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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는 더럽다”송기원 작가의 구도소설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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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기

2021. 7. 30.

내 피는 더럽다송기원 작가의 구도소설


우여곡절 끝에 책을 받았다. 인터넷 주문한 책이 엉뚱한 곳에 배달되었다. 부주의 탓이다. 좀 더 살피지 못해 대가를 치룬 것이다. 먼저 보낸 곳의 주소 흔적이 남은 것이다. J선생에게 일부로 읍내에 나가서 책을 보내게 하는 수고를 끼쳤다.

책을 사기로 마음먹은 것은 페이스북에서 소개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삼류작가라 칭하면서 페이스북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K작가는 어느 날 소설 ''을 소개했다. 소설가 송기원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이름이다.

 


송기원, 한번도 대면한 적 없다. 다만 학교 다닐 때 연설은 들어 보았다. 그때 80년 서울의 봄 때 대학극장에서 연설 들은 기억이 난다. 연사를 소개할 때 굉장한 호칭을 붙여 주었던 것도 기억한다. 민주화운동하다 투옥된 경력이었을 것이다. 복적생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47년 생이니 그때 당시 33세였다. 새로 출범한 학생회 격려사를 했었던 것 같다.

1980
년 봄은 어수선했다. 바로 전해와는 180도 달랐다. 79년 대학에 입학 했을 때 대학은 본래 평온한 곳인줄 알았다. 아마 긴급조치9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죽고난 다음 세상이 달라졌다.

한달 이내 짧은 휴교가 있었다. 다시 학교 갔었을 때 이전 분위기는 아니었다. 국민윤리 교수의 말이 달라진 것이 두드러졌다. 한번도 정부비판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다. 갑자기 비판적인 말에 어리둥절 했다. 그 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기원선생과 41년 만에 다시 만났다. 책으로 만난 것이다. 그때 당시에도 소설가로서 알려져 있었다. 이후 행적을 보면 운동권으로 더 알려진 듯하다. 어느 날 신문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주역 중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밝혀졌는데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

기대를 가지고 책을 열어 보았다. 책 소개할 때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딸의 죽음과 관련된 구도소설이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운동권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위선이라는 말은 보인다. 이에 대하여 괴물이 되어 버린 위선자라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운동권이 되었고 더구나 운동권에 편승된 것에 대해서 위선의 괴물이 되었다고 했다.

소설은 자전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 소설에서 자신의 태생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내 피는 더럽다."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사생아로 태어난 것을 들었다. 아버지는 건달에 아편쟁이로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는 오일장을 떠돌아다니는 장돌뱅이라고 했다.

작가는 중2때 자살을 시도한다. 자신의 피가 더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필 왜 중2때였을까?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다만 추론해 볼 수 있다. 아마 제2차 성징이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꿈틀 거리는 욕망 때문에 자신의 피가 더럽다고 하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작가에게는 딸이 있었다. 딸은 서른 살 조금 넘었을 때 백혈병으로 죽었다.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딸의 죽음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작가는 딸이 죽은 것에 대해서 자신의 더러운 피가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딸의 최후를 지켜 보았다.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죽어 가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평온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섬망때문이었다.

섬망은 일종의 신경증과 같은 것으로 환상이나 환청같은 증상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백혈병환자가 가장 최후로 발현되는 섬망에 의해 세상을 떠났을 때 작가는 섬망의 정체를 알고자 했다. 고통없이 너무나 평온하게 저쪽으로 건너가버린 것에 대해 밝히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수행이다.

소설의 시작은 작가가 미얀마 수행센터를 찾아 가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미얀마 남부 숲속에 있는 파옥국제선원을 말한다. 사마타수행처로 잘 알려져 있다. 선정수행을 해서 니밋따(表象)을 보게 하는 것을 수행의 출발로 보고 있다.

작가가 미얀마에 간 것은 딸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섬망과 선정과의 관계를 밝혀 보기 위해서이다. 더러운 피를 물려 받았다고 보는 딸은 섬망으로 인하여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작가는 섬망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선정을 얻어서 자신의 더러운 피를 정화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는 "나는 사마타 선정의 세계가 섬망의 세계와 뿌리가 같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33)라고 쓴 것에서 알 수 있다.

작가는 선정중에서도 네 번째 선정에 도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색계사선정을 말한다.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 때도 사선정에서 들었다. 그런 사선정은 어떤 것일까?

초기경전에서 사선정에 대한 묘사는 정형화되어 있다. 사선정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행복도 고통도 끊어져서, 이전의 기쁨도 근심도 사라진 뒤,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지극히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S45.8)


사선정은 한마디로 우뻬카사띠빠리숫딩(upekhā-sati-pārisuddhi)”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한자어로 사념청정(捨念淸淨)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지극히 청정함”(S45.8)의 뜻이 된다.

사선정은 평온을 특징으로 한다. 기쁨의 이선정과 행복의 삼선정을 뛰어넘는 것이다. 행복도 없고, 고통도 없고,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사띠가 있는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평온한 상태가 사선정인 것이다.

팔정도에서 사선정은 클라이막스라고 볼 수 있다. 매일 팔정도경을 빠알리어로 암송하는데 사선정 정형구에 이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치 반야심경에서 "시대신주" 하며 주문을 외는 것 같다. 금강경에서 "아개영입"으로 시작되는 대승정종분을 외는 것 같다. 초전법륜경에서 땅의 신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S56.11)라며 감격에 벅차 알리는 것과 같다.

사선정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일까? 분명한 사실은 전생에 수행하지 않은 자는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전생에 무탐, 무진, 무치 수행을 해서 그것을 원인으로 태어난 자가 이 생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대부분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선정수행은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선정수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일부로 멀리 미얀마 오지까지 찾아 갔다. 딸이 섬망으로 저쪽으로 평온하게 건너 갔듯이 자신도 사선정을 통해서 건너가고자 한 것이다. 더구나 사선정은 신통이 있는 선정이다. 과연 작가는 파옥센터에서 선정수행하여 사선정에 이를 수 있을까? 그리고 더러운 피를 씻어낼 수 있을까?

소설에서는 더러운 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중2때 작가가 목을 매어 자살하려고 했을 때 "내 피는 더럽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또 딸을 보내고 난 뒤에 미얀마 명상센터에서 좌선하면서 "내 피는 더럽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더러운 피 때문에 딸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또 작가는 딸이 섬망으로 죽은 것이 피를 정화했다고 생각했다. 명상센터에 앉아 있는 작가는 사선정에 들어 자신의 더러운 피를 정화하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에게만 더러운 피가 있는 것일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 더러운 피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왜 그런가? 인간은 탐, , 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온에 집착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탐, , 치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구의 피도 깨끗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서문에서 "인연이 되어 책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면, 한두 번이 아니라 열 번, 백 번을 펼쳐서 그이들 깊은 곳에 못 박힌 고통까지 녹아나게 되기를."이라고 했다. 구도소설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게도 털어 놓지 못하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이런 것이 어쩌면 더러운 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서문에서 "이승에서 마지막 업을 지우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행일 것이다. 누구나 함부로 경험할 수 없는 사선정이다.

사선정은 전생에서 한 수행했던 자들이나 가능하다고 한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정도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가지 원인을 조건으로 하는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야 함을 말한다. 생이지자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과연 작가는 사선정을 성취하여 더러운 피를 정화할 수 있을까?

책을 정신없이 읽었다. 그러나 속도조절하려고 한다. 중간중간 교리와 교학에 대한 것도 있다. 초기경전을 인용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설 ''은 구도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생각이다. 중요한 부분은 밑줄 칠 것이다. 작가 송기원 선생의 소설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다.


2021-07-3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