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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삶의 보편성과 부처님의 평등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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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의 가르침

2015. 6. 15.

 

청정한 삶의 보편성과 부처님의 평등사상

 

 

부처님과 데바닷따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을까? 율장소품에 참모임분열의 다발(破僧犍度)’이 있다. 이 다발의 첫 번째 이야기가 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Chasakyapabbajjākathā)’이다. 이 다발에서 부처님과 데바닷따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극히 짧다. 단지 데바닷따가 여섯 명의 싸끼야족 출신의 사람들과 함께 출가하였다고만 쓰여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함께 출가하였던 아누룻다, 밧디야, 우빨리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설명 되어 있다.

 

동생에게 출가를 권유하는 마하나마

 

부처님이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고난 후 카필라성을 방문하였다. 6년의 고행후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대략 칠년이 넘었을 때 라 보여진다. 이후 말라족의 도시인 아누삐야에 머물고 있었다. 이 때의 상황에 대하여 율장소품에서는 그때 아주 유명한 싸끼야 족의 왕자들이 세존의 출가를 따라 출가했다.(Vin.II.180)”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아누룻다가 있다.

 

아누룻다의 형은 마하나마이다. 하나마나는 부처님의 제자인 남자신자 가운데 뛰어난 것을 보시를 하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마하나마는 동생인 아누룻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하나마]

지금, 아주 유명한 싸끼야 족의 왕자들이 세존의 출가를 따라서 출가했다. 우리 가문에서는 아무도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그대가 출가하면 어떨까?”

 

(Chasakyapabbajjākathā-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 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다른 가문에서도 출가 하였으니 우리가문에서 출가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은 출가이유가 되지 않는다.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부분 자발적 출가를 한다. 그럼에도 가문을 위해서 형제 중 한명이 출가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에 아누룻다는 거절한다. 그러나 마하나마는 세속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하여 알려 준다.

 

아누룻다는 왕족출신으로서 계절마다 머물 수 있는 세 개의 궁전에서 보냈다. 그런 그에게 재가의 생활에 대하여 실감나게 들었다. 그래서 작업은 끝나지 않고, 작업의 끝은 알려지지 않는다. 언제 작업이 끝날 것이고, 언제 작업의 끝이 알려질 것인가? 언제 우리는 편안하게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완전히 얻고 갖추고 즐길 것인가? .(Vin.II.180)”라며 의문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출가를 결심한다. 문제는 어머니이었다.

 

어머니, 저 집을 떠나 출가하고자 합니다

 

아누룻다는 어머니를 설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완강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누룻다여, 너희 두 아들은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싫어함이 없으니 죽더라도 없이는 지내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너희들은 살아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Vin.II.181)”라며 반대 했다.

 

부처님 당시 양가집 자제들이 출가하려면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맡았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랏타빨라경에 따르면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먹고 마시고 놀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누리고 공덕을 쌓으며 즐겨라. 우리는 네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M82)”라 하였다. 이렇게 대부분 장자의 집에서는 아들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아누룻다는 세번이나 간청했다. 간청할 때 마다 이렇게 말했다.

 

 

cchāmaha, amma, agārasmā anagāriya pabbajitu. Anujānāhi ma agārasmā anagāriya pabbajjāyā

 

[아누룻다]

어머니, 저 집을 떠나 출가하고자 합니다. 제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요.”

 

(Chasakyapabbajjākathā-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 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어느 부모도 아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려 할 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가업을 잇고 또한 보시하며 공덕을 지으며 살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머니, 저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요라고 말하였을 때 처음에는 거절한다. 그럼에도 두 번, 세 번 이야기 한다.

 

청정도론에서도 출가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자따까를 인용하여  “풀잎 끝의 이슬이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듯이 인간의 수명도 그와 같습니다. 어머니, 저의 [출가를] 방해 하지 마십시요. (Ja.iv.122)”라 되어 있다. 어머니에게 출가를 방해하지 말라 달라고 말한다. 이는 출가를 허락해 달라는 말보다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눈물로서 만류한다. 맛지마니까야에서는 부모를 즐겁게 하지 않고,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가운데, 머리를 삭발하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M26)”라 되어 있다. 아들이 출가하는 것에 대하여 눈물로서 만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번 결심이 서면 이를 꺽지 못한다. 결국 부모도 출가를 허락하고 만다. 허락하지 않을 경우 탈출도 불사한다.

 

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를 결심한 밧디야

 

아누룻다의 어머니는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 번 요청하였지만 세 번 다 거절 당했다. 그때 아누룻다의 어머니가 생각해 낸 것이 밧디야이다. 밧디야는 아누룻다의 친구로서 싸끼야 족을 통치하고 있는 왕이었다.

 

아누룻다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싸끼야 족의 왕 밧디야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면, 너도 출가하거라.”라고 말하였다. 일종의 조건부 출가이다. 왕이 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한 말이다. 그러자 아누룻다는 밧디야에게 이보게, 나의 출가는 자네에게 달려 있네.”라며 밧디야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아누룻다의 집요한 설득에 싸끼야족의 왕 밧디야는 출가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에는 칠년을 기다려 달라고 하였으나 기다릴 수 없다고 하자 계속 줄어 칠일만 여유를 달라고 하였다. 칠일이면 아들과 형제에게 왕정을 인계할 수 있는 기간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순치황제의 출가시

 

왕의 지위에 있다가 출가한 경우도 종종 있다. 청나라 순치황제(1638-1661)가 대표적이다. 청나라 3대 황제로서 18년을 제위하였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일설에는 동악씨의 죽음과 동악씨의 황후 추서 반대에 순치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해서 제위에서 물러난 뒤 오대산으로 출가를 했고라 되어 있다. 순치황제의 출가가 분명치 않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순치황제의 출가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고 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天下叢林飯似山 천하총림반사산
鉢盂到處任君餐 발우도처임군찬
黃金白璧非爲貴 황금백벽비위귀
惟有袈裟被最難 유유가사피최난

곳곳이 총림이요, 쌓인 것이 밥이니
대장부 어디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을 아지 마소
가사 옷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려워라.

朕乃大地山河主 짐내대지산하주
憂國憂民事轉煩 우국우민사전번
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
不及僧家半日閒 불급승가반일한

이내 몸 중원 천하(
中原天下) 임금 노릇하건 만은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워
인간의 백년살이 삼만 육천 날이란 것
풍진(
風塵) 떠난 명산 대찰 한 나절에 미칠 손가.

悔恨當初一念差 회한당초일념차
黃袍換却紫袈裟 황포환각자가사
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
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락제왕가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의 잘못으로
가사 장삼 벗어 치우고 곤룡포(
袞龍袍)를 감게 됐네
이 몸을 알고 보면 서천축(
西天竺) 스님인데
무엇을 인연하여 제왕가(
帝王家)에 떨어졌나.

未生之前誰是我 미생지전수시아
我生之後我是誰 아생지후아시수
長大成人裳是我 장대성인재시아
合眼朦朧又是誰 합안몽룡우시수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이런가.
자라나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내라 더니
눈 한 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뉘이런가.

百年世事三更夢 백년세사삼경몽
萬里江山一局碁 만리강산일국기
禹疏九州湯伐桀 우소구주탕벌걸
秦呑六國漢登基 진탄육국한등기

백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
만리의 이 강산은 한판 노름 바둑이라
대우씨(
大禹氏) 구주 긋고(劃定) 탕임금은 걸()을 치며
진시황(
秦始皇) 육국 먹자, 한태조(漢太祖) 새 터를 닦았네

兒孫自有兒孫福 아손자유아손복
不爲兒孫作馬牛 불위아손작마우
古來多少英雄漢 고래다소영웅한
南北東西臥土泥 남북동서와토니

자손들은 제 스스로 제 살 복을 타고났으니
자손을 위한다고 마소 노릇 그만 하소
수 천년 역사 위에 많고 적은 영웅들이
동서남북 사방에 한줌 흙으로 누워 있네

來時歡喜去時悲 내시환희거시비
空在人間走一回 공재인간주일회
不如不來亦不去 불여불래역불거
也無歡喜也無悲 야무환희야무비

올적에는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네
속없이 인간세에 와서 한 바퀴를 돌단말가
애당초 오지 않았으면 갈일 없을 텐데
기쁨이 없을 텐데 슬픔인들 있을 것인가.

每日淸閑自己知 매일청한자기지
紅塵世界苦相離 흥진세계고상리
口中吃的淸和味 구중흘적청화미
身上願被白衲衣 신상원피백납의

나날이 한가로운 내 스스로 알 것이라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고통 여의고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
禪悅味)
몸 위에 입는 것은 누더기 한 벌 원이로다.

四海五湖爲上客 사해오호위상객
逍遙佛殿任君棲 소요불전임군서
莫道出家容易得 막도출가용이득
昔年累代重根基 석년루대중근기

사해와 오호에서 자유로운 손님 되어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세속을 떠나는 일 쉽다 말을 마소
숙세(
宿世)에 쌓아 놓은 선근(善根)없이 아니되네

十八年來不自由 십팔년래부자유
山河大戰幾時休 산하대전기시휴
我今撤手歸山去 아금철수귀산거
那管千愁與萬愁 나관천수여만수

18
년 지나간 일 자유라곤 없었도다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던가
내 이제 손을 털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천만 가지 근심 걱정 내 아랑곳할 것 없네.

 

(순치황제 출가시)

 

 

순치황제출가시를 보면 율장소품에서 밧디야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사끼야족 왕 밧디야가 친구 아누룻다의 요청에 의하여 칠일만에 왕위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부처님에게 출가를 하였다. 순치황제 역시 황위를 3황자에 물려 주고 오대산으로 출가 하였다.

 

! 행복하다. ! 행복하다. (aho sukha, aho sukha)

 

출가시에서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禪悅味)라는 구절이 있다. 이 부분과 유사한 내용이 밧디야와 관련된 이야기에서도 보인다. 밧디야는 왕출신으로 출가한 후에 ! 행복하다. ! 행복하다. (aho sukha, aho sukha)라고 자주 감흥어린 말을 했다. 이런 말을 연발하자 주변의 수행승들은 의문을 품었다. 예전에 왕위에 있었을 때의 행복을 추억하면서 말한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부처님은 밧디야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그러자 밧디야는 이렇게 말했다.

 

 

[밧디야]

세존이시여, 제가 왕이었을 때는 내궁에 있어도 호위들이 엄하게 지켰고, 외궁에 있어도 호위들이 엄하게 지켰고, 성안에서도 호위들이 엄하게 지켰고, 성밖에서도 호위들이 엄하게 지켰고, 나라 안에서도 호위들이 엄하게 지켰고, 나라 밖에서도 호위들이 엄하게 지켰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호위받고 수호받아도,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의심하고 전율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혼자서 숲속으로도 가고 나무 밑으로도 가고 빈집으로도 가도, 두려워 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평안하고 순조롭고 안정되고 사슴과 같은 마음으로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의미에서 제가 숲으로도 가고 나무 밑으로도 가고 빈집으로도 가서 이와 같이 ! 행복하다, ! 행복하다.’라고 자주 감흥어린 말을 하는 것입니다.”

 

(Chasakyapabbajjākathā-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 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왕 출신 밧디야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얼마나 홀가분한 삶인지 알 수 있다. 누구나 기회만 되면 왕이 되려 하는데 왕위를 포기 하고 난 다음 출가의 삶이 너무 행복한 것이다.

 

사슴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출가의 홀가분함은 더 이상 호위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근심하지도 않아도 된다. 또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왕위를 찬탈하려는 세력이나 독이 든 음식으로 죽이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밧디야의 상황과 비슷하게 묘사 된 장면이 순치황제의 출가시에서 “18년 지나간 일 자유라곤 없었도다에 해당될 것이다. 이제 손털고 부처님 도량에서 노닐 때에 천만 가지 근심 걱정 내 아랑곳할 것 없네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순치황제 출가시의 모티브는 밧디야의 이야기에서 얻어진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밧디야는 왕위를 버리고 숲속에서 마음 껏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사슴과 같은 마음으로 지냅니다라 하였다. 이는 평화로운 마음을 상징한다. 이는 맛지마니까야 진실에 대한 장엄의 경에서사슴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을 보면서(M89)”라고 표현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숲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사슴은 평화의 상징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사끼야족 왕자들 중의 하나가 데바닷따


아누룻다는 친구 밧디야를 설득하여 마침내 함께 출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에 따르면 몇 명 더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Atha kho bhaddiyo ca sakyarājā anuruddho ca ānando ca bhagu ca kimilo ca devadatto ca, upālikappakena sattamā, yathā pure caturaginiyā senāya uyyānabhūmi niyyanti, evameva caturaginiyā senāya niyyisu.

 

그래서 싸끼야 족의 왕 밧디야를 비롯해서 아누룻다와 아난다와 바구와 낌발라와 데바닷따는 일곱 번째로 이발사 우빨리와 함께 사군을 이끌고 유원지로 나아가듯, 사군을 이끌고 나아갔다.

 

(Chasakyapabbajjākathā-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 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사끼야족의 왕과 왕족이 여섯 명임을 알 수 있다. 여섯 명중에 데바닷따의 이름이 보인다. 율장소품 참모임분열의 다발은 사실상 데바닷따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를 보면 데바닷따는 조연에 불과하다. 이름이 단 두번 나오는 것으로 그친다. 그런 사끼야족의 왕자들 중의 하나가 데바닷따인 것이다.

 

이발사 출신 우빨리의 기지

 

이야기에서 주목할 사항은 우빨리이다. 우빨리는 왕과 왕족들을 따라온 이발사이었다. 왕과 왕족출신들이 요란하게 출가하는 행렬에 따라온 미천한 출신의 이발사이었던 것이다.

 

왕과 왕족출신들은 어느 지점에 이르자 장신구를 모두 내려 놓았다. 출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외투에 담아서 꾸러미를 만들었다. 왕출신 밧디야는 꾸러미를 우빨리에게 주면서 이보게, 우빨리여, 돌아가라, 그대는 이것으로 그대의 생활밑천이 충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가를 결심하였지만 왕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우빨리는 기지를 발휘한다. 사실 우빨리도 출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속으로 말한다.

 

[우빨리]

싸끼야 족들은 가혹하다. ‘이 자가 젊은이들을 출가시켰다.’라고 나를 죽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싸끼야 족의 왕자들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할 것이다. 왜 나는 안된단 말인가?”

 

(Chasakyapabbajjākathā-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 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만일 이발사 우빨리가 왕과 왕족들의 장신구를 들고 되돌아 갔을 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왕족출신들의 부모들이 눈물로서 출가를 반대 하였을 것인데 장신구를 들고 나타났을 때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본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출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미천한 이발사출신 우빨리가 출가하는 것에 대하여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빨리는 왕과 왕족들의 장신구를 들고 한참 가다가 되돌아 왔다. 이를 본 왕과 왕족들이 이보게, 우빨리여, 왜 돌아 왔는가?”라며 묻는다. 이에 우빨리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 한다. 그러자 왕족들은 우빨리를 동행하게 한다.

 

태생적 자만을 제거하고자

 

왕과 왕자들은 우빨리와 함께 부처님을 찾아 뵈었다. 그런데 율장소품에 따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사끼야족 왕자들은 이렇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maya, bhante, sākiyā nāma mānassino. Aya, bhante, upāli kappako amhāka dīgharatta paricārako. Ima bhagavā pahama pabbājetu. Imassa maya abhivādanapaccuṭṭhānaañjalikammasāmīcikamma karissāma. Eva amhāka sākiyāna sākiyamāno nimmānāyissatī”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저희 싸끼야 족들은 교만합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이발사 우빨리는 오랜 세월 우리의 하인이었습니다. 그를 먼저 출가시켜주십시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 맞이하고, 합장하고, 공경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우리 싸끼야족들의 싸끼야족 교만이 제거 될 것입니다.”

 

(Chasakyapabbajjākathā-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 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Upali

 

 

싸끼야족들은 왜 스스로 교만하다고 하였을까? 그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우월한 위치에 따른 자만이다. 왕과 왕자들로 이루어진 여섯 명은 태생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이는 태생적 자만이다. 좋은 가문에서 훌륭한 부모를 잘 만나 남보다 뛰어난 용모나 신체적 조건을 갖는 것도 일종의 태생적 자만이다. 여기에다 잘 교육받았다는 ‘교육의 자만’일어 날 것이다. 더구나 남보다 더 많이 가진 부자라면 ‘부자의 자만’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왕과 왕자들은 태생적 자만, 교육적 자만, 부자의 자만 등 모든 자만을 사실상 다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또 하나는 부처님과 같은 종족출신이라는 종족의 자만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타종족 출신과 다르다는 우월감이다. 실제로 부처님의 마부출신 찬나는 일생동안 자만에 가득차서 살았다. 마부출신 찬나는 내가 누군데!”라는 자만으로 살았다. 찬나는 부처님의 유성출가를 도와 준 장본인으로서 사리뿟따나 목갈라나와 같은 부처님의 상수 제자 마저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였다. 그런 찬나는 승단에서 골치 아픈 존재이었다. 부처님은 찬나의 행위를 잘 알기에 열반시 찬나에 대하여 묵빈대처할 것을 유훈으로 남겼다.

 

왕과 왕자들 여섯 명과 함께 온 이발사출신 우빨리가 가장 먼저 출가하였다. 그것은 사끼야족 출신들의 자만을 제거하기 위해서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발사를 가장 먼저 출가 시켰다. 이어서 왕과 왕자들을 출가 시켰다. 이렇게 되자 왕과 왕자들은 이발사에게 합장공경해야 했다.

 

출가순이라 하지만

 

어느 조직이나 단체이든지 먼저 들어 온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 특히 군대가 매우 심하다. 불과 한달 단위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승단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구참과 신참과의 위계질서는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계속 그렇게 가는 것은 아니다. 도중에 도와 과를 증득하면 위치가 바뀔 수 있다.

 

율장소품에 따르면 왕과 왕자들 여섯 명 중에 가장 먼저 깨우친 자는 왕 출신 밧디야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존자 밧디야가 일 년 안에 세 가지 명지(tisso vijjā) 를 깨우쳤고라 하였다. 밧디야는 출가한 당해년도에 아라한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아누룻다는 하늘눈(dibbacakkhu: 천안통)을 개안했다 하였고, 아난다는 흐름에 든 경지(sotāpattiphala:수다원)’가 되었다고 했다. 데바닷따는 범속한 신통(pothujjanika)’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범속한 신통은 통속적인 신통을 말한다.

 

율장소품에서 우빨리가 가장 먼저 출가했다. 그러나 우빨리가 일년 안에 흐름에 들었다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왕 출신이 밧디야가 가장 먼저 아라한이 되었기 때문에 먼저 출가한 우빨리는 합장공경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경의 대상은 출가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미가 아니라 장로이다

 

도와 과를 누가 먼저 증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법구경 인연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거룩한 경지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고 “한 장로가 이곳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들은 보지 못했다고?

 

“세존이시여. 한 사미를 보았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는 사미가 아니라 장로이다.

 

“세존이시여, 지나치게 작았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나이가 들었다고 장로라 부르지 않고 장로의 자리에 앉았다고 장로라 부르지 않는다. 진리를 꿰뚫고 많은 사람에 대하여 불살생을 확립하면, 그를 장로라 한다.

 

(법구경 Dhp260  인연담, 전재성님역)

 

 

법구경 260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을 보면 파격적이다. 20세도 되지 않은 사미에게 ‘장로’라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지혜를 깨닫지 못하면 장로라 부를 수 없음을 말한다. 단지 불러 준다면 ‘어리석은 장로’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구경에서는 “머리가 희다고 해서 장로가 아니다. 단지 나이기 들었으나 헛되이 늙은이라고 불린다.(Dhp260)”라 하였다. 지혜가 없이 나이만 든 사람에게 헛되게 나이만 먹은 늙은이라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과위에 따라 역전된 케이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그것은 스승과 제자가 과위에 따라 역전된 케이스를 말한다. 제자가 스승보다 먼저 아라한이 되어 이끌어 준다는 내용이다.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여기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딸랑가라에 주하던 담마딘나 장로는 무애해를 증득하였고, 번뇌가 다한 대인이었고, 큰 비구대중의 지도자였다고 한다.

 

그 분은 어느 날 자신이 낮 동안에 머무는 장소에 앉아서 '웃짜왈리까에 주하시는 우리의 스승이신 마하나가 장로께서 사문의 할 일을 해 마치셨을까 아닐까'라고 생각하다가 그가 아직 범부임을 보고 '내가 가지 않으면 범부로서 일생을 마치실 것이다'라고 알고는 신통으로 허공을 날라 낮 동안에 머무는 장소에 앉아계시는 스승의 곁에 내려앉았다.

 

절을 올리고 의무를 행한 뒤 한 옆에 앉았다.

 

'담마닌다여, 어떻게 이렇게 때 아닌 때에 왔는가?'

 

'스승님이시여, 질문을 드리려 왔습니다.'

 

'물어보게. 아는 대로 대답하겠네.'라고 스승이 대답하자 그는 천 가지나 되는 질문을 하였다.

 

장로는 묻는 것마다 걸림 없이 대답했다.

 

'스승님이시여, 스승님의 지혜는 매우 깊습니다. 언제 이 법을 증득하셨습니까?'

 

'60년 전에 증득하였네.'

 

'스승님이시여, 삼매를 닦습니까?'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네.'

 

'스승님이시여, 그렇다면 한 마리의 코끼리를 만들어 주시길 청합니다.'

 

스승은 흰 코끼리를 만들었다.

 

'스승님이시여, 이제 이 코끼리가 귀를 치켜세우고, 꼬리를 뻗쳐서, 코를 입에다 박고, 무서운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스승님을 향하여 달려오도록 만들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스승은 그렇게 만든 뒤 힘껏 달려오는 코끼리의 무서운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가려 하였다.

 

번뇌 다한 장로는 손을 펴서 스승의 가사 자락을 붙잡고서 '스승님이시여, 번뇌 다한 자에게도 두려움이 있습니까?' 라고 했다.

 

스승은 그때 자신이 범부임을 알고서 '담마딘나여, 나를 좀 도와주시게.'라고 말하고서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이시여, 스승님을 도와드려야지 하고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고 하면서 명상주제를 설했다.

 

장로는 명상주제를 들고 경행처에 올라 세 번째 발걸음에 이르러 최상의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스승은 성을 잘 내는 성미였다고 한다. 이러한 비구들은 광명 때문에 흔들린다.

 

(청정도론, 20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 111-113)

 

 

역전된 스승과 제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자가 먼저 아라한이 된 케이스다. 그러나 스승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자 제자가 스승에게 깨닫게 해준다는 이야기이다.

 

스승은 제자가 자신 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스승이 제자에게 “나를 좀 도와주시게”라고 말하며 제자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일지라도 제자가 먼저 깨달으면 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청정한 삶의 보편성

 

재가자로서 도와 과를 이루면 공경받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재가자도 성자가 될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은 외도 밧차곳따에게 “밧차여, 나의 제자로 흰 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살며, 다섯 가지의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재가의 남자신도가 백 명이 아니고, 이백 명이 아니고, 삼백 명이 아니고, 사백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M73)”라고 말씀 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흰옷을 입은 재가자 중에 아나함의 경지까지 이른 자가 수도 없이 많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출재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청정한 삶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역시 출재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청정한 삶은 반드시 출가하여야만 실현 되는 것은 아니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도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밧차곳따의 큰 경(M73)에서 왓차곳따가 부처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존자 고따마여, 이러한 것들을 존자 고따마께서도 성취했고 수행승들도 성취했고, 수행녀들도 성취했고, 제자로서 흰 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사는 재가의 남자신도도 성취했고, 존자 고따마의 제자로서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쾌락을 수용하는 재가의 남자신도도 성취했고, 제자로서 흰 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사는 재가의 여자신도도 성취했으므로 이러한 청정한 삶은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마하왓차곳따경-Mahāvacchagotta sutta-밧차곳따의 큰 경, 맛지마니까야 M73, 전재성님역)

 

 

흰옷입은 재가자가 아나함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청정한 삶의 실천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청정한 삶의 보편성’을 말한다. 비록 재가자가 감각적 쾌락을 수용하는 삶을 살아도 오계나 팔계를 지키며 가르침을 실천하였다면 성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라 해서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청정한 삶을 사는 재가의 여자신도 청정한 삶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승속의 구별이 없고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의 평등사상

 

율장소품 참모임분열의 다발 첫 번째 이야기는 여섯명의 사끼야족의 출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섯 명은 사끼야족의 왕과 왕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발사 우빨리가 합류하여 모두 일곱 명이 한꺼번에 출가하였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자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왕족들의 자만을 없애려고 이발사 출신을 먼저 출가시켰다. 그래서 왕자들은 여기 이발사 우빨리는 오랜 세월 우리의 하인이었습니다. 그를 먼저 출가시켜주십시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 맞이하고, 합장하고, 공경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먼저 출가한 자를 공경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왕과 왕자출신들은 이발사 출신에게 합장공경하였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승가에 들어 오면 태생이나 출신과 관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먼저 깨닫는 것이다. 먼저 도와 과를 성취하면 출가순서에 구애 받지 않는다. 이를 법구경 인연담에서 아라한이 된 사미에 대한 이야기나 청정도론에서 제자가 스승을 인도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고, 구참과 신참의 경계는 모호 하다. 오로지 깨달음의 과위로 서열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감흥어

 

싸끼야족 왕과 왕자들 그리고 이발사가 함께 출가하였다. 그런데 가장 먼저 깨달은 자는 왕 출신 밧디야이었다. 일년 이내에 세 가지 명지를 깨우쳐 아라한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참모임 분열의 다발 첫 번째 이야기는 사실상 밧디야에 대한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데바닷따는 왕자로서 왕자들과 함께 출가하였다는 정도로 매우 간략하게 나온다.

 

부처님은 밧디야가 ! 행복하다. ! 행복하다.”라는 감흥어의 의미를 알았다. 마치 순치황제 출가시에서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禪悅味)라 한 것처럼, 밧디야는 왕으로서 지내다 출가하여 사슴처럼 평화롭게 지내는 대자유를 감흥어로 말한 것이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감흥어를 읊었다.

 

 

Yassantarato na santi kopā,

iti bhavābhavatañca vītivatto;

Ta vigatabhaya sukhi asoka,

devā nānubhavanti dassanāyā

 

[세존]

안으로 분노가 존재하지 않고

존재와 비존재를 뛰어넘어

두려움을 여의고 슬픔을 여읜 행복은

신들조차 결코 볼 수가 없다.”

 

(Chasakyapabbajjākathā-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 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아라한에게 분노가 일어 날 수 없다. 그래서 안으로 분노가 존재하지 않고 (Yassantarato na santi kopā)”라 하였다. 이는 고귀한 참사람에게는 안으로, 마음속에 어둠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성냄과 탐욕 등을 포함하는 원한스런 일 등을 토대로 합리화 되는 무수한 종류의 분노가 고귀한 길에 의해서 버려졌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818번 각주, UDA.164)”라 하였다.

 

존재와 비존재를 뛰어넘어

 

두 번째 구절을 보면 존재와 비존재를 뛰어넘어(iti bhavābhavatañca vītivatto)”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다나 주석서에 따르면 존재화는 성공, 비존재화는 실패, 존재화는 성장, 비존재화는 패퇴, 존재화는 영원, 비존재화는 단멸, 존재화는 공덕, 비존재화는 악덕, 존재화는 좋은 곳, 비존재화는 나쁜 곳 을 말한다. 존재는 존재화를 의미하고, 비존재는 비존재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화와 비존재화의 상태로 무수한 다양성이 성립하는데, 그것들은 네가 고귀한 길(사성제)을 통해서 뛰어 넘을 수 있다. (UDA164)”고 하였다.

 

세 번째 구절 두려움을 여의고 슬픔을 여읜 행복은(Ta vigatabhaya sukhi asoka)이라 하였다. 주석에 따르면 두려움을 여읜다는 것은 번뇌를 부수고, 마음에 분노가 없는 것과 두려움의 뿌리인 존재화와 비존재화의 다양성의 완전한 초월을 의미하고, 행복은 여읨의 행복, 최상의 경지의 행복을 통한 행복을 의미한다.(UDA164)”고 하였다.

 

네 번째 구절 신들조차 결코 볼 수가 없다(devā nānubhavanti dassanāyā)”라 하였다. 이는 길을 성취한 자를 제외하고 모든 화생한 신들은 정진하더라도, 그의 마음의 활동을 본다고 하더라도, 보는 것을 체험할 수 없고, 성취할 수 없고, 가능할 수가 없다. 하물며 인간이랴? 학인들도 범부인 일반사람처럼 거룩한 님의 마음의 활동을 알 수가 없다. (UDA164)”라 하였다. 이 주석과 관련하여 역자 주로서 법구경(Dhp.92)의 예를 들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쌓아 모우는 것이 없고

음식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

있음을 여의고 인상을 여의어

활동영역에서 해탈한 님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를 찾기는 어렵다.”(Dhp92)

 

 

 

2015-06-1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