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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한 자들의 도덕적 의무, 2월 19일 을지로 굴다리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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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기

2017. 2. 20.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한 자들의 도덕적 의무, 2 19일 을지로 굴다리 따비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한 존재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 존재가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문자화 한다는 것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기록의 대상이 됩니다.

 

또다시 사명당의 집으로

 

일요일 오후 신설동 사명당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요즘 일요일이면 으레 작은손길 봉사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월 말, 다음 주 일요일이면 을지로따비도 회향에 들어갑니다.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행합일의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는 숭고한 모임과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합니다.

 

 

 

 

 

 

 

 

 

 

 

 

 

 

 

사명당의 집에 도착하니 니르바나 필하모닉 강형진단장님과 소고실장님이 미리 와 있습니다. 제영법사님은 둥굴레차를 끓이고 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운경행님은 일이 있어서 고향에 내려 갔습니다. 저녁 을지로따비를 위하여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바나나 포장작업을 했습니다. 270개 가량 되는 바나나를 가위로 일일이 꼭지를 따면 강형진단장님이 수건을 깨끗이 닦습니다. 소고님은 비닐에 두 개 단위로 포장합니다. 3 1조로 작업하니 바나나 작업은 금방 끝났습니다.

 

바나나 작업을 할 때 여운 대표님이 도착했습니다. 모든 작업이 다 끝나자 모두 테이블에 둘러 앉았습니다. 모두 5명 입니다. 모이면 이야기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 사는 이야기, 잡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로 봉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하는 도중에 탈북청소년 출신 Y가 도착 했습니다. 현재 H 3학년 입니다. 중학교 때 탈북해서 칠팔년 되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 작은손길과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탈북청소년 Y

 

오늘 Y군을 초청한 것은 이제 마지막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2월말로 을지로 따비가 회향함과 동시에 탈북청소년 따비도 동시에 회향합니다. 그동안 작은손길에서는 을지로따비, 독거노인반찬따비, 탈북청소년따비를 십년 넘게 해 왔는데 2월말로 모든 것이 회향됩니다. 독거노인반찬봉사는 작년 12월에 이미 회향한 바 있습니다. 3 5일 탈북청소년에 대한 장학금 수여식이 있는데 리더격인 Y군이 중국으로 일년간 유학을 떠나기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보자고 하여 도착한 것입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음식을 배달 했습니다. 짜장면과 짬뽕 등 중국요리입니다. 여기에 팔보채 하나를 더 시켰습니다. 여운대표님, 강형진단장님, 소고님, 제영법사님, 그리고 Y 군 이렇게 모두 6명이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Y군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탈북 했을 때 중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된 것이 자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다들 자식처럼 대견하게 관심을 표명합니다.

 

Y군에 따르면 지나치게 관심 보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공짜로 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데 남한에 오니 이런 저런 이유로 밥도 사주고 용돈도 주고 장학금도 주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며 의문했다고 합니다. 무언가 이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라 합니다. 이는 탈북자들이 크게 의존하는 교회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경계했는데

 

현재 남한에는 약 3만명 가량 탈북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 거의 대부분이 교회와 연관 되어 있습니다. 탈북할 때 교회를 끼고 탈북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선교의 목적도 있지만 어떤 이익도 개입되어 있다고 합니다. 브로커가 끼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손길에서는 전혀 종교색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작은손길에서는 탈북청소년들에게 불교에 불자도 꺼내지 않고 심지어 절에 한번 데려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사진반 등 취미생활을 하게 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셔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일체 종교색을 배제한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교회에서는 탈북자들에게 예배와 찬송을 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들을 활용하여 무언가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탈북학생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작은손길의 관심에 대하여 경계 했다고 합니다.

 

작은손길에서는 탈북청소년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벌써 칠팔년 되었다고 합니다. 매달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면 용돈도 준다고 합니다. 이런 호의에 이용해 먹는 것은 아닌지 처음에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은 순수한 지원임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을 열어 놓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봉사한다?

 

기브엔테이크(Give & Take)’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고받기입니다. 이런 말은 비즈니스에서나 통용되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거래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 돈을 지불하는 것도 기브앤테이크 입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면 거래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이익만 취하려 한다면 한 두 번 거래할 수 있지만 계속 될 수 없습니다.

 

손해 본다고 생각했을 때 더 이상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서로 윈윈하는 기브앤테이크 방식의 거래만이 오래 갑니다. 그러나 기브앤테이크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베풀고 나누고 봉사하고 보시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보시를 강조합니다.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의 공덕을 특히 강조합니다. 보시를 하되 를 내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봉사단체의 경우 티를 냅니다. 언론 매체에 광고를 하는가 하면 기사를 만들어냅니다. 심지어 글로벌화 된 봉사단체의 경우 요지에 사자형상의 비석을 세워 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문구를 커다랗게 써 놓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와는 역행하는 것입니다.

 

탈북청소년들에 대하여 용돈과 장학금을 주는 것은 대가 없이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를 이해 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게 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의 전환점이 일어 났을 때 봉사는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원 받은 만큼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Y군 역시 그런 단계에 까지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이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꽉 차고 여문 것 같습니다. 아마 사업을 하여 크게 성공한다면 봉사하는 삶을 살아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념만 있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한국불교

 

저녁을 먹으면서 봉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여운대표님은 봉사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봉사라는 말 대신 수행이라는 말을 선호 하는 것 같습니다. 일방적으로 주고 시혜하는 듯한 봉사라는 말 대신 하나의 수행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입니다. 그리고 티를 내지 않고 주는 무주상보시입니다. 지행합일과 무주상보시, 이렇게 두 가지에 대하여 지금까지 고민해 왔다고 합니다.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과 보살의 정신은 그다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을지로노숙자봉사나 독거노인반찬봉사, 그리고 탈북청소년봉사 등 작은손길에서 이제까지 10년 이상 해 왔던 것을 기존 사찰이나 불교신행단체에서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익이 되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불교단체에서 노숙자나, 독거노인, 탈북청소년에 대한 봉사가 이익이 된다면 교회나 성당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고 앞장 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사찰이나 불교단체에서 이런 활동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옥중생이 모두 성불할 때까지 나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등의 거대한 대승보살도의 이념이 있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한국불교에서는 구호만 있고 실천이 따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노숙자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폄하하기 까지 한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노숙자나 부랑자 같은 사람들에게 보시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주면 점점 게을러 져서 자립심을 잃게 만든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한국불교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무엇보다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돈만 들어 가는 일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그 일로 인하여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면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이익도 안되는 일에 올인할 사찰이나 불교단체는 현재 없는 듯 합니다.

 

왜 하필이면 부랑자냐고

 

저녁 8 30분에 을지로 따비(봉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번이 지나면 이제 한번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듯이 을지로 굴다리에는 긴 줄이 서 있습니다. 그 중에는 낯 익은 얼굴도 있습니다. 백발의 나이 든 노인은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관절이 몹시 좋지 않아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절뚝 거리며 백설기 두 쪽과 바나나를 받기 위해 어디선가 걸어 왔습니다.

 

이날 봉사자는 여운대표님을 포함하여 10명이 참가 했습니다. 지난주 땅콩 보시했던 벽안보살님이 오셨습니다. 벌써 세 번째이니 서로 알아 봅니다. 이병관부부님이 오셨습니다. 이병관 부부팀은 다음주 내복봉사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회향봉사하는날 내복 100벌을 봉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여운대표님의 사모님이 오셨습니다. 사모님은 작가 박완서님이 둘째 딸입니다. 범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거사님들봉사대로서 해룡님, 병순님, 종문님이 함께 했습니다. 이제 회향을 한 번 남겨둔 상태에서 이날 을지로굴다리따비에는 모두 13명이 봉사에 참가해 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을지로에서 노숙자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오해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일반사람들은 이해 하는데 불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노숙자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부랑자들에게 온정 베푸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공부가 덜 된 것으로 이야기하기 한다고 합니다. 특히 재가의 법사들이나 스님들의 경우 그래도 재보시 보다 법보시가 최고라는 말도 한다고 합니다. 노숙자, 독거노인, 탈북청소년 들에 대한 봉사에 대하여 가장 낮은 단계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불교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 대한 배려와 베풂과 보시와 나눔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한 자들의 도덕적 의무

 

탈북청소년 출신 Y군과 대화하면서 보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주는 행위에 대하여 가진 자들의 도덕적 의무라 생각합니다. 이를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지도층이나 기득권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층에 있는 자들의 당연한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기득권자들만이 도덕적 의무를 행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한 자들은 모두 도덕적 의무를 행사할 수 있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이웃이 굶어 죽어 가도 모른채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회에서는 가능할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과도 같다고 합니다. 만일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회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될 것입니다. 힘센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 하는 시대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를 말합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힘 없는 자는 힘 있는 자의 먹이가 됩니다. 약자는 잡아 먹힐까봐 늘 두리번 거리고, 강자는 잡아 먹을려고 두리번 거립니다. 만일 우리사회가 약육강식의 사회라면 동물과 같은 세계일 것입니다. 길거리의 개새끼들처럼 누구나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짐승과 같은 세상입니다.

 

기득권자들은 강자입니다. 강자가 인내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한 자, 조금이라도 능력 있는 자가 베풀고 나누어야 짐승 같은 세상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이 세상을 도저히 살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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