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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와다 삼경은 왜 수호경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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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음악

2021. 6. 17.

테라와다 삼경은 왜 수호경이 되었을까?


테라와다 삼경이 있다. 보배경, 자애경, 축복경을 말한다. 빠알리어로는 라따나숫따, 멧따숫따, 망갈라숫따라고 한다. 이와 같은 테라와다 삼경은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삼경은 왜 예불문인가? 이는 삼경이 쿳다까빠따 13경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쿳다까빠따를 소송경이라 하는데 초심자를 위한 것이다. 불교입문자를 위해서 방대한 팔만사천법문에서 13경을 추려 놓은 것이다.

테라와다삼경은 숫따니빠따에도 실려 있다. 숫따니빠따는 가장 고층경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4품과 5품은 부처님 당대에서도 암송되었다. 앙굿따라니까야나 상윳따니까야에 종종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경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보배경은 삼보에 대한 예경과 찬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애경은 삽베 삿따 바완뚜 수키땃타라 하여, 일체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복경은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성공과 번영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경은 예불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수호경이기도 하다. 삼경이 예불문인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삼경이 왜 수호경일까? 이는 경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르침을 실천하면 행복과 번영이 따르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면 법이 보호해 준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법이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운전할 때 빨간 신호등에서는 멈추어야 하고, 푸른 신호등에서는 달려야 한다. 이것이 법이다. 법을 지키면 자신도 보호되고 타인도 보호된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면 어떻게 될까? 사고 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신도 수호되지 않고 타인도 수호되지 않는다. 부처님 가르침도 똑같다.

부처님 가르침을 담마(Dhamma)라고 한다. 한역으로는 법()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법과 똑같은 말이다. 부처님 말씀을 왜 법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사회법처럼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법은 사회법 그 이상이다. 부처님법은 진리로서의 법이기도 하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 보호된다. 테라가타에서는 가르침은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수호한다. (Dhammo have rakikhati dhammac
āri)”(Thag.303)라고 했다. 이 말은 법은 법을 따르는 자를 보호한다.”라는 말과 같다. 가르침을 따르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수호됨을 말한다. 그러나 실천이 따라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나 자신을 수호할 것이다.’라며 새김의 토대를 닦아야 하고, ‘나는 남을 수호할 것이다.’라며 새김의 토대를 닦아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수호함으로써 남을 수호하고 남을 수호함으로써 자신을 수호한다.”(S47.19)


새김의 토대는 사띠빳타나를 말한다. 사념처 수행을 하면 자신도 보호되고 타인도 보호됨을 말한다. 왜 그런가?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향사과의 성자가 되었을 때 자신은 확실하게 수호된다.

열반을 체험하여 성자의 흐름에 들었을 때 사악도를 면하게 된다. ‘내가 있다는 견해가 타파되면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에 떨어질 염려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수호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수호하는 자는 타인도 수호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계행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계를 지키면 자신이 수호된다. 동시에 타인도 수호된다. 살생을 하지 않으면 살생업을 짓지 않아서 자신이 보호된다. 동시에 타자도 살생되지 않아서 보호된다. 도둑질하지 않으면 역시 자신이 보호된다. 도둑질하다 걸리면 처벌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보호받지 못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타인도 보호받지 못한다. 오계를 지키면 자신도 수호되고 타인도 수호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사랑과도 관련이 있다.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사랑스런 사람은 없다. 빠세나디 왕이 말리까 왕비에게 말리까여, 그대에게는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다른 사람이 있소?”(S3.8)라고 물었다. 내심 왕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현명한 왕비는 대왕이여, 나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없습니다.”(S3.8)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기, 나 사랑해?”라며 사랑을 확인해 보지만 상대방 보다 더 사랑스러운 자는 자기자신일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남도 자신만큼 사랑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남에게도 해 주는 것이다.

자신을 잘 가꾸고 자신을 잘 단련시키는 자는 남도 사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남도 소중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을 하찮게 여기면 어떻게 될까?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남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남을 해치게 된다.

자학하는 자는 남도 학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신을 괴롭히는 자는 남도 괴롭히는 것이다. 술 마시고 술주정 부리는 남편은 자신도 해치는 것이 되고 가족도 해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자신을 잘 가꾸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대로 남들에게도 대할 것이다. 그래서 말리까 왕비가 "대왕이여, 나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없습니다.”(S3.8)라고 말했을 때, 이는 자신만큼이나 왕도 사랑한다는 말이 된다.

불교는 연기법에 근거한다. 연기법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라고 하여 관계와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는 본질과 현상으로 설명되는 종교와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연기법적으로 보았을 때 나의 행위는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는 곡예사의 비유로도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 쑴바국의 데사까라는 마을에 있었다. 부처님은 데사까 마을의 대나무곡예사의 비유를 들어몸에 대한 관찰(
身念處)’를 설명했다.

스승 곡예사는 제자 곡예사에게 말했다. 스승은그대는 대나무 곡예봉에 올라 나의 어깨 위에 서라.”(S47.19)라고 말했다. 곡예는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한순간만 방심해도 무너질 것이다.

스승 곡예사는 제자에게 당부했다. 스승은그대는 나를 수호하라. 나는 그대를 수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명한 제자는 스승과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제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님,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께서는 자신을 수호하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수호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수호하면서, 곡예를 보여주고 관람료를 걷고, 안전하게 곡예봉에서 내려와야 합니다.”(S47.19)


제자 곡예사가 말한 것을 보면 말리까 왕비가 말한 것과 같다. 둘이서 곡예를 할 때 자신이 균형을 잡아야 타인도 균형을 잡게 된다. 그래서 스승께서는 자신을 수호하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수호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자신을 수호하면 타인도 수호된다. 계를 지키면 자신도 수호되고 타인도 수호된다. 가르침을 따르면 자신도 수호되고 타인도 수호된다. 왜 그런가? 연기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계를 지키면 자신도 보호되고 남도 보호된다. 이것은 소극적 수호에 해당된다. 적극적 수호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념처를 닦아 성자의 흐름에 들어 복전이 되었을 때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자신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이 된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처럼 자신을 보호하고 남을 보호한다. 수행승이 업의 정원을 버리고 밤이나 낮이나 근본적인 명상수행의 토대를 닦고 익히면, 아라한의 경지를 얻는다. 그런데 그것을 남이 보고 실로이 선한 수행승은 올바로 실천한다.’라고 마음을 기뻐하면, 하늘나라를 구경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보호하고 남을 보호하는 것이다.”(Srp.III.226)


자신의 수행의 결과가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면 남도 보호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도 보호하면서 남도 보호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인내하고 해치지 않고 자애롭고 연민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S47.19)라고 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 더구나 수행을 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수호된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인내(khanti), 불상해(avihi
sā), 자애(metta), 연민(anudayatā) 이렇게 네 가지로 설명했다. 이런 내용이 테라와다 삼경에 있다.

테라와다 삼경은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법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독송된다. 테라와다 삼경은 마치 대승불교에서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천수경과 같은 위치에 있다. 이와 같은 테라와다 삼경을 모두 외운 바 있다. 그것도 빠알리어로 외웠다.

경은 외워야 맛이 난다. 한번 외운 것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암송한다. 경을 외우면 기쁨과 환희가 일어난다. 경의 의미를 알고 외우면 더 좋다.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경우 뜻도 모르고 의미도 모른 채 외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힌두 신에 대한 찬양이었다. 관세음보살을 찬탄하기 위하여 힌두교 신을 가져온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현스님은 5세기경 불교가 힌두교에 밀릴 때 힌두교를 먹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뜻을 몰라도 다라니에는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에 보호된다고 했다.

테라와다 삼경을 외울 때 신묘장구대다라니 외울 때만큼이나 어렵게 외웠다. 그러나 뜻을 알고 외웠다. 뜻도 내용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외운 것과 다르다. 뜻을 알고 외우면 기쁨도 더 커진다. 요즘은 빠알리팔정도경을 암송하고 있다.

테라와다 삼경중에 라따나숫따(보배경)는 매일 음악(https://youtu.be/QmfKUvZz9jY )으로 듣는다. 이미우이 음악을 말한다. 2007년 부터 들었으니 14년 되었다. 빠알리어로 외운 것은 2011년의 일이다. 그때 당시 한달 보름에 걸쳐 외웠다. 모두 17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천수경 암송 길이만큼 된다.

멧따경(자애경)과 말갈라경(축복경)도 음악으로 나와 있다. 멧따경에는 이미우이 음악이 있다. 이를 음악동영상(https://youtu.be/wJ5HK3RXs9s )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 놓았다. 다만 망갈라경은 이미우이 음악이 없어서 유튜브에 유통되고 있는 음악(https://youtu.be/K8kXz0l361k )을 듣는다.

하루일과를 이미우이의 보배경 음악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터에 갈 때 차에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이미 빠알리어로 외운 바 있기 때문에 친숙하다. 더구나 내용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환희가 일어난다. 그래서 따라 부르게 된다.

가르침을 따르면 가르침이 우리를 수호한다. 가르침을 따르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수호되는 것이다. 그래서 테라와다 삼경에 대해서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라고 했을 것이다.


2021-06-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