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천장사가 고향집 같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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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순례기

2021. 4. 5.

천장사가 고향집 같은 것은

 


한사람을 만나러 간다. 이른 아침 천장사로 차를 몰았다. 한사람의 인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세상에 잘나고 똑똑한 사람은 많다. 오욕락을 누리며 안락한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감동이 없다. 그러나 굴곡진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감동스토리가 있다

어제 오전 수월거사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통화를 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천장사 법우님이다. 사모님과 함께 천장사에 다녔는데 어느 해인가 함께 12일 순례 갔었다. 천장사 식구들이 허정스님과 함께 남쪽 지방으로 사찰순례 갔던 것이다. 그때 수월거사 부부팀에 속해서 카풀한 바 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험난한 삶을 살았다. 빚을 갚느라 십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매월 이자만 삼백만원 나가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 어느 정도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승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비 그치면


오전 7시 이전에 집을 출발했다. 7시에 일직아이씨에 진입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다. 안양에서 서산 천장사까지는 120여키로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일요일 오전 이른 아침이어서 인지 차가 없다. 제한최고속도로 달렸다. 어제 하루 종일 비가 왔지만 오늘 아침은 개어 있다. 그러나 하늘에는 구름으로 가득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산하대지는 깨끗해 보인다.

어제 내린 비는 생명의 비가 된 것 같다. 산의 색깔이 연두색으로 바뀌고 있다. 들에는 파릇파릇한 기운이 감돈다. 어제 비로 벚꽃이 다 떨어질 것으로 염려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벚꽃은 언제 비가 왔었느냐는듯이 새하얀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하늘에는 구름띠가 있고 대지에는 벚꽃구름띠가 형성되어 있다. 축복받은 계절이다. 갑자기 이런 시가 생각났다.

 


봄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밭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풀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입안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이수복)


이 시를 언제 접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교과서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시에서 처녀애들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서러운 풀밭이라는 말이 다가온다. 생명의 봄비에 대하여 왜 서럽다는 표현을 했을까?

 


서산휴게소에서 간단히 똑똑 쳐 보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세상이 환해졌다. 나무는 물을 잔뜩 머금고 연두색이 되려 하고 있다. 벚꽃은 구름띠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겨울에 죽은 자들이 고대하던 봄이 온 것이다. 시인은 봄비에 연두빛을 보고서 서럽다고 했을 것이다.

천장사 가는 길에

천장사 가는 길은 평화롭다. 해미아이씨에서 빠져나와 고북면으로 들어서면 탁 트인 들판이 나타난다. 저 멀리 서해 바다가 보일정도로 너른 평야지대이다. 그러나 다니는 차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적한 길을 따라 산쪽으로 가까이 가면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다. 목가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천장사 가는 길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천장사는 매우 높은 지대에 있다. 마치 제비집처럼 벼랑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동차가 절까지 올라가기 힘들다. 경사도가 30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사륜구동이 아니면 대단히 위험하다. 그래서 함부로 오르지 말라고 경고문이 써 있다. 이처럼 천장사는 오지에 있고 험해서 접근하기 힘든 절이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천장사는 가난한 절이다. 주지를 하려 하지 않는 절이기도 하다.

 


절의 주인은 누구인가?

일요법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기적같은 일이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거의 십년 된 것 같다. 허정스님이 주지스님으로 있을 때 천장사 일요법회가 생겼다. 서산, 당진 지역 부근 법우님들과 서울에서 온 법우님들이 일요법회 멤버였다.

 


허정스님 재임 기간중에 일요법회는 크게 활성화 되었다.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을 교재로 해서 진행되었다. 종종 일요법회에 참석했었다. 어느해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는 아내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허정스님이 주지 연임에 실패하면서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때가 2016년 이었던 것 같다.

 

 

 


오늘 천장사에 법당에 또다시 앉게 되었다. 수월거사님과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뜻 밖에 벨라거사님부부와 당진거사님부부를 보았다. 일요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감격의 포옹을 했다. 이밖에도 낯익은 법우님도 있고 처음 보는 법우님도 있다. 주지스님은 일년이 멀다하고 바뀌지만 신도들은 변함이 없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듯이, 절의 주인은 신도들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최인호 기념비가


천장사는 경허스님과 관련 있는 절이다. 경허스님이 깨닫고 난 다음 산 절로 알려져 있다. 최인호의 소설 길없는 길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소설을 보면 나그네가 천장사에 와서 하루밤을 자면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이어서일까 최인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아마 최근에 세워진 것 같다.

 

최인호기념비는 삼사년전에는 보지 못했다. 커다란 바위돌에 최인호 문학의 금자탑 「길없는 길의 무대」 - 천장암이라고 새겨져 있다.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곳 연암산 천장암은 경허대선사께서 18(1886-1904)간을 주석하신 정신적 도량으로서 그의 수법제자인 수월, 혜월, 만공이 수행했던 곳입니다. 작가 최인호(1946-2013)는 그 내용을 주제로 하여 소설 길없는 길을 썼고, 이로써 천장암은 한국문학사에 길이 전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천장사는 본래 암자이다. 지금도 현판에는 천장암이라 하여 암자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천장사로 부르고 있다. 사격이 커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선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암자에 걸맞지 않게 염궁선원이라는 선원이 있어서 천장사라고 하는 것 같다.


천장사는 경허스님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천장사를 더욱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처음 길없는 길을 읽었을 때 천장사가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했었다. 소설 속의 현장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허정스님과 인연

 

천장사는 허정스님과 인연이 되어서 처음으로 가보았다 . 아마 2012년이었던 것 같다. 스님이 인도에서 돌아와 천장사에 머물 때였다. 이후 종종 다녔다. 특히 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일요법회를 만들었는데 그때 인연맺은 법우님들이 있어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다녔다.

허정스님은 2012년 부터 2016년까지 4년 주지로 있었다. 이때가 천장사 일요법회 전성기였다. 서산, 당진, 홍성 등에서 온 법우님들과 서울에서 온 법우님들이 매주 일요일에 법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법회가 끝나면 점심공양을 함께 했다. 점심공양 후에는 차담을 했다. 차담이 끝나면 부근 사찰 순례를 떠났다. 스님과 함께 떠나는 사찰순례를 말한다. 어느 시찰에 가든지 해당사찰 스님과의 차담이 이루어졌다.

 

일년에 한두번은 12일 순례가기도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결속력이 매우 강해졌다. 지금도 법우님들은 그때 그 시절을 못 잊어 하는 것 같다.

일요법회가 위기를 맞았을 때


일요법회가 위기를 맞았을 때가 있었다. 허정스님이 종단과 갈등을 일으킴에 따라 주지연임이 좌절되었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일요법회도 해체되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자체적으로 한 장소를 빌어서 법회를 계속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당진거사님이 절은 주지스님이 바뀌더라도 신도는 절을 계속 다닐 것이기 때문에 절의 주인은 신도들입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주지가 바뀌더라도 절에 계속 다니기로 했다.

주지스님이 바뀌어도 일요법회는 계속 유지되었다. 주지스님도 여러번 바뀌었다. 일년이 멀다하고 바뀐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신도들은 일요법회에 계속 참석했다. 특히 아래 마을에 사는 노보살은 평생 천장사를 다녔다. 이렇게 본다면 천장사의 주인은 신도라고 볼 수 있다.

새로 건립된 수월스님 기념탑


이번에 새로 본 것은 수월스님 기념탑이다. 전에 없던 것이다. 수월스님은 혜월, 만공스님과 함께 삼월이라 하여 경허스님의 탁월한 제자중에서 첫번째이다. 탑에는 수월선사 법어가 써 있다.


도를 닦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 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둘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쪄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로 달통한 사람이여.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 마니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 겨.”

 



흔히 수월스님을 일자무식이었다고 말한다. 오로지 천수대비주, 즉 신묘장구대라니 하나를 일념으로 외워서 도통했다고 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도 암송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천장사가 마치 불난듯이 방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지금도 방광했다는 부엌이 있다.

영정도 무상한 것인가

 

천장사는 수덕사의 말사이다. 옹산스님이 회주로 있는 사찰이다. 그러다 보니 옹산스님의 상좌스님들이 주로 주지소임을 맡았다. 허정스님도 옹산스님의 상좌이다. 맏상좌라고 한다.

오늘날 천장사는 옹산스님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염궁선원을 만든 것은 도인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옹산스님은 경허스님을 세상에 크게 알렸다. 이는 경허탑을 만든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인법당 한켠에 경허스님 방이 있다. 천장사에 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보는 곳이다. 사실상 천장사를 대표하는 곳이다. 방은 매우 작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확인한 것은 영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전에 본 경허스님상은 머리가 길고 수염이 난 형상이었다. 이번에 본 영정은 삭발하고 참선하는 모습으로 단정하다. 이전 것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영정도 무상한 것일까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함께 점심공양을 하고 차담을 하고


이번 일요법회 참석인원은 17명이다. 코로나 이후 최고로 많은 숫자라고 한다. 법회는 천수경, 칠정례, 관음정근 순으로 진행되었다. 천장사 회주 옹산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앞으로 한달에 한번 법문할 것이라고 한다. 주지스님도 바뀌었다.

법회가 끝나고 점신공양을 했다. 법회참석한 사람들 모두 공양식당에서 식사했다. 천장사는 오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관광객들이 없다. 종종 단체로 사찰순례 오는 팀이 있기는 하지만 개별적으로 오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그래서 법회모임 사람들끼리 법회도 하고 식사도 하고 차담을 하며 우정을 다진다.

 

 

주지실에서 차담이 있었다. 모두 15명 참석했다. 신임주지스님과 일요법회 멤버들, 그리고 신도들과 일종의 상견례라고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안양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쓰시는 분이죠?”며 알아 보았다. 차담은 오후 3시까지 2시간 반가량 이어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유쾌한 차담이었다.

 

 


주지스님은 유머감각도 있고 아는 것도 많다. 다시한번 천장사가 예전처럼 활성화될 것 다. 차담이 끝나고 주지스님과 함께 기념촬영 했다.

 

길 떠난 나그네가 오랜만에 고향집에 온 듯


천장사는 이제 익숙하다. 길 떠난 나그네가 오랜만에 고향집에 온 것 같다. 고향집에 가면 친지가 반겨준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살아도 고향은 정겨운 곳이고 친지를 만나면 반갑다. 천장사가 그런 곳 같다.

 


천정사는 이제 고향집같은 곳이다. 그러나 물리적 공간으로서 고향집만은 아니다. 사람이 있기 때문에 고향집같은 곳이다. 반겨주는 친지가 있어서 고향이다. 고향집에 왔는데 사람이 없다면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다.

 

천장사가 고향집같은 곳이긴 하지만 도반들이 있어서 고향집같은 곳이다. 오랜만에 일요법회 멤버들을 보니 고향집에 온 것 같았다.


2021-04-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