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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제 기복 그만하자” 어느 재가불자의 호소, 12월 불교중흥토론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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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11. 12. 22.

 

 

제발 이제 기복 그만하자어느 재가불자의 호소, 12월 불교중흥토론회에서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토론회를 인터넷으로 보았다.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토론회에서 그 동안 논의 되었던 각종현안에 대한 총 결산이라 볼 수 있다.

 

조계종이 이룩한 성과

 

이 토론회에서 현응 스님은 한국불교 중흥의 길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기조발제를 하였다. 인터넷에 실려 있는 자료에 따르면 조계종이 한국불교의 발전에 기여한 성과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그 내용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이 기간 중 한반도 내에서 형성된 사찰자산을 국가 법률에 의해 승계하여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일무이한 단체인 점.

둘째, 국가(정부)가 아닌 승단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교단인 점.

셋째, 한반도(현재는 남한)내의 전래의 전통사찰과 승려, 신도를 동일한 종헌 종법으로 규율하는 점.

넷째, 교단의 주축인 승가가출가하여 청정한 생활을 하는 비구, 비구니로 구성되어 있는 점.

다섯째, 승가는 사찰의 부동산과 동산 등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공적이면서 공동적으로 소유하고 관리를 하는 점.

여섯째, 구현하고자 하는 불교적 가치가 선불교의 정신을 중심으로 하되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등의 모든 가르침을 포괄하는 점.

일곱째, 대중포교와 사회적 실천을 통해 불교를 사회와 역사 속에 구현하고자 하는 점.(이사무애를 제고
提高, 대승불교의 성불도생成佛度生 실천, 민족통일과 문명사의 새로운 흐름을 대비, 불일을 만고에 빛나게 하고, 삼보를 법계에 유전케 함종헌 전문前文에서)

 

(현응스님, 한국불교 중흥의 길을 향하여’, 불교닷컴 2011-12-21)

 

[기조발제] 현응 스님 ‘한국불교 중흥의 길.pdf

 

 

이것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에서 생각하는 업적이다. 이런 성과로만 본다면 한국불교는 이미 중흥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같은 업적에 대하여 현응스님은 중국공산당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주목할 만한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으로 본 토론회의 내용이 언론매체에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토론회에서 토의된 내용 중 주목할 만한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활자화된 인터넷신문사이트에서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잘 정리되고 정제된 기사내용만 선 보이고 있어서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전달해 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정화운동을 중국의 공산화과정과 대비하여 설명한 현응스님의 발언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로 소수가 다수를 제압하였음을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중국의 공산화과정

 

중국의 공산화는 소수의 공산게릴라로부터 출발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라고 한다면 아마도 연안장정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연안장정은 1934 10 16일부터 중국남부 장시성 서금소비에트에서 8만명의 중국 홍군(중국 공산당 군)70만명의 장개석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 시작하여 1936 10월 산시성에 도착하기 까지 지난한 과정에 대한 것이다.

 

행군에서 살아 남은 자들은 7,000명에 불과할 정도로 혹독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실망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념과 전술을 확고하게 하였고,  이를 농민들에게 알리고 자신들 편으로 끌어 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공룡과 같았던 부패한 장개석정부를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이념화된 소수가 부패한 다수를 제압한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이때 기반은 농민들이었다.

 

홍군은 농민에게 전혀 민폐를 끼치지 않고 농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심을 잡은 홍군은 1945년에서 1949년까지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가난한 농민의 대표자로서 중국을 지배하는 세력이 될 수 있었다.

 

비구승과 대처승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조계종단이 있기 까지 소수의 투쟁이 있었다 소수의 비구승들이 다수의 대처승을 몰아낸 역사가 있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 대하여 현응스님은 중국공산당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소수의 비구승들이 다수의 대처승들을 몰아내고 종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이 불교신문에 연재된 기사로 실려 있다.

 

 

 

불교정화운동은 흔히 1954 520일 이승만 대통령의 제1차 정화유시를 시작으로 1962 411일 통합종단 출범까지, 이 기간 벌어진 불교 개혁을 지칭한다. 그 성격은 일제가 이식한 대처승 제도 척결이다.

 

(통합종단에서 개혁종단까지, 연재를 시작하며, 불교신문 2010-01—16)

 

 

불교신문에 따르면 불교정화운동은 1954년 이승만대통령의 교시에 따라 시작 되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통합종단이 성립하기 까지 소수의 비구승들의 자력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권의 힘을 빌어 타력적인 요소와 자력적인 요소가 합쳐져 종단이 성립되었음을 말한다.

 

청정비구의 조건

 

이렇게 정권의 힘을 빌어 출발한 정화운동은 1962년 비구승들 중심의 통합종단이 마침내 성립하게 되어 8년간의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 과정이 중국에서 홍군의 연안장정과 비교되는 것이다.

 

이렇게 통합종단을 만들어 놓고 본격적인 정화가 진행되었는데, 그 명분이 먹혀 들어 간 것이다. 그 명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1955 1월 문교부 중재로 비구측과 대처측 대표가 참석하는 불교정화대책위원회가 구성돼 같은해 24일 승려자격 8대 원칙이 합의됐다. 8대원칙은독신, 삭발염의, 수도, 20세 이상, 불주초육, 불범사바이(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비불구자, 3년 이상 승단생활을 해온 자등이었다. 삭발염의 독신 청정 비구를 승려로 삼는다는 대원칙이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통합종단에서 개혁종단까지, 연재를 시작하며, 불교신문 2010-01—16)

 

 

가장 큰 명분은 청정비구승가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청정비구의 기준에 대하여 여덟가지를 들었는데, 가장 큰 기준으로 독신을 들었다. 이는 아내와 자녀가 있는 대처승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정화를 하기 위한 가장 큰 명분이었던 것이다.

 

정화의 의미는

 

정화를 하기 위한 명분은 중국의 홍군이 농민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고 지지를 끌어낸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대처승들이 사는 절을 차례로 접수하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정화하러 간다의 의미는 대처승들이 사는 사찰을 빼앗으러 간다와 동의어이었다고 불교신문에서 전한다.

 

 

이런 정화과정에서 6비구 할복사건등 일련의 어려움등이 있었지만 마침내 1970년 태고종의 창종으로 인하여 대처측이 완전히 분리해 나가면서 사실상 정화가 마무리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1962년 통합종단이 설립되어 외형상 정화는 일단락 된 것으로 보였지만 1970년 태고종이 창종되기 까지 8년의 정화과정은 중국에 있어서 홍군이 장개석군과 싸운 1945년부터 1949년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홍군은 1949년 장개석군을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완전히 몰아낸후 인민을 대표하는 중화인민국공화하국을 천안문광장에서 선포 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1970년 대처승들의 태고종을 창종에 따라 비구승들의 조계종단은 실질적으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 되었다.

 

그래서 정화과정에 대한 일련의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면 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정화유시

1962년 통합종단의 설립

1970년 대처승들의 태고종 창종

 

 

이것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의 승리의 역사이다. 이는 소수의 비구승들이 다수의 기득권세력인 대처승들을 몰아낸 과정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1970년 태고종이 창종되어 떨어져 나가게 되었을 때 정화가 완성된 것으로 본다. 1954년부터 시작된 정화가 16만에 결실을 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중흥된 한국불교

 

통합종단이 설립되고 나서 50년이 흘렀다. 지난 50년간의 성과에 대하여 현응스님은 기조발표에서 그 동안 조계종이 이룩한 한반도 내에서 형성된 사찰자산을 국가 법률에 의해 승계하여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일무이한 단체인 점등을 포함하여 일곱까지 성과에 대하여 말 하였다.

 

일곱가지 성과만으로 본다면 한국불교는 이미 중흥이 된 것이나 다름 없다. 소수가 다수를 제압하는 과정 못지 않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루기 까지 비구승들의 역할이 매우 컷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불교을 대표하는 조계종단은 비구승들의 불교라고 한다. 종헌에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이렇게 사부대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는 선언에 불과할 뿐 실제로 비구승들의 불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험난한 정화과정등으로 인하여 오늘날의 조계종이 있기 까지 비구승들의 역할이 지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리모델링과 신장개업

 

하지만 오늘날의 조계종이 있기 까지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다. 정치권력에 기대어 소수의 비구승들이 벌인 정화운동과 그 과정에서 폭력, 그리고 종권다툼으로 인한 일련의 불미스러웠던 사건들에 대하여 불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비구승들 중심의 조계종단의 성과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고쳐야 될 점도 많다. 그런 점에 대하여 현응스님의 기조발표에서 지적하였듯이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명칭에 대한 재검토, 조계종의 종지의 내용, 사회에 대한 자비의 실천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어디까지나 비구중심의 조계종에서의 개선방향이다.

 

종단의 명칭이나 종지의 내용에 대하여 거론하는 것은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한 체 개선하겠다는 말과 같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집수리를 하여리모델링하는 것과 같고, 장사가 안된다고 하여 간판을 바꾸어 다는 신장개업과 같은 것이다. 주인은 그대로인데, 외양만 바꾸어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게 하는 것과 같다.

 

제발 이제 기복 그만하자

 

불자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고 있다. 인터넷으로 중계된 토론회에서 어느 재가불자는 단상의 스님들을 향하여 호소를 하였다. “제발 이제 기복 그만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불교관련 인터넷신문은 보도 되지 않았다. 주로 단상의 스님들만의 발언만 보도 되었을 뿐 재가불자의 하소연과 호소는 스님들의 권위에 묻힌 듯 하다. 이런 발언에 대하여 단상에서 사회를 보는 스님이 제지하려 하자 그 재가불자는 "이 말은 꼭 전달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기복불교의 청산에 대하여 다시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불자들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 이제까지 기복으로 먹고 살아온 한국불교가 언제까지나 기복과 방편으로 일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자들에게 법을 전하는 것이 더 큰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자들에게 단물을 빼 먹는 것처럼 기도라는 기복과 천도재라는 방편으로 유지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이 기도와 방편은 이제 그만두고, 그 대신 법회와 법문을 해 달라는 것이 어느 불자의 간절한 호소 이었다.

 

기독교따라하기와 힌두교따라하기

 

현재의 비구승 중심의 조계종단에 일부만 있을 뿐 사부는 없다고 한다. 비구, 비구니와 더불어 우바새, 우바이도 종단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재가불자들은 신도라고만 불리울 뿐 기도나 천도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듯 하다. 그런 기도와 천도재는 매우 비불교적이다.

 

기도는 기독교따라하기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도하라는 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대유행하는 것은 한국불교가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신앙으로 변질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한국불교의 종단에 대하여 대한기독교 OO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천도재는 힌두교따라하기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영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아트만을 부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옷을 갈아 입듯이 몸만 바꾼다고 말하는 선사들의 가르침은 한국불교가 힌두교화 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한국불교의 종단에 대하여 대한힌두교 OO이라고 역시 표현하였다.

 

불자들은 이런 잘못된 관습을 타파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타력적이고 유신론적이고 유아론적인 불교를 그대로 내버려 둔채 종단의 명칭변경이나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한 종교평화선언 운운한다면 이는 비구승들만의 리그이고, 비구승들의 기득권 유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은 변화를 싫어해

 

한국불교는 조계종단만의 불교가 아니다. 조계종단에서 추구하는 이념이 한국불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이다. 불교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성종단이 리모델링과 신장개업식으로 변화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비구승들의 기득권지키기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구승들이 기득권을 내어 놓을 것 같지도 않다. 지난 반세기 전에 소수의 비구승들이 다수의 대처승들을 몰아냄으로서 어렵게 만든 종단인데 모든 불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의견을 청취하여 정책에 반영하여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비구승들은 기득권 세력이 되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기득권세력의 특징은 변화를 싫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화를 요구하는 집단에 대하여 불온하게 여기고 더욱 더 기득권에 집착한다.

 

기득권층에서 스스로 개혁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개혁은 기득권층이 아닌 외부에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인터넷 공간에 활동하는 네티즌들 일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제2정화운동을

 

지금은 50년전의 상황과 다르다. 50년전에 소수의 비구승들이 명분과 정권의 힘을 빌어 정화를 이루었다면, 현대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정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런 정화는 어떤 것일까.

 

기득권에서 추진하는 리모델링이나 신장개업식의 정화가 아니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 한국불교 1700년 역사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주류불교로 돌아 가는 것이다.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충실하는 것이 인터넷상에서 벌일 수 있는 제2의 정화운동이다.

 

 그런 운동에 참여하는 네티즌들은 사이버검객이라고도 볼 수 있고, 불교계의  체 게바라’라고도 볼 수 있다.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

아르헨티나출신 혁명가

사진 : http://en.wikipedia.org/wiki/Che_Guevara

 

 

 

 

 

 

 

20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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