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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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공원 코로나 검사 장사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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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21. 9. 22.

삼덕공원 코로나 검사 장사진을 보고

 

 

그야말로 장사진이다. 굽이굽이진 것이 긴 뱀을 보는 것 같다. 안양 삼덕공원에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서 긴 줄을 선 것을 건물에서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무슨 공연하는 줄 알았다. 공원에서는 종종시민축제가 열리는 등 공연장소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추석연휴날, 그것도 추석다음날 긴 줄이 형성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모처럼 가족과 친지들이 만나는 날에 집단으로 감염된 것일까? 면면을 보니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전국민 70% 이상 백신주사를 맞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긴 줄이 형성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일까? 젊은 사람들의 경우 아직 맞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맞았다고 하더라도 2차까지 맞은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마치 공연장에 입장하는 것처럼 긴 줄을 보면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지 않는다.

 

 

내 연령대 사람중에는 아직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번 추석 때 그런 사람을 보았다. 그는 평소 정부와 여당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 이념적으로는 보수성향이다. 그는 왜 백신을 맞지 않는 것일까? 마치 미국에서 트럼프의 말을 따르는 보수주의자처럼 보였다. 보수지지층 상당수 사람들 상당수는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아직 주사를 맞지 않은 사람은 거의 10%에 달한다. 백신을 빠짐없이 맞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사람들은 백신을 거부하는 것 같다. 특히 홀로 사는 사람들은 맞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기적인 발상인지 모른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왜 이기적일까?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맞으면 마치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마치 백신을 어떤 음모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다가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남에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은 가능하면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를 소극적 공리주의라고 볼 수 있다. 적극적 공리주의는 어떤 것일까?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이는 단지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소극적 공리주의가 이기적인 것에 가깝다면 적극적 공리주의는 이타적인 것에 가깝다.

 

백신주사를 맞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남도 보호하는 것이 된다. 마치 계율을 지키는 것과 같다. 불자들이 오계를 지키려고 노력했을 때 이는 자신을 지키는 것도 되지만 남에게 피해나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남도 지키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백신접종하는 것은 자타를 위한 것이 된다. 백신주사 맞는 것은 어쩌면 이타적인 행위인지 모른다.

 

백신주사를 맞는다고 하여 코로나바이러스를 박멸하는 것은 아니다. 사자성어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듯이, 바이러스로 바이러스를 제압하는 것이다. 백신바이러스에서 의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몸에 코로나바이러스만 있고 있다면 우리 몸은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초토화되고 말 것이다. 백신주사를 맞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하여 증원군을 보내는 것과 같다. 나의 몸안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은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다. 이 몸안에는 수많은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해로운 것도 있고 이로운 것도 있다. 내몸은 항상 바이러스와 함께 하고 있어서 사실상 타자들의 공동체와 같다. 그래서 이제 위드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가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검사를 받기 위해 장사진 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코로나는 박멸의 대상이 아니다. 마치 감기독감 바이러스처럼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위드코로나시대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쓰는 등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함께 사는 것이다. 내몸안에는 나도 모르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 그들과 함꼐 사는 것이다. 내몸이 내것이라고 하지만 온갖 것들과 함께 살고 있는 타자들의 생명공동체이다.

 

 

2021-09-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