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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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인 삶은 글쓰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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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21. 9. 9.

능동적인 삶은 글쓰기부터

 

 

오늘 밥값 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이 철철 남는 날이 계속되면 밥 먹는 것이 가장 큰 행사가 된다. 재가수행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좌선을 하든, 행선을 하든, 일상에서 사띠를 하든 무언가 하나 해야 한다.

 

수행은 좌선이나 행선만을 말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사띠하는 것도 수행에 해당된다. 어떻게 사띠하는가? 옷을 입을 때 알아차림 하며 입고, 밥 먹을 때도 알아차림 하며 먹는 다면 일상에서 훌륭한 사띠가 된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본래 사띠라는 것이 이전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긴 하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일상에서 그렇게 하기 힘들다.

 

달리기할 때나 운전할 때, 대화할 때는 이전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달리기 할 때는 달리기에 집중해야 하고, 운전할 때는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대화할 때도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집중하는가?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송 외우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요즘 게송 외우기를 하고 있다. 법구경 찟따왁가를 외우고 있다. 한게송 외울 때 마다 반드시 이전 게송 외운 것을 확인하고 들어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전에 외운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는 전체 게송을 다 외울 수 없다. 반드시 이전 게송을 외운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 다음 게송 외우기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마지막 게송 외운 날이 전체 게송을 다 외운 날이 된다.

 

일상사띠는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도 해당된다. 본래 사띠(sati)라는 말은 제1의 뜻이 기억(memory)이다. 바로 이전 행위를 기억하는 것도 사띠이고, 담마를 기억하는 것도 사띠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게송 외우기도 일상사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게송 외우기할 때는 입으로 중얼중얼 외운다. 같은 단어나 문구를 수없이 반복한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해서 중얼중얼해야 내것이 된다. 그런데 걸으면서 외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앉아서 눈 감고 외는 것보다, 어슬렁어슬렁 가볍게 천천히 걸으면서 중얼중얼하는 것이 더 잘 외워진다.

 

게송을 외우는 것도 밥값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튜브만 본다면 이는 수동적 삶이다. 마치 집에서 할 일 없는 자가 TV만 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수동적인 삶에 대하여 일하지 않는 즐거움의 저자 어니 젤린스키는 수동적인 활동은 도전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목적도 없으며 기분전환도 안되는 단조롭고 전혀 새롭지 않은 활동이다.”(221)이라고 했다.

 

 

수동적인 삶은 삶의 목적이 없는 삶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가? 저자는 “TV시청, 술이나 마약하기, 습관적으로 먹어대기, 드라이브, 쇼핑, 돈쓰기, 도박, 운동경기 관람”(221)을 들었다.

 

책이 나온 것은 1990년대 말이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이다. 만일 이 책의 저자가 책을 수정했다면 틀림없이 온라인 게임이나 도박도 넣었을 것이다. 또한 유튜브 시청이나 페이스북 중독도 넣었을 것이다.

 

수동적인 삶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TV를 시청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등 오욕락을 즐기는 삶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동적인 삶에서 삶의 의미나 보람을 느낄 수 없다. 삶의 목적도 없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등 본능적인 삶은 축생의 삶과도 같다.

 

삶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삶의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기 쉽다. 길가는 나그네가 목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정처없이 떠돌 것이다. 그러나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오로지 그 길로 나아갈 것이다. 능동적인 삶에는 삶의 목적이 있다.

 

능동적인 삶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저자는 책에서는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춤추기, 강습받기”(222)를 들었다. 능동적인 삶의 특징을 보면 스스로 행위하는 삶이다. 그리고 배우는 삶이다.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삶을 말한다. 그런 삶 중에서 글쓰기가 있다는 것이다.

 

어니 젤린스키의 책을 읽은 것은 1997년 무렵이다. 그때 당시 30대 후반으로서 한창 일하던 시기였다. 밤낮없이, 주말없이, 휴가없이 일 했다. 그때 책을 사서 보았는데 신선한 충격을 보았다. 그래서언제나 나도 저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며 동경했었다. 그런 삶은 다름 아닌 하루 일과중에 반만 일하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이었다.

 

원하면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일까? 책을 읽은 것이 현실이 되었다. 사십대 중반이 되었을 때 하루 일과 중에 반만 일하고 반은 글쓰기 하는 삶이 실현된 것이다. 자영업자로서, 일인사업자로서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나의 로망이었다. 책에서 능동적 삶의 여러 가지 유형중에서 가장 첫번째로 글쓰기가 언급되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그때 당시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책을 읽는 정도에 그쳤지 어떻게 감히 글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절인연이 되었을 때 나도 글을 쓰게 되었다.

 

2005년 더 이상 회사생활을 할 수 없었을 때 나홀로가 되었다. 낡은 기술로는 이미 퇴물이 되어서 어디에서도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갈 곳이 없어서 안양에서 가장 작은 사무실을 임대했다.

 

사무실은 냉난방이 되지 않아서 여름에는 찜통처럼 더웠고, 겨울에는 손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하루 종일 할 일이 없어서 인터넷만 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블로그를 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글을 쓰면 시간이 잘 갔다. 아무 할 일이 없는 백수가 글 쓰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어쩌면 직장 다녔을 때 로망이 실현된 것인지 모른다.

 

요즘도 매일 글을 쓴다. 하루에 두 개도 좋고 세 개도 좋다. 의미와 형식을 갖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이런 글이 모이고 모여서 엄청나게 축적되었다. 이제는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1년에 쓴 글을 모았다. 블로그에 있는 것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에 대한 서문을 이렇게 쓰고 있다. 책의 제목을 ‘31 진흙속의연꽃 2011 III’로 정했다. 3131번째 책이라는 것이다. 2011915일부터 1230일까지 43개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여러 가지 카테고리 중에서도 일상의 삶에 대한 글로서 445페이지에 달한다.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명절후유증과 하녀같은 아내

2. 진리는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아쇼카선언은 정치적 차선책

3. 종교인인가 정치인인가, 내부지적에 문을 닫는 아쇼카선언 세력

4. “사두, 사두” 불교가 이겼다! 파아나두라 논쟁

5. 시민축제는 거대한 술판

6. 화쟁위에 왜 목사가 있을까? 아쇼카 선언 참여자들

7. 인터넷토론과 댓글놀이

8. 한국불교가 독불(督佛)이 된까닭은? 아쇼카선언

9. 열린진리관 전법의 목적을 보면, 아쇼카선언

10. 기독교부정이 곧 불교부정이라고? 아쇼카선언의 연기관

11. 신학자들이 불교를 연구하는 까닭은?

12. 까티나행사를 아시나요?

13. 스님의 결혼

14. 기독교도 화쟁의 대상인가? 생명평화경 도법교

15. 기독교와 전쟁하자는 건가, 아쇼카선언은 꼼수

16. KBS 팔만대장경 특집다큐 MBSR수업을 보고

17. 불자 서울시장 탄생! 명상수행과 박원순

18. 서민앞에 무릎 꿇은 시장을 보고

19. 현직 대통령을 안주삼아, 나꼼수의 모든 것

20. 스님 견제장치가 필요해

21. 극성스런 전도사 퇴치방법

22. 명자승(名字僧)은 정화의 산물

23. 호국연무사와 군심(軍心)잡기

24. 안철수교수와 법륜스님의 신당? 조선일보의 소설을 보며

25. 노랑가사의 권위

26. 행운목꽃 향기는

27. 포교대상 유감

28. 윤회를 부정하는 사람들

29. 아쇼카선언 수정안과 매불노(賣佛奴)

30. MB한테 약점잡혔나? 21세기 아쇼까 선언

31. 산중승(山中僧)의 이중생활

32. 한국은 테라와다불교국가? 태국고승들로 부터 받은 비구계

33. 잊혀진 존재와 고독사

34. 종편 JTBC의 ‘TBC 31년만의 귀환’을 보며

35. 오성계급과 대애도비구니경

36. 종교명망가들 16인의 송년모임을 보며

37. 임락경목사의 ‘기()싸움’을 읽고

38. 이병철회장의 24가지 영적질문에 대한 답을 보고

39. 기독교따라하기와 힌두교따라하기

40. 도법스님의 간화선에 대한 회의

41. 재가자에게 율장교육을 허하라

42. 종교평화선언과 한국불교의 정체성갈등

43. 이병철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대한 허정스님의 답변

 

 

글쓰기 로망은 달성되었다. 지금은 일인사업자로서 살고 있다. 하루 일과 중에 반은 글쓰기로 보낸다. 이는 다름 아닌 능동적인 삶이다. 만약 정년때까지 직장에 있었더라면 TV나 시청하고 술이나 마시는 등 수동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삶의 도중에 곡절을 겪은 것이 능동적인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글쓰기는 대표적인 능동적인 삶이다. 게송 외우기도 능동적인 삶이다. 이와 같은 능동적인 삶은 TV시청과 같은 수동적인 삶과 비교 되지 않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수동적인 삶은 매양 그 모양이다. TV나 시청하는 자에게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요즘은 유튜브만 보는 자에게 해당될 것이다. 능동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 움직이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만 있는 자, 움직이지 않는 자, 수동적인 삶을 사는 죽은 자와 같다.

 

능동적인 삶을 살 것인가, 수동적인 삶을 살 것인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능동적인 살려면 지금부터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능동적인 삶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춤추기, 강습받기에서 글쓰기는 가장 첫번째에 해당된다.

 

 

2021-09-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