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미얀마불교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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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를 찾아서

2020. 9. 9.

 

미얀마불교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어제 연희동 다실에 갔었다. 우실라사야도 대중공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9 8일 화요일이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점심공양 행사에 참석한 것은 B법우님이 권유했기 때문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우실라사야도 대중공양 참석을 권유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았다. 평일이라 한창 일할 때이지만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었다. 일기일회(一期一會)이다. 일생일대에 있어서 다시 오지 않을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신 법우님에게 감사드렸다.

 

약속장소는 연희동 빌라이다. 오전 디지털3단지에서 업체미팅을 하고 곧바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가다보니 비탈길이다. 거의 꼭대기 즈음에 3층짜리 빌라가 여러 동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대개 비 온 다음날 날씨는 살맛 난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떠 있고 햇살은 따사롭다. 온도와 습도는 적당해서 쾌적한 날씨이다. 공기는 깨끗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서도 서쪽지역이 동쪽보다도 공기가 더 좋다는 것이다.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자들이 서쪽에서 더 많이 산다는 말을 어느 풍수가로부터 들었다. 그래서인지 서울 서쪽지역이 서울 동쪽지역보다는 환경적으로 더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곳 연희동도 그렇다.

 

오전 1045분경에 사야도를 태운 차가 도착했다. B법우님 차에 사야도와 법우님의 도반 두 명이 함께 탔다. 이날 참석자는 다실 원장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 명이다.

 

빌라 다실에서

 

다실은 빌라 3층에 있다. 들어가자 마자 느낀 것은 특별하다는 것이다. 빌라에 다실이 있는 것도 특별하지만 원룸형태라는 것이다. 벽도 터 버리고 천정도 터 버렸다. 천정은 경사진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실은 벽이 없어서 넓직하고 천정을 터버려서 높아 보였다. 창 밖을 보니 연세대학교가 있는 안산이 바로 앞에 보였다. 안산 너머에는 아스라이 북한산이 보였다. 고지대에 있는 빌라에서 그것도 3층에서 바라본 풍광은 전망이 좋았다.

 

다실에는 갖가지 다기와 소품들이 있다. 마치 골동품 가게를 보는 것 같다. 다실원장은 인사동에서 다실을 운영했고 차와 관련된 지도와 강의도 했다고 한다. 빌라에서는 각종 소모임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식사도 하면서 차도 마시는 공간을 말한다. 공부모임이나 법문을 듣는 장소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참석한 법우님들은 향천선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우실라사야도의 법문을 듣고 수행지도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공양을 하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식당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식당은 오래 이야기하는 것에 한계도 있고 여건도 맞지 않아서 연희동 다실에서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실라사야도는

 

우실라사야도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검색을 해보았다. 파옥출신이다. 파옥 숲속의명상센터가 개원했을 때 초기멤버였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 온지 14년 되었다고 한다. 한국과 미얀마를 왕래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그런 스님은 한국어가 유창하다.

 

대중공양형식을 빌어서 공양도 하고 법도 들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마치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어 놓는 입장이 되었다. 절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했다. 스님들은 직업이 없기 때문에 신도들의 시주에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절에 갈 때는 반드시 시물이나 보시금을 준비해야 한다. 벌이가 시원치 않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능력껏 보시금을 준비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사야도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테라와다 삼국중에서 미얀마는 수행의 나라라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교학의 나라, 태국은 계율의 나라라고 말했다. 이에 사야도는 미얀마는 수행의 나라라기 보다는 교학의 나라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따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근현대에 있에서 5차결집과 6차결집이 미얀마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야도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수행을 하는 비구는 전체비구의 2-3%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교학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한국불자들은 미얀마를 수행의 나라라고 하여 대부분 스님들이 수행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야도는 한국이야말로 수행의 나라라고 했다. 매년 이삼천명의 스님들이 안거를 나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대략 전체스님들의 이삼십프로가 수행승들인 것이다. 그것도 일년에 두 번 안거를 하고, 안거기간 중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등 철저하게 계를 지키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힘들다고 했다.

 

부처님도 허락한 청식(請食)

 

대중공양이란 무엇일까? 대중공양(大衆供養)의 사전적 의미는 불교신자가 여러 승려들에게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여러 스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대중공양의 본래 의미이다. 스님이 한분이라면 이것도 대중공양이라고 해야 할까? 대중공양이라기 보다는 청식(請食)에 가깝다.

 

청식이란 신도의 집에 스님들을 초대하여 공양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스리랑카에서는 탁발의 전통은 점점 사라지고 신도들의 청식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은 출가자가 걸식에 의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청식도 허락했다.

 

청식을 공양청(供養請)’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스리랑카의 경우 공양청을 하면 몇 개월을 대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최상의 음식을 준비한다.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수행자에게 공양하면 그 과보가 크다고 했다. 맛지마니까야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을 보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억배의 갚음이 기대된다.”(M142.9)고 했다.

 

축원 중에 최상의 축원은

 

신도가 보시를 하면 장로는 축원해준다. 법구경에 따르면 “예경하는 습관이 있고 항상 장로를 존경하는 자에게 네 가지 사실이 개선되니, 수명과 용모와 안락과 기력이다.(Dhp.109)라고 했다. 장로는 보시자에게 아유 완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이라고 축원해 주는 것이다.

 

축원중에서 최상은 장수축원이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릿차비 왕자의 경’에서도 “오래 사시오. 장수를 누리시오.(cira jīva, dighamāyu pālehī)(A5.58)라는 문구로도 볼 수 있다. 공양받은 부모는 자식에게 “오래 살아라. 장수를 누리라.”라고 축복해준다.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하인은 주인에게 “오래 사시오. 장수를 누리시오.”라고 축복한다. 수행자나 성직자에게 공양을 하면, 수행자나 성직자는 역시 “오래 사시오. 장수를 누리시오.”라고 축복해 준다.

 

장수축원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오래 살아서 공덕을 지으라는 것이다. 오래오래 즐기며 오래오래 살라는 것이 아니다. 오래살면 살수록 공덕지을 기회도 많아지기 때문에 장수축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로는 장수축원 이외에 용모, 안락, 기력에 대해서도 축원해 주었다. 장로는 아유 완노 수캉 발랑!”라며 축원 해주었는데, 이는 장수하시고, 아름답고, 행복하시고, 건강하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최상의 축원일 것이다.

 

진귀한 음식과 차()

 

식사시간이 되었다. 음식은 최상품이 준비되었다. 그렇다고 산해진미가 아니다. 간결하면서도 맛난 음식이다. 마치 스테이크처럼 생긴 소고기가 나왔다. 두께는 얇은 것이 특징이다. 코스요리처럼 시간차를 두고 음식이 나왔다. 마지막에 나온 것은 연잎밥이다.

 

 

식사 내내 빠지지 않은 것은 차()이다. 찻집이어서일까 생전 맛보지 못한 진귀한 차를 마셨다. 마시면 속이 후련한 듯하다. 마치 싸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무어니무어니해도 허브차만 못할 것이다. 커다란 도기 잔에 로즈마리, 민트, 박하가 들어 간 것이다.

 

 

다실 원장에 따르면 빌라 화단에서 기른 것이라고 한다. 말린 것과 안말린 것이 들어가 있다. 맛은 어떨까? 알싸하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스피아민트껌맛이 나기도 한다. 허브향을 코로 냄새 맡지만, 혀로도 느낀다. 후각과 미각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다. 마시면 나른한 것 같다. 마치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질문하는 것을 보면

 

우실라사야도와 세 시간 반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하여 오후 2시 반에 끝난 것이다. 다실 원장은 계속 서빙하고 차를 날랐다. 주로 향천선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세 명의 법우님과 넷이서 사야도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있다. 질문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현재능력을 알 수 있다. 질문은 개성의 표현이다. 답하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질문은 각각 다르다. 심오한 질문에는 심오한 답변이 나오게 되어 있다. 질문의 깊이로 그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를 알 수 있다. 수행점검도 질문에 따른 것이다.

 

질문은 신중해야 한다.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하면 답하기 힘들 것이다. 부처님이 침묵한 것은 질문으로서 요건을 갖추지 않았을 때이다. “이 세상은 무한합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면 말려 들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배우기를 바라며 연기법적으로 물었을 때 답했다. 시험하려 하거나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에 답을 해서는 안된다.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합니까?”라며 넌지시 질문하면 유아론자의 질문이기 쉽다.

 

사야도와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특별히 주제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다. 생각나는 대로 물어보았다. 이에 사야도는 성실하게 답해 주었다. 짧은 질문에 가르침을 근거로 길게 설명해 주었다. 질문 같지 않은 질문, 질문으로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질문에도 나름대로 설명해 주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자비심이 있어서 일 것이다.

 

위뭇띠라싸(vimuttirasa), 자유의 맛

 

세 시간 반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메모수첩에 기록해 두었다. 기록한 것을 모두 쓸 수 없다. 그 중에서 강조하여 여러 번 이야기한 것은 기록으로 남길만 하다.

 

자유란 무엇일까? 사야도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는 번뇌로부터 자유라고 했다. 이를 위뭇띠라싸(vimuttirasa)으로 설명했다. 이를 자유의 맛이라고 한다. 자유의 맛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고요함이라고 했다. 번뇌가 소멸된 아라한은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이는 다름 아닌 고요한 자라고 했다. 사야도는 불교인들은 궁극적으로 고요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요함을 뜻하는 빠알리어는 산띠(santi)이다. 산띠를 키워드로 빠알리사전을 찾아보니 숫따니빠따 마간디야에 대한 설법의 경’(Sn4.9)에 이런 게송이 있다.

 

 

물위로 솟아 가시줄기에 핀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듯, 성자의 삶을 사는 님은 적멸에 관해 말할 뿐, 탐욕을 여의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도 세상에도 더럽혀지지 않습니다.”(Stn.845)

 

 

성자는 적멸(santi)만을 말할 뿐이라고 했다. 이는 번뇌가 여읜 상태이다. 번뇌가 없으니 고요할 뿐이다. 그래서 아라한은 항상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고요함은 열반과 동의어이다.

 

고요함을 얻으려며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 번뇌로부터 자유로움을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유의 맛을 알아야 한다. 맛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알기만 할 뿐 볼 줄을 몰라서

 

고요함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했다. 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우리말 읽어 보세요.”를 예로 들었다.

 

읽어 보세요.”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읽는 것과 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읽어 보라고 했을 때 읽기만 할 뿐 볼 줄은 모른다는 것이다. 반만 할 줄 아는 것이다.

 

우리말 중에 먹어 보세요.”라는 말이 있다. 이는 먹기도 하고 보기도 하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먹기만 할 뿐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와 견()에서 지만 있을 뿐 견이 없음을 말한다.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볼 줄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볼 줄을 알았다.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초전법륜경’(S56.11)을 예로 들어서 지와 견을 말했다.

 

초전법륜경을 보면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순간이 있다. 그때 부처님은 네 가지 진리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아서깨달음을 이루었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에 대하여 야타부따냐나닷사나(yathābhūta ñāadassana)’라고 한다. 한자어로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번뇌가 생겨난다. 번뇌가 생겨나면 자유로울 수가 없다. 번뇌를 소멸해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자유는 고요함과 동의어라고 했다. 이는 해탈이 열반과 동의어라는 말과 같다.

 

미얀마불교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사야도와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어떤 질문도 다 받아 주었다. 향천선원에 다니는 법우님들은 사야도로부터 배우기 때문에 수준 높은 질문을 많이 했다. 주로 교학과 관련된 것이다.

 

교학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미얀마불교의 현재와도 관련이 있다. 현재 미얀마불교는 세계불교의 종주국과도 같은 위치에 있다. 수행적으로나 교학적으로나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고자 하고 있기 때문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미얀마불교는 불교의 보루와도 같다고 한다. 미얀마불교가 무너지면 불교도 무너짐을 말한다.

 

오늘날 미얀마가 왜 불교대국이 되었을까? 이는 교학의 힘에 따른다. 미얀마는 근세에 5차 결집을 주도했고, 현대에서도 6차결집을 주도했다. 이는 미얀마불교의 교학이 매우 탄탄함을 말한다. 어느 정도인가? 주석과 복주석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야도에게 물어 보았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미얀마가 불교종주국이 된 것은 주석과 복주석과 같은 교학이 밑바탕 되었기 때문아닐까요?”라고 물어보았다. 이에 사야도는 거사님이 말한 그대로입니다.”라며 추인해 주었다.

 

미얀마불교의 힘은 다름 아닌 주석과 복주석의 힘이라고 본다. 미얀마에서는 미얀마어로도 된 수많은 주석과 복주석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한국불자들은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미얀마스님들은 주석과 복주석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교학이 매우 탄탄하다.

 

교학을 하는 이유는

 

미얀마에서는 스님들이 대부분 교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수행승은 2-3%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얀마스님들은 왜 평생 교학을 공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수행하려고 교육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야도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수행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대는 중학생이라고 했다. 중학교에 다니면 방학 때 수행센터에 들어가서 수행한다고 한다. 중학교때를 수행의 비중을 100%로 보면 고등학교때는 50%, 대학교때는 20%라고 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점차 교학을 많이 배움을 말한다. 미얀마 스님들 대다수가 교학을 공부하는 이유로 볼 수 있다.

 

 

교학만 공부한다면 지식만 쌓일 것이다. 이는 앎만 있을 뿐 봄은 없는 것과 같다. 교학을 해서 알아야 하고, 수행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야도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수행하기 위해 배웁니다. 배울 때는 교육한 대로 배웁니다. 교육한대로 보기 위해 배웁니다.”라고 말했다. 알고 보기 위해서 배움을 말한다. 배움을 통해서 지식을 쌓고, 수행을 통해서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다.

 

미얀마불교에서 교학에 열중하는 것은 수행을 잘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주석과 복주석이라는 인류문화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주석과 복주석이 있는 한 미얀마는 불교대국이 될 수밖에 없고 세계불교를 리드하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이천오백년 전에 끝낸 정신문명

 

여러가지 것들을 물어보았다. “한국스님들 중에는 윤회를 믿지 않는 스님들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윤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만유인력이나 중력의 법칙처럼 윤회도 법칙임을 말한다.

 

제사와 관련하여 미얀마에서도 제사 지냅니까?”라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제사 지낸다고 했다. 아귀계가 인간이 사는 지표면에서 산다고 하는데 왜 볼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우리 몸을 보십시오. 우리 몸안에는 수많은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윤회나 신통 등 자신의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야도에 따르면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부처님이 이미 이천오백년전에 테스트를 하고 검증한 것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시대에 물질문명의 발전을 경이롭게 여긴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정신문명을 따라갈 수 없다. 부처님은 이미 이천오백년 전에 정신문명을 완벽하게 끝내 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천오백년전의 부처님의 말씀은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감명을 준다. 미래 에이아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부처님의 말씀은 통용될 것이다. 부처님의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삼법인 등 근본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한다. 만일 정법이 변질되어서 사라지면 한량없는 세월이 흐른 후에 부처가 출현하여 다시 법을 펼치는데 똑 같은 내용이다.

 

큰 인연이란?

 

세 시간 반동안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담마토크한 것이다. 사야도도 수행자이고 참석한 재가불들 역시 수행자들이다. 수행자들이 만나서 담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축복경에서 존경하는 것과 겸손한 것, 만족함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5)라고 했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이 잡담하는 것을 금했다. 그러나 법담하는 것은 장려했다. 이는 아누룻다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나눕니다.”(M128.21)라고 말하자, 부처님은 아누룻다여, 훌륭하다. 아누룻다여, 훌륭하다.”라며 추인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법담은 밤새도록 해도 된다. 선지식을 만나서 찾아 뵙고 공양을 올리고 가르침을 듣는 것은 불자로서 큰 즐거움이다. 이는 부처님이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6)라고 말씀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우실라사야도를 찻집으로 초대하여 공양청을 했다. 다 준비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려 놓은 것 같아서 미안했다. 이에 이렇게 좋은 찻집에서 최상의 음식을 즐기며 더구나 사야도의 법문까지 들으니 이것이 어떤인연일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야도는 큰 인연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사야도는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생에 한번쯤 만났을 것입니다. 그런 인연이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 다만 강한조건으로 있게 된 것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때 큰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좋은 인연에 감사를

 

우실라사야도는 한국사람 보다도 한국말을 더 잘한다. 일부 단어를 알아듣기 어렵다. 번뇌의 경우 한국사람들은 버언내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글자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보내식으로 들린다. 이와 같은 몇 가지 단어를 제외하고 표현이 정확하다. 이것은 법을 전하는데 있어서 큰 장점이다.

 

미얀마불교에 대하여 주석과 복주석의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축적된 주석과 복주석은 미얀마불교의 힘이다. 초기경전을 읽는데 있어서 앞선 사람들이 주석과 복주석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가르침을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아직까지 한국불교에서는 경전만 번역되어 있을 뿐 주석과 복주석은 번역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한국불교가 힘을 받으려면 우리말로 된 주석과 복주석을 번역해야 한다.

 

미얀마는 불교에 관한한 선진국이다. 미얀마어로 되어 있는 주석과 복주석이 있는 한 세계불교를 리드할 수밖에 없어서 전세계적으로 불교대국이다. 그래서일까 미얀마 스님들은 전세계로 미얀마불교를 전파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불교이다.

 

우실라 사야도와 함께 해서 행복했다.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도반들과 함께 맛난 음식을 먹고, 향내나는 차를 마시고, 더구나 훌륭한 법문을 들으니 이보다 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신 B법우님께 감사드린다. 좋은 인연이다.

 

 

2020-09-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