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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불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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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

2021. 5. 4.

소리에 불타지 않으려면


세상에 법() 아닌 것이 없다. 소리도 법이다. 당연히 소음도 담마(dhamma)인 것이다. 짜증을 유발하는 소리도 법의 성품을 볼 수 있는 찬스가 된다.

소리 중에 최악은 무엇일까? 반복음일 것이다. 마치 고장난 녹음기를 틀 듯 무한히 반복되는 음은 참을 수 없다. 마치 고문하는 것과 같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새김을 확립하여 들으면
소리에 불타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마침내 그것에 탐착하지 않네.
그래서 소리를 듣더라도
이렇게 새김을 확립하고 지내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괴로움은 사라지고, 자라나지 않네.
이와같이 괴로움을 키우지 않는다면
그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하리.” (S35.95)


새김을 확립해서 들으라고 했다. 사띠(sati)를 확립하라는 말이다. 사띠에 토대를 두었을 때 어떤 소음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호흡을 잡고 있을 때 소음이 문제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일상에서 소음에 초연할 수 있을까? 누군가 반복적 질문으로 괴롭힐 때 화를 내지 않고 단지 들릴뿐”"이라며 알아차림할 수 있을까? 아마 도덕군자라도 불선심을 유발하는 반복적 질문에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 소음을 유발했을 때 짜증을 내며 분노가 폭발할지 모른다. 그러나 새김을 확립하면 소리에 불타지 않는다고 했다. 성내지 않음을 말한다. 일상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이는 사띠에 대해서 기억()’으로 보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가르침의 기억을 말한다.

누군가 자극했을 때 가르침을 생각해야 한다.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과거 경험을 떠 올리는 것이다. 유사한 경험을 했다면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혐오스러운 형상보다 짜증을 유발하는 반복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는 눈감으면 그만이지만, 짜증을 유발하는 반복음은 귀를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명상홀에 앉아 있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소음이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귀를 닫을 수 없다. 그래서 갖가지 소음을 들을 수밖에 없는데 가장 괴로운 것은 반복음이다. 새소리나 바람소리는 자연의 소리이기 때문에 괴롭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내는 소리에는 재간이 없다. 꼼짝없이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사띠를 확립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띠를 확립해야 한다. 어떻게 확립하는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눈을 감고 앉아 있다면 호흡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마음은 한순간에 하나의 일 밖에 하지 못한다. 기차길 옆 아기가 잘도 자는 이유에 해당된다.

일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좌선에서와 같이 호흡에 집중할 수 없다. 그럴 경우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짜증을 유발하는 반복음을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이 깨져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되살려 가르침을 기억해 낸다면 어떤 소음도 부술 수 있지 않을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묻지 않은 연꽃같이,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Stn.71)


2021-05-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