기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무리 세력이 왕성하고 신자가 많다고 해도 당대가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또한 종교의 강한 보수 회귀 본능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불교에서 수백개의 종단이 난립하고 있지만 당대가 지나면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말 운명이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선불교이기 때문에 선종이 보수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혁신 종단이 생겨 나도 이해관계로 얽혀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선종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세계불교역사에 있어서 테라와다가 불교에서 가장 보수적이다. 이제 까지 살아 남아서 세계불교를 주도 하고 있는 이유도 아마 원형을 가장 유지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된 글로벌시대에 사람들이 테라와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종교의 강한 보수회귀본능때문이 아닐까.

 

 

200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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