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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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를 바라보는 봉은사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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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순례기

2011. 7. 27.

 

 

 

코엑스를 바라보고 있는 봉은사미륵대불

 

 

 

 

조계사에 가면 가장 먼저 일주문을 볼 수 있다. 거기에 쓰여 있는 현판에 대한불교총본산조계사라고 쓰여 있다. 한국불교 총본산으로서 조계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무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계사 대웅전

높이가 일반건물의 4층이상이다.

 

 

 

 

왜 작게 지었을까

 

조계사는 10년 전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탁 트인 일주문과 우정국자리까지 연결 되어 있어서 도심속의 공원을 연상케 한다. 또 부근의 경복궁과 인사동거리와 연계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벨트이기도 하다. 그런 조계사의 경내에 조계종총본산이라 볼 수 있는 총무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총무원 건물이 그다지 크지 않다. 주변의 빌딩에 비하면 매우 자그마한 4층짜리 건물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한다는 조계종 총무원의 청사치고는 너무 규모가 작은 듯 하다. 금싸라기 같은 땅에 10층 이상 되는 높이로 지어서 크고 웅장하게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왜 작게 지었을까.

 

 

 

 

 

 

 

 

조계종 총무원

조계사 대웅전 뒤에 자그마한 4층건물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인데 총무원이 있는 곳이다.

 

 

 

 

믿기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그런데 거기에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4층 정도 높이로 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불교신문의 기획연재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지상 3층만 한 것은 경봉 스님께서 한번 오셔서 보시고 내게 말씀하시기를이 사람아, 절대로 3층 이상 법당보다 높게 짓지 말아라. 만약에 높게 짓는다면 온 세계가 떠들썩하게 시비가 끊임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3층 이상 짓지 말아라라고 해서 나는 3층만 짓고 말았는데 내 후임 주지가 2층을 더 올려 5층으로 지었다. 그 후 94년 종단 개혁과 98 99년 종단 사태로 인해 시끄러웠다. 이것을 보면 큰스님들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고산스님, 불교 회관 건립 - 청사 이전과 준공, 불교신문)

 

 

 

조계종 청사건립당시 조계사 주지(1972)를 맡았던 고산스님의 회고담이다. 청사를 대웅전 보다 더 높게 지으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봉스님의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3층까지 만 지었는데, 후임 주지스님이 두 개 층을 더 올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5층이 되었는데, 그 높이가 대웅전 보다 더 높아서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구 조계종 청사

1975년에 완공되었다.

사진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468

 

 

 

 

믿기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청사를 대웅전 보다 더 높게 지음에 따라 5층청사를 사용한 20여년간 전국은 물론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든 94년의 개혁과 한국불교 역사에서 있어서 가장 치욕적이고 참담한 98년 사태도 바로 청사를 점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 청사의 외관은 오랫동안 불자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 되었다.

 

대웅전 보다 높지 않아서?

 

그와 같은 좋지 않은 이미지이어서일까 5층짜리 청사는 헐리고 2003년에 새로 건립된 청사가 현재 보는 4층짜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라 한다. 지하에는 불교박물관도 있어서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불교중앙박물관

조계종 청사의 지하에 있다.

 

 

 

똑 같은 자리에 건립된 신청사는 4층이지만 대웅전 보다 높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98년도 사태와 같이 청사쟁탈을 위한 참담하고 처참한 모습을 TV에서 볼 수 없다.

 

봉은사땅을 팔아

 

5층짜리 구청사의 경우 한국불교의 치부를 유감 없이 보여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이미지이었다. 청사만 점거하면 성공한 쿠데타로 생각하던 90년대의 사고 방식이 투영된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청사가 건립되기 까지의 과정을 보면 또 한국불교의 아픈 과거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최초로 청사를 건립하는데 있어서 우여 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청사건립으로 인하여 지불된 비용이 절의 땅을 팔아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땅이 10만평에 달하는 봉은사땅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코엑스와 한전빌딩이 들어서 있는 강남구 삼성동과 청담동땅이라 한다.

 

 

 

 

 

 

봉은사앞 코엑스와 한전일대

봉은사 땅으로서 10만평을 53천만원을 받고 1970년 정부에 넘겼다.

 

 

 

1970년 당시 종단은 청사를 지을 돈이 필요하였고, 정부는 봉은사가 소유한 삼성동에 상공부를 위시한 관공서 건립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져 그 때 당시 10만평을 53천만원을 받고 넘겼다고 한다.

 

원래 이금액은 동국대 내에 있는 혜화관이라는 정부건물을 매입하기 위해서 이었다고 한다. 혜화관을 매입하여 총무원청사로 활용하다가 학교측과 문제가 발생하여 다시 청사를 조계사 경내에 건립하기로 하였는데, 봉은사 땅을 판 돈으로 청사를 짓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12층으로 계획하였으나 지지부진 하게 진행되다가 19755층으로 준공되어 파란만장한 건물이미지로 각인 된 것이다.

 

미륵보살은 무슨 생각을

 

결국 문제의 청사가 건립되기 까지 봉은사 땅 10만평이 팔리게 된 것이다. 10만평이 팔리고 난 봉은사는 고작 3000평만 남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 청사는 대웅전 보다 더 높이가 높아서일까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임 없었고, 더구나 청사를 점거하면 성공한 쿠데타로 간주하는 역사적 건물로 각인되는가 하면 전세계에 부끄러운 모습을 알려 주는 이미지이기도 하였다.

 

문제의 5층짜리 청사는 20여년 만에 결국 헐렸다. 바로 그 자리에 대웅전 보다 높이가 낮은 4층짜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 2003년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청사하나 짓기 위해서 조상이 물려준 재산을 처분하였단 말인가. 그런데 그 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없어진 것은 또 하나 있다. 청사를 짓기 위한 대금 5억여원을 주고 판 10만평이다. 그 대지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역센터, 국제회의장, 전시장등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요지가 되었다.

 

그런 땅을 봉은사의 미륵대불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미륵대불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봉은사

미륵대불상.

1996년도에 조성되었다.

 

 

 

 

201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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