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장선우 감독의 공개편지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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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12. 7. 28.

 

장선우 감독의 공개편지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 묻습니다

 

 

 

 

장선우 감독이 보내 준 책 따타가따의 일부 내용을 타이핑 하였다. 책에 후기로 되어 있는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 묻습니다이다. 폰트사이즈 12로 하여 17페이지에 이르는 긴 편지 형식의 글을 타이핑 하였는데 꼬박 9시간 걸렸다.

 

이렇게 9시간 걸려 타이핑 한 이유는 이 서간문이 가치 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불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마치 쪽 집게로 꼭 집어 내듯이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수신자가 달라이 라마 존자로 된 서간문 형식이지만 사실상 한국불교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보라고 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서간문을 작성한 장선우 감독은 영화감독이라기 보다 수행자에 가깝다. 그것도 부처님의 원음을 따르고자 하는 초기불교수행자이다. 사용된 용어나 인용된 문구를 보면 초기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엿 볼 수 있고, 더구나 미얀마에 가서 위빠사나 수행을 한 이력도 가지고 있어서 호소력이 있다.

 

장선우 감독은 어떤 생각을 달라이 라마 존자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을까. 영화감독이라기 보다 하나의 초기불교수행자로서 장선우 감독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12-07-28

진흙속의연꽃

 

 

 

 

 

제주고기 페’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 묻습니다.

 

이 공개편지는 2010

봄에 작성된 것이다.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여

여기에 발문을 대신하여 싣는다.

 

 

 

 

삼보에 귀의하오며,

멀리서 존자님 계신 곳을 향해 삼배 올리고 이글을 씁니다.

저는 한국의 최남단 섬인 제주도에 살고 있으며 그 섬에서도 남쪽 끝에 살고 있으니 한국에서는 부처님 계셨던, 그리고 지금은 존자님이 머무시는 인도에 가장 가까운 데 사는 셈입니다.

 

제가 사는 바닷가 마을은 150호되는 아주 작은 마을인데요. 여름 우기에는 매우 습하고, 겨울에는 바람이 심해서 춥습니다.

 

그런데도 살만해서 사실은 너무 좋아하여 서울에서 내려와서 5년째 살고 있습니다. 시골집을 고쳐서 불 때고, 텃밭도 가꾸고, 찾아오는 손님이 의외로 많아서 저의 색시가 시골집을 하나 더 얻어 카페를 열었는데 <카페물고기>라고. 이름이 좋아서인지 자리가 좋아서인지 제법 사람들이 붐빕니다.

 

사람들이 많이 물어요, 왜 물고기냐고. 그러면 웃으면서 그냥 물고기가 좋다고……. 한때 물고기를 많이 먹어서 참회하는 거라고…. 그런데 어느 날 누가 속삭이더군요. 물고기는 윤회를 벗어나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뜻한 다고…. 그 말이 괜히 좋았습니다. 저의 꿈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쓸데없는 소리부터 하는 것 존자님의 자애심이 멀리서도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자애로운 마음이 사람을 얼마나 감동시키는지, 자애(metta)의 힘이 얼마나 큰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조금은 알고 있거든요.

 

 

 

사실 저는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일했었습니다.

 

한때 <화엄경(華嚴經, The Way to Buddha)>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 갔을 때는 <리틀붓다(Little Buddha)>도 함께 상영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처음 티베트불교의 신비를 조금 느꼈을 것니다. 제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는 만들때마다 논쟁이 되었고요. 그 가운데 <거짓말(Lies)>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을 때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상영되었는데 교황청에서 항의 성명까지 내는, 전 세계적으로 좀 시끄러웠던 영화도 있습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리고 <금강경(金剛經)>의 유명한 사구게(四句偈)를 모티브로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드는 사이버 액션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아시겠지만 <금강경>은 한국불교의 주류인 조계종의 소의경전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숱한 번역서, 주석서, 해설서, 강좌, 법문들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제게는 끝내 알 것 같다가 모르겠고 다가가다가 또 모르겠고, 그러다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 알 것 같은 마음에서 한 건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재앙이었다고 했습니다.

 

금강경 사구게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면 그 복이 우주를 칠보로 덮는 것보다 크다더니 돌아온 것은 비난가 저주 섞인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 뒤 저는 몽골에서 추진하던 영화<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질 들뢰즈의 책과 같은 제목)>마저 촬영 직전에 무산되는 것을 보고 다시는 영화 안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제주로 내려와 버렸습니다. 귀양살이 간다고…. 제주는 예로부터 왕에게 잘못 보이거나 해서 죄를 물어 유배(流配)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 모든 결과가 저의 무지와 뿌리 깊은 자만심, 아집,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된 결과라고 눈치챘습니다. 남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자신을 힘들게 했는지, 그 과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복입니까?

내 생에 이런 복이 오다니…. 행복했습니다.

스승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스승을, 가르침을….

방황은 멈추었고, 역마살은 빠졌으며, 무지는 제거되었다고….

그분, 공양 올려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붓다, 그분을 비로소 만난 것입니다.

 

저는 지금껏 불교를 바탕으로 영화도 만들고, 스님들과 교우하고, 선방(禪房)을 드나들고, 안거(安居)를 나고, 천 배, 만 배, 수만 배 절을 하고, 예불을 하고, 독경을 하고, 법문을 듣고, 경전을 뒤적거리고, 진리요, 길이요, 법이라고 강변하는 유관된 서적들을 찾아 뒤적거리고 또 뒤적거렸지만 나라는 중생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여기, 제주에서 불자들의 모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초기불전을 공부하는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팔정도에서 말하는 정견(正見)이 무엇이냐고….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또는 모두 자신의 견해는 당연히 바른 견해라고 생각하고 안했는지도 모르죠.

 

정견(sammāditthi), 그건 사성제(四聖諦, ariyāsacca)를 바르게 아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제 자신이 부처님도 모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팔정도(八正道)를 듣고 배우고, 빠알리어로 전승된 초기경전을 보기 시작하고….

 

아, 부처님은 이런 분이셨다는 말인가? 이렇게 가르치셨다는 말인가?

 

짧은 기간이지만 미얀마의 한 수행센터에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도 해 보았습니다.

 

닙바나(열반)란 무엇입니까?

 

탐(, lobha), 진(, dosa), 치(, moha)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스님의 가르침은 너무 간단하고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면 탐냄은 무엇이고 성냄은 무엇이고 어리석음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벗어납니까?

 

아, 그렇게 완강하던 나라는 것이 무너지고 변하는 것을 봅니다.

 

번뇌의 일어남을 다 보게 됩니다. 번뇌의 사라짐을 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코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무기(無記), 차라리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금강경>은 부처님께서는 설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금강경>뿐 아니라 거의 모든 대승경전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며 당연히 설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교과서를 본 적도 없이 단지 소설을 보고 공부한다면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고, 공부한들 또한 제각기 소설이나 쓰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한국불교의 괴로움을, 그 괴로움의 원인을, 그 원인의 괴로움의 소멸을, 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제가 장황하게 제 이야기를 먼저 말씀 드리는 이유는 존자님께 똑같은 의문이 들었고 이것을 해명해주실 분이 존자님밖에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후 무슨 업보인지 영화를 다시 안하겠다는 다짐을 잊어버리고 당시 인도 갠지스 강 주변을 무대로 살아가셨던 스승으로서 붓다의 생애를, 가르침을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저처럼 불자이면서도 부처님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데 대부분의 일반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앞섰고, 설사 못하더라도 저 자신을 이를 통해 스스로 공부시키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존자님께서 언젠가, <밀라레파(Milarepa)> 시사회 때라고 그러던데, 할라우드에 붓다 영화를 제안하셨다는 소식에 고무되기도 했습니다. 아, 붓다를 가지고 영화화해도 되는 거구나, 지금 여기에 필요한 거구나 그런 기분이 들게 했으니까요.

 

그래서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시봉했던 아난다가 되어, 아난다의 눈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고, 쓰고, 또 고쳐 쓰고…. 그렇게 3년 넘게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부처님은 멀어지더라고요.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붓다는 다가갈 수 없는 어떤 것이라 느껴져서, 더구나 몇 편의 영화에, 단 몇 시간 분량에 붓다를 담다니…. 무모한 생각이 들어 몇 번인가 그만 내려놓을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부처님이 너무 아름답고 한편 너무 슬퍼서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 반려자의 격려도 컸고요.

 

그 사람은 저 보다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도반이자 때로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따타가따(Tathāgata, 如來)>라는 제목의 3부작 원고를 보더니 말하더군요.

 

‘이제 그분에게 보여도 되겠다’고….

 

 

 

 

그분은 물론 존자님이십니다.

 

그래서 영문 번역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러던 차에 어느 분의 소개로 텐진 돈네(Tenzin Dronme)를 만났습니다. 존자님 가까운 제자는 존자님의 성을 따라 텐진을 이름에 붙여주시더군요. 잠깐이었지만 그분에게 듣는 티베트불교와 존자님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일었습니다.

 

듣기로는 빠알리 초기경전부터 부파불교(部派佛敎), 중관(中觀), 유식(唯識)… 탄트라(Tantra)에 이르기까지 티베트불교를 이루는 거대한 교학 체계가 인상적이었고 분파를 뛰어 넘어 불교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감명 깊었습니다.

 

거기다가 존자님이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인기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상대방을 중심으로 본다’는 그런 얘기들은, 이분은 정말 자아(유신견, 有身見)를 벗어나신 분이라고 믿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존자님을 다람살라로 찾아 뵙기를 갈망하게 되었고, 면담 신청에 대한 절차도 알아두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람살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책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텐진최깝이란 분이 쓴 <달라이라마와 함께 지낸 20년>이란 책입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여건이 쉽지 않은 시절에 스승을 찾아 한국을 떠났다고 존자님 곁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다더군요. 그래서 존자님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읽어 나가는데 아니 좀 아상하네. 공성(空性), 공성 하는데….

 

존자님 얘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다른 스님들 이야기도 좋고, 순례기도 좋고, 보시(布施)하고 연민하는 그런 자애심이 곳곳에 넘쳐나고…. 그런데 그 많은 수행담 가운데 부처님은 없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꿈에 현현하고, 카일라스 산까지 숭배하면서….

 

공성을 말하면서도 어떤 구름사진 하나 내놓고 지혜의 눈으로 보아야한다고 그러고, 존자님께서는 그걸 검증하시고 인정하시고, 꿈에 무슨 약을 주어서 먹었다 그러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꿈을 해몽하고, 점을 치고, 비방을 짓고 하는 행위들을 경계하셨는데, 수행 중에 어떤 표상을 보더라도 거기에 집착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은 것 같은데….

 

제자에게 한없이 자애로우시면서도 엄격하셨던 분이 부처님이 아니신가요? 혹시 제자가 잘못된 길로 가도 자애의 정을 보이십니까? 아니면 그 모두가 존자님의 가르침인가요?

 

제자는 힌두교도들이 호수에 목욕하면 죄를 정화한다고 믿는 것은 안쓰러워하면서 전체투지(全體投地)로 몽골에서 카일라스 산에 오른 건 숭고하다고 보더군요. 그 분별도 좀 이상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스님이란 분이 그 책 전체 어디를 보아도 부처님 말씀이 인용되고, 가르침을 따르고, 기리고자 하는 데는 없더군요. 기껏해야 계(), 정(), 혜(), 지(), 관() 이라는 표현이 한 군데 보이는데 엄격히 이것도 붓다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쓴 것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책 전체를 다 읽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뭐 어때? 존자님께서는 누누이 사성제를 말씀하셨으니까 그것만 있으면 되지….’

 

그렇게 자위하며 갖고 있던 존자님의 <사성제 법문집>(The Dalai Lama, Four Noble Truths, 주민황 옮김)을 먼지 털어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런던에서 강연하셨고, 한국어판에 붙이는 존자님의 이름도 서문도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集聖諦)는 그런대로 읽어 나갈 수 있었는데 멸성제(滅聖諦)와 도성제(道聖諦)에 이르러서는 부끄러워서 또한 읽어나가기 힘들더군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도 아니었습니다.

 

서성제를 아주 창조적으로 해석해 놓으셨더군요.

 

나가르주나(龍樹)가 존자님의 스승이라더니 과감하게 멸성제는 중론(中論) 또는 공성(空性)으로 대신하셨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도성제에는 팔정도가 사라졌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을 이루신 후 초전법륜으로 굴리셨던 중도(中道)인 팔정도(八正道), 반열반에 드시기 직전까지 말씀하시며 가르치셨던 팔정도는 없었습니다.

 

성문승(聲聞乘)들이 하는 거라고 계, 정, 혜로 가볍게 언급하시고, 그 자리에 대신 자비심(또는 보리심)과 탄트라 수행이 자리 잡았더군요.

 

소승불교라고 불리우는 상좌부(上座部, theravāda)불교와 수만 리 떨어진 북방의 대승불교의 중간지점에서 그 모든 스펙트럼을 끌어 안는 티베트불교라는 환상이, 기대가 산산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승 없이, 준비된 마음 없이 사성제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布施), 지계(持戒)의 이득부터 점차적으로 상대에 알맞게 설하신 후 사성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부드럽게 된 후에애 사성제를 설하시곤 하셨습니다. 하물며 팔정도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간단히 계(), 정(), 혜()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자리에 자비심과 탄트라수행이라니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겟습니까?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시기 직전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 이야기 기억하시지요?

 

육사외도(六師外道)라 하나요? 떠돌이 수행승 수밧다가 그 당시 여섯 분의 수행집단의 지도자를  하나하나 들먹이며 그 중에 누가 최상의 지혜를 지녔고 누구는 지니지 못했냐고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침상에 누우신 채로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을 가로막는 건 경전 상에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하라 수밧다여, 그들이 스스로 자처하듯이 모두 최상의 지혜를 가졌건 아니면 모두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건 아니면 누구는 최상의 지혜를 가졌고 누구는 갖지 못했건 간에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리라. 이것을 잘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존자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런 도, 팔정도가 없으면 거기에는 첫 번째 사문(수행자)도 없다. 두 번째 사문도 없다. 세 번째 사문도 없다.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수밧다여….(디가니까야16, 대반열반경)

 

 

또한 반열반에 드시기 전 아난다에게 거듭거듭 당부하신 이 말씀도 기억하시겠지요? 산스크리트 경전(āgama, 아함경)에도 있을 테니까요. 아니 당연히 있어야하니까요.

 

 

- 아난다여, 내가 죽고 나면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내가 없더라도 그대들은 자신을 섬(또는 등불)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歸依處)로 삼아 머물고, 남의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등불)으로 삼고, 법(담마)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아난다여….

 

 

다 아시겠지만, 마하깟사빠 존자는 부처님 장례를  치른 후, 비법(非法)이 횡횡하기 전에 교단이 무너지기 전에 부처님의 율과 법을 모아서 외우자고 결집을 호소 합니다. 거기에 모인 오백의 아라한이 중심이 되어 부처님 가르침(담마)은 확인 되고 추인된 뒤 외워서 전승되다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날 6차 결집에 이르기까지 기적처럼 전해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인류의 최고의 유산이며, 신비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비법이 부처님 법 위에 군림한다면 이것을 자애의 마음으로 인내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존자님께서는 사성제 법문집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에 대해서 말할 때, 부처님을 과거의 인도에서 태어나 정신적 삶의 길을 보여준 역사적 인물이라고 한정시켜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의식의 수준들’이나 ‘정신적 깨달음의 수준들’이라는 개념을 바탕에 두고 부처의 경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고 한편은 합당해 보이는 이 견해가 매우 두려운 결과를 가져온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견해는 당시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창작경전들이 쏟아져 나오고 대승불교가 태어나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적 인물’이라는 말 뒤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져 있구나.

 

아, 이렇게 생각하시니까 사성제 법문인데도 부처님은 안 보이고 부처님 가르침(법, Dhamma)도 없구나.

 

나가르주나에서 미륵보살까지 인용하고, 온갖 논객들을 거론하면서도 부처님 말씀은 없구나. 그래도 연기(緣起)도 추론으로 이해하시는구나.

 

그 많은 인용들 가운데 부처님 말씀은 마지막에 단 한 번 인용하시더군요.

 

 

“그대 스스로 해야 한다!”

 

 

이거 근데 부처님 말씀 맞나요?

 

존자님, 황송하게도 그 인용조차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 누구나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존자님께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부처님 행적과 가르침은 역사적인 것이므로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까? 아니면 존자님이 말씀하신 ‘의식의 수준들’이나 ‘정신적 깨달음의 수준들’은 결집본(초기경전)에는 없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그 결집은 역사적이므로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심한 설사병으로 병석에 계셨을 때 악마 마라는 ‘세존이시여. 이제 빠리닙나바(반열반)에 드십시오.’라고 권하고 권합니다.

 

부처님께서 몸을 추스리시고 아난다 앞에 나셨을 때 부처님께서 혹시 돌아가실까봐 제 정신이 아니었던 아난다가 말합니다.

 

 

-저는 부처님께서 승가를 두고 아무런 분부도 없으신 채로 빠리닙바나에 드시지는 않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아난다여, 그런데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따로 숨김없이 법을 설하였다. 여래에게는 나는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는 생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승가에 대해서 무엇을 더 당부한다 말인가?

 

 

존자님, 붓다께서 그렇게 안과 밖이 없이 따로 숨김없이 법을 설하였다고 하셨는데, 무엇을 더 바라느냐고 하셨는데 더 이상 어떤 법이 부처님 교단에 필요한 것입니까?

 

대승(大乘)이라 무엇입니까?  금강승(金剛乘, 밀교)이란? 그 숱한 분파, 종파는 무엇입니까?

 

다양한 문화 때문입니까? 아니면 나무가 우거지듯이 곁가지들이 생겨나는 건 자연의 이치입니까?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승은 곁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인도불교사>등 여러 가지 문헌을 빌어 보건대 대승이 일어난 배경에는 수 많은 원인들과 조건들이 겹쳐지고 겹쳐져 있어서 실상을 알기 어렵지만 극심한 혼란기에 시대적 요구가 있었던 건 분명한 거 같고요, 소위 부파불교로 복잡하게 분열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브라만들의 역할이더군요.

 

부처님 재세 시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위세를 잃어야했던 브라만들은 다시 아소까(asoka)왕의 담마(Dhamma)정책으로 오랜 동안 숨죽였던 모양입니다. 그 브라만들이 마우리야(Maurya)왕조의 마지막 왕을 살해하고 슝가(Sunga)라는 새 왕조를 세웁니다. 사성계급 카스트제도를 복원하고, 동물의 희생 제사를 복원하고, 잡다한 신들에 대한 예식이 다시 등장합니다. 당연히 불교는 상종해서는 안 될 그 어떤 것으로 떨어집니다.

 

그 내용이 마누(Manu)법전에 상세히 전해지더군요.

 

브라만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승원과 탑을 파괴하고 비구를 죽이는 것은 보통이었더군요.

 

부처님 법을 결집했던 빠알리어는 폐기되고, 부처님 법을 온 누리에 펼치고자했던 아소까 왕, 그분의 담마 칙령을 브라흐미(Brahmai)문자는 더 이상 사용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산스크리트어가 공용화됩니다. 얼마나 증오심이 가득했으면 언어까지 폐기했겠습니까?

 

더불어 산스크리트어로 정리된 부처님 경전은 재편집되면서 왜곡을 면할 수 없었으며(초기경전의 대응경전이라는 아함경조차 빠알리 경전과는 크게 다르더군요)부처님 제자들은 자기 구제에만 매달리는 소승으로 매도되고, 붓다는 신격화 되어 비슈누(Vishnu)의 화신이라고 그 아래 흡수해 버림으로써 이것이 불교에 온갖 부처, 보살, 신중이 붓다를 대신해 등장하는 계기와 무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브라만 출신들인 용수(龍樹, Nagarjuna), 무착(無着, Asanga), 세친(世親, Vasubandhu), 마명(馬鳴, Asvaghosa) 등 극히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또는 신비주의적인 불교의 접근방식이 현재 대승권에서 쓰는 반야부(般若部) 경전등 창작경전을 뒷받침하거나 또한 새로운 경전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대승불교라는 것은 또 다른 물질적, 정신적 요구 위에서 피어난 것이지 곁가지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존자님,

평생을 네 가지 필수품에만 의지해서 흙 발우 하나 들고 죽는 그날까지 하루 한 끼를 위해 걸식(탁발)의 길을 걸으셨던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모습은 그렇게 버려지고, (중생구제란 미명 아래) 결국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주문이나 외우고 제나 지내주면서 앉아서 받아먹었던 브라만들처럼 감각적 욕망의 길을 따라간 것은 아닌지요? 말이 좋아 중생구제이고, 말이 좋아 대승(大勝)이고 금강승(밀교)이지 한 마디로 불교를 버리고 브라만교의 힌두교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요?

 

“불멸 후 400년에서 500년을 전후해서 나타난(대승의) 문헌들이 법화경, 반야경, 열반경, 십지경, 방등경, 무량수경, 유마경, 그리고 금강경은 서기 3세기경에 써졌고, 화엄경은 서기 4세기경 중앙아시아 고대 불교 왕국인 호탄에서 편찬되었으며… 그러나 이런 대승불교의 역사는 서기 5, 6백년이 지난 후에는 퇴세하고 서서히 탄트라 불교(밀교)로 변질되어 서기 1200년까지 지속되다가 그 후 대중적 신앙 종교인 힌두교의 아류 종파들과 차이가 없게 되어 결국 힌두교에 흡수되고 말았다.”(‘불교는 깨달음의 과학’황경환 지음, 068 대승불교 참조)

 

러시아 출신의 저명한 불교학자 체르바츠키(Stcherbatsky)박사도 이미 이 사실을 한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하야나(대승)주의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고 고따마 붓다는 초월적인 신이 되어 버렸다’라고….

 

 

하지만 존자님께서는 대승경전들이 부처님의 또 다른 비전(祕傳)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더군요.

 

 

-대승경전들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부처님이 일상적 의미의 일반 대중에게 가르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더구나, <반야경>들과 같은 대승경전들은 대승불교를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이 가르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생각은 부처님이 수행자의 다양한 적성과 다양한 심신 상태에 맞춰서 가르침을 주었다는 불교도들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도저히 존자님께서 하셨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발언이었습니다.

 

일반 대중이 아니라면 부처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 목갈라나 아니면 결집을 주도한 마하깟사빠 존자나 아난다, 우빨리, 아누룻다 등 500명의 아라한들 말고 또 특별한 제자를 두었다는 말씀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따로 숨김없이 법을 설하였다’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부처님이 거짓말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결집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까?

 

좋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 복잡한 문제이므로 그만두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승이 생겨난 과정은 어떻든 간에 현재 대승불교는 존자님이 말씀하시는 당시 인도불교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초기불교 위에서 개화된 것이 아니라 서로 방패와 창처럼 서로 모순되는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불행히도 존자님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음은 존자님께서 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저 역시 감화 받은 존자님의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수행을 전혀 하지 않은 것보다는 어떤 종교라도 수행하는 편이 더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개종한 사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기가 과거에 믿었던 종교를 비판하거나 자기 나라의 전통족인 종교를 비판하는 일이 가끔씩 벌어지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당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과거에 거졌던 종교가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해서, 그 종교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도 전혀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선 생각해야 합니다.

 

 

너무 감동적입니다. 저는 이 메시지가 인류의 평화를 위한 최고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로 인한 갈등과 파괴는 인류 역사에 최고의 불행이었고 지금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속에 갈등을 벗어나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마다 이 메시지는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모든 종교를 안아주시고 다독거려주시는 그 힘이야말로 어찌 보면 불교를 웅변해주시는 것이기도 하구요.

 

부처님께서도 논쟁을 깊이 경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혜를 성취한 사람은 견해나 사변으로 판단하지 않으니 그러한 본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 지각과 견해를 고집한다면 그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하는 것입니다.(숫따니빠따, 마간다경)

 

 

꼬삼비라는 곳에서 부처님 보는 앞에서 비구들이 계율 문제로 심하게 다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아난다가 부처님께 묻습니다.

 

 

-부처님, 어떻게 하면 비구 승가가 머물 때 편안히 머물 수 있습니까?

 

-비구들이여, 비구는 자신은 계는 구족하지만 남에게는 계에 대하여 비난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비구 승가가 머물 때 편안히 머물 수 있다.

 

 

아난다가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거듭거듭 물을 때마다 부처님께서는 한 가지씩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자신은 계는 구족하지만 남에게는 계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는 숙고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안달하지 않는다.

 

그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어렵지 않게 얻는다.

 

그리고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아난다여, 이렇게 하면…. (앙굿따라니까야 5.106 아난다경)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이겠습니까? 더 이상 어떤 방법이 승가를 편안히 머물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만약에 승가가 구족해야할 계율 자체가 바르지 않고, 숙고하는 법이 없고, 네 가지 선(四禪)이 없고, 통찰지를 통한 해탈 그 자체가 없다면, 다시 말해서 부처님이 이르신 법을 버리고 부처님 제자들이 다른 것에 매달린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대승에는 부처님 계와 율에는 없던 보살계까지 따로 생겼다군요. 이렇게 계율마저 바뀌고, 부처님 법은 축소되고 변형되어 한쪽으로 밀려나고, 숱한 창작 경전들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부처님 법을 대신한다면 부처님께서도 존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과거에 믿었던 종교를 비판하거나 자기나라의 전통적인 종교를 비판하는 일이 가끔씩 벌어지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당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무엇에 집착하여 논쟁을 하신 적도 없지만 마다하신 적도 없었습니다. 중생들의 잘못된 견해나 업을 무작정 보아 넘기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물며 승가의 불선업(不善業)을 그냥 덮어두셨겠습니까? 무엇이 잘못인지 논증하시고,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깨우치게 해서 그들을 선업으로 이끌고 지혜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존자님, 그렇다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애만이 능사이겠습니까? 지혜 없는 자애가 진정한 자애일 수 있습니까?

 

부처님 가르침에는 중생제도가 없습니까? 자비심이 없습니까? 자신만의 이기적인 해탈을 주장합니까?

 

모든 것을 숨김없이 가르치셨다는데 왜 대승불교라는 데는 온갖 부처, 보살, 신중, 조사(祖師)는 넘쳐도 정작 부처님이 없고, 부처님 법은 또한 그렇게 사라졌습니까?

 

 

 

 

존자님께서는 불교수행에 대해 이렇게 조언하시더군요.

 

 

- … 며칠이나 몇 년 안에 수행이 성취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수행을 성취하는 데는 몇 겁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결단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을 불교도라고 생각하고, 진실로 불교수행을 하고 싶으면 몇 백만 겁이 걸릴지라도 수행을 완성하겠다고, 시작할 때부터 확고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삶 자체에는 내재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모든 날들이 의미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산띠데바라는 이의 시로 격려하시더군요.

 

 

우주공간이 존재하고

중생이 남아 있는 한

나 역시 여기 남아서

세상의 고난을 없애도록 하소서!

 

 

이런 아름다운 말은 세상 도처에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아무것도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제 자신의 경험으로 압니다.

 

부처님께서는 적어도 수행에 관한한 이렇게 감성적이고 애매한 표현을 결코 쓰시지 않았습니다.

 

 

 

-비구들이여 이 길은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가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팔정도)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띠빠타나, satipatthana, 四念處)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몸에 대한 관찰, 느낌에 대한 관찰, 마음에 대한 관찰, 법에 대한 관찰을 차례로 하나하나 분명히 가르치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칠년을 닦는 사람은 두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과, 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년까진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육년을 닦는 사람은…오년을…사년을…삼년을…이년을… 일년까진 아니더라도 …. 일곱 달을…. 일곱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섯 달을…. 다섯 달을…. 네 달을…. 세 달을…. 두 달을…. 한 달을…. 반 달을…. 반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칠 일을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 길은 유일한 길이니…. (디가니까야 22, 대념처경)

 

 

이렇게 분명하고, 자세하게, 간절하게 수행의 방법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처방이 분명하고 확실하고, 거듭 유일한 길이고, 누구든지 된다고 하시는데 모두들 제각기 딴소리를 하고 처방이 제각기라면 그분들이 부처님 제자 맞습니까?

 

몇 백 만겁이 걸릴지 모른다고요? 그럴테지요. 부처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토록 거듭거듭 당부하셨는데….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법을 섬(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다행히 부처님 원음을 담은 빠알리 경전이 100여 년 전부터 각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가 공유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십 수 년 전부터 번역이 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 개인적으로 얼마나 축복이고 행운인지 감당하기조차 힘듭니다.

 

혹시 그곳도 지금은 사정이 다른데 제가 예전 일을 갖고 집착한 건가요?

 

그렇다면 백번 사죄드리고 참회하고 참회할 것입니다.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태어나고 조건 지어진 모든 것들은 어차피 변하고 무너지고 사라지기 마련인데 미련한 중생이 공연히 시비를 일으킨 건가요?

 

계행도 부족허고, 지혜도 없고 늘 방일한 제가 존자님을 괴롭혔다면 저의 허물을 자비로움으로 용서하시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왜 안되는지? 왜 붓다를 역사적인 인물로 보면 안 되는지? 왜 현존했던 인류의 스승으로서 붓다를 보면 안 되는지, 왜 정작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셨던 가르침()은 밀려나거나 사라지고 달리 만들어진 경전, 이론들이 압도하고 있는지….

 

 

 

존자님이 번뇌가 되고 괴로움이 되다니….

 

정말 눈물이 나고 또 납니다.

 

오직 하나 부처님을 의지하고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이 무례를 범했다고 이해해 주십시요.

 

다행히 부처님도 말씀하셨고 존자님도 자주 말씀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누구나 내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그러나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고통으로 두려워 하고,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다른 생명들도 참으로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자님 계신 곳을 향해 다시 삼배를 드리며

한국, 제주에서, 장선우 올립니다.

 

 

2010,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