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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는 못난 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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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

2021. 4. 21.

어머니에게는 못난 아들도


어머니에게는 못난 자식도 자식이다. 자애의 마음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이자 수호경인 멧따숫따(慈愛經, Sn.1.8)에서는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Stn.149) 자애의 마음을 닦으라고 했다.

수행은 대충 하는 것이 아니다. 목숨 바쳐 하는 것이다. 목숨 바쳐 하려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그것이 십바라밀에서 말하는 결정바라밀(adhi
ṭṭhāna-pāramī)일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자애수행도 목숨 바쳐 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자애바라밀(mettā-pāramī)이다. 어떻게 목숨 바쳐 하는가? 자애경에서처럼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Stn.149)하는 것이다.

자애수행은 자애수행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무량심(
四無量心)이라 하여 자애, 연민, 기쁨, 평정, 이렇게 네 가지가 있다. 이 네 가지를 대표하는 것이 자애이다. 자애수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세 가지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자애경이 왜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이자 수호경이 되었을까? 이는 부처님의 자비사상이 잘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하는데 자비의 측면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예불문으로 채택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래서일까 법회의식에서 자애경을 독송한다.

자애경은 수호경의 역할도 한다. 마치 다라니처럼 보호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애경이 어떻게 수호경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청정도론에서 일체의 뭇삶이 원한 없이, 분노 없이, 근심 없이, 안락하게 자신을 수호하기를!”(Vism.9.50)라고 해설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자애경을 독송하면 수호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보호된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나에게 분노를 여읜 사유가 일어 났다. 이것은 나에게 자신을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고 둘 다를 해치지 않고 지혜를 증진시키고 곤혹을 일으키지 않고 열반을 이루게 한다.”(M19)


팔정도에서 정사유에 대한 것이다. 정사유에서 아브야빠다상깝뽀, 분노를 여읜 사유에 대한 것이다. 분노를 여읜 사유를 하면 자신도 보호될 뿐만 아니라 타인도 보호된다는 가르침이 놀랍다. 이는 오계를 지키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도 지키는 것과 같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분노를 여읜 사유는 자애수행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에 대해 자애의 마음을 내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분노의 마음은 이전 마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애의 마음을 내면 자신도 수호되고 상대방도 수호된다. 이렇게 자타가 수호 되었을 때 이는 지혜가 된다. 그래서 분노를 여읜 사유에 대하여 지혜를 증진시키고”(M19)라고 했는데, 이는 정사유가 정견과 함께 지혜의 다발(
慧學)에 속하는 근거가 된다.

자비무적이라고 한다. 자비의 마음을 내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자비의 마음을 내면 자신이 수호됨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자애경이 수호경인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자애의 마음을 낼 수 있을까? 청정도론에서는 자애수행에 대하여 꽤 길게 설명해 놓았다.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졌던 방식을 5세기 붓다고사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자애수행 하기를 바란다면 청정도론 방식대로 하면 된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방법은 수천년 전부터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자애의 마음을 낼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내야 한다. 자애경에서처럼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Stn.149) 내는 것이다. 경에서는 이를 우주 끝까지 내라고 했다. 어떻게 내는가? 이는 우주 끝까지 자애의 마음으로 채우는 것을 말한다. 이를 무한편만(
無限遍滿: anodhisopharaa)이라고 한다.

 

어떻게 우주 끝까지 자애의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이는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운다.”(M40)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은 주변 몇 사람에 그쳐서는 안된다. 나와 무관한 사람에게도 내야 하고, 심지어 원한 맺힌 자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자애의 마음을 낸다기 보다는 자애의 마음으로 우주를 채운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그래서 무한편만이라고 한다. 한정편만도 있고 방향편만도 있다.

자애의 대상은 인간만 해당되지 않는다. 삼계의 모든 존재가 대상이 된다. 생명 있는 것들이라면 모두 해당된다. 심지어 식물도 해당된다. 이는 자애경에서 살아 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나,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Stn.146)라는 구절로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비구계를 받으면 식물도 해치지 않는다. 이것이 아위힝사상깝뽀, 즉 폭력을 여읜 사유가 될 것이다.

자애의 마음을 내면 자타가 수호된다. 분노를 여읜 사유를 하고 폭력을 여읜 사유를 하면 뭇삶(
衆生)에 대한 자애의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자애경에서는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Stn.149)하라고 했다.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자애의 마음인 것이다.

자애의 마음을 내면 연민, 기쁨, 평정이 뒤따른다. 이 네 가지 무량한 마음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아들의 비유를 들었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아들, 병든 아들, 청년이 된 아들, 자활하는 아들의 네 아들에 대하여, 어린 아들에게는 성장하기를 원하고, 병든 아들에게는 치유되길 바라고, 청년이 된 아들에게는 젊음의 행복이 오래가길 바라고, 자립한 아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한량없음을 닦는 자도 일체 뭇삶에 대하여 자애 등을 통해 수행을 해야 한다.”(Vism.9.108)


어머니에게 네 아들이 있다. 모두 사랑스러운 아들들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무량한 마음을 낸다. 자애, 연민, 기쁨, 평정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어떻게 채우는가?

 

어머니는 어린 막내 아들에 대해서는행복하기를!” 이라며 자애의 마음을 낸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듯 모든 중생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애의 마음을 우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어머니는 병고에 시달리는 셋째 아들에게는 하루빨리고통에서 벗어나기를!”이라며 연민의 마음을 낸다. 모든 중생이 불행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민의 마음으로 우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어머니는 젊음이 넘치는 청춘의 둘째 아들에게는늘 건강하기를!”이라며 기쁨의 마음을 낸다. 모든 중생의 성공과 번영을 축하해 주는 기쁨의 마음을 우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립한 첫째 아들에게는업이 자신의 주인이라며 평정의 마음을 낸다. 마치 나와 무관한 자를 대하듯 모든 중생에게 평정의 마음을 우주 가득 채우는 것이다.

네 아들 중에서 아픈 아들이 있다. 어디가 아픈 것일까? 육체적으로 아픈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아픈 아들은 못난 아들일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는 못난 아들도 사랑스런 아들이다. 못난 아들이라 하여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민으로 가득 채운다.

 

어머니의 마음은 자애의 마음이고 어머니의 마음은 연민의 마음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자비의 마음이다. 못난 자식도 어머니에게는 사랑스럽다. 그래서 하나 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Stn.149) 일체 중생에게 자비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라고 했을 것이다.

자비의 마음으로 가득 채웠을 때 자신도 보호되고 타인도 보호된다. 분노를 여의고 폭력을 여의었을 때 자비의 마음이 된다. 자비무적(
慈悲無敵)이다.


2021-04-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