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흰천에 물감이 베이는 것처럼, 중학교 시절 순수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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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21. 10. 27.

흰천에 물감이 베이는 것처럼, 중학교 시절 순수의 시대에

 

 

나도 책을 쓰고 있다. 오래 전에 써 놓았던 글을 한데 모아서 책으로 만드는 작업하고 있다. 이것도 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목차를 쓰고 서문이 있다면 책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책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번에 만든 책은 2012413일부터 520일까지 일상에 대하여 쓴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목차를 보니 22개이고 400페이지에 달한다.

 

이번에 만든 책은 36번째 책이다. 책 제목을 ‘36 진흙속의연꽃 2012 II’라고 붙였다. 일상에 대한 카테고리 진흙속의연꽃폴더에 있는 것이다. 글을 편집하고 목차까지 만들었으니 이제 서문만 쓰면 된다. 이렇게 서문을 쓰니 화룡점정이 되는 것 같다. 참고로 36번째 책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정치지도와 종교지도

2.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제도한 부처님

3. 영혼이라는 산냐를 부수기 위해

4. 세계불교포럼과 중국불교의 굴기

5. 도림스님의 사자후와 독특한 법화경 게송노래

6. 신도들이 무지 할수록

7. 승복의 권위와 추문

8. 닥치고 따르라? 스님의 권위적 법문

9. 3차 세계불교논단과 부처님 정골사리

10. 들꽃의 향연을 보며

11. 법보시용으로 어떤 초기불교경전이 좋을까?

12. 두 명의 생불 판첸라마와 달라이라마

13. 저 높은 바위산을 보면서

14. 탁발정신의 실종

15. 부처님 가르침에 종교다원주의는 없다

16. 스님의 도박에 멘붕 불자들

17. 자승총무원장스님은 사퇴하시라

18. 오월이 되면 총림(叢林)에서 피는

19. 방향을 잃어버린 한국불교

20. 대리참회와 이메일참회문

21. 부처님 일생부터 공부해야

22. 중학교 시절 제등행렬을 회상하며

 

 

 

목차를 보면 정치색이 농후하다. 일상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시국과 시류에 대하여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블로거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나중에 역사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썼다. 이는 광주민중항쟁 당시 일기가 사료로 등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본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써 놓은 글을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2012년 봄은 어땠을까?

 

글에는 그때 당시 상황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나의 심리상태도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비밀은 써 있지 않다. 분노에 가득한 심리상태였다면 아마도 글로 표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와 사회, 종교에 대한 분노의 글이 많다면 그때 당시 심리상태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목차를 보면 한국불교 현실에 대한 비판의 글이 많다. 그때 당시 재가불교활동을 하지 않을 때이다. 오로지 집과 일터만 왕래하며 블로그에 글만 쓰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한국불교 현실에 매우 비판적인 것은 20125월에 도박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매스컴에서는 스님들이 억대도박판을 벌렸다고 보도되었다.

 

스님도박사건과 관련하여 글을 썼다. 목차 16번에 있는 스님의 도박에 멘붕 불자들’(2012-05-10)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을 쓸 당시에 매우 분개하였다. 스님들의 세계는 청정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목차에는 자승원장에 대한 비판 글도 있다. 목차에서 17번을 보면 자승총무원장스님은 사퇴하시라’(2012-05-11)라는 제목으로 나타나 있다. 자승총무원장은 여러 모로 적합치 않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은처혐의가 있었다. 숨겨 놓은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독신승을 특징으로 하는 불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글에서 “좋은 말 할 때 자승스님은 지금 사퇴하시라!”라며 일갈했다.

 

목차에는 분노의 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을 맞이하여 생명으로 가득한 자연에 대한 찬탄의 글도 있다. 목차 18오월이 되면 총림(叢林)에서 피는 ’(2012-05-13)라는 제목의 글도 그 중의 하나이다. 오월이 되자 경쟁적으로 흰꽃이 핀 것에 대한 경이를 적은 것이다. 글에서는 층층나무꽃, 쪽동백나무꽃, 때죽나무꽃, 불두화 등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글도 있다. 연등축제를 앞두고 중학교 다닐 때 제등행렬을 회상해 보았다. 이는 목차 22번에서 중학교 시절 제등행렬을 회상하며’(2012-05-19)라는 제목으로 나타나 있다. 동대부중 다닐 때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 당일 저녁 동국대운동장에서 출발하여 종로거리를 행진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중학교 때 기억은 대체로 좋다. 중학교 다닐 때 불교를 만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종로 5가 부근 연지동에 있었던 동대부중에 배정받은 것이 오늘날 불교인으로 사는 인연이 된다고 본다.

 

율장대품에 야사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차제설법을 하자 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Vin.I.16)이라는 표현이 있다. 마치 흰천에 물감이 베이는 것처럼 중학교 시절 접한 불교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부처님일생을 배웠다. 그때 교법사 선생님은 조용길 선생님이었다. 서른 전후로 얼굴이 희고 반곱슬에다 귀공자 타입이었다. 어린 눈에는 부처님처럼 보였다.

 

 

중학교 때 불교교과서 부처님일생에서 사문유관을 접했다. , , , 사를 생각해 본 것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접했다.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는 것 같았다.

 

중학교 2학년 때인지 확실하지 않다. 불교교과서에세상이 불타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부처님이 산상에서 연기나는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설법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는 그 의미를 몰랐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다닐 때도 문득문득 의문이었다. 이후 삶에서도 문득문득 부처님은 왜 세상이 불타고 있다고 했을까?”라며 의문했다. 일생에 있어서 화두아닌 화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의문은 수십년이 흐른 후에 상윳따니까야 연소에 대한 법문의 경’(S35.28)을 접하고 풀어졌다.

 

 

수행승들이여, 시각도 불타고 있고 형상도 불타고 있고 시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S35.28)

 

 

부처님은 세상이 불타고 있다고 했다. 세상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은 땔감이 있어야 계속 탄다는 것이다. 이는 윤회의 땔감을 말한다.

 

, , 치로 살면 땔감이 계속 공급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세세생생 타오를 것이다. 땔감이 공급되지 않으면 더 이상 타지 않을 것이다. 탐욕의 땔감이 없으면 탐욕의 불은 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성냄과 어리석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니까야를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중학교 때 세상은 불타고 있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의문이 풀린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중학교 시절은 순수의 시대이다. 물론 변성기가 되면서 순수는 사라져 버렸지만 변성기 이전의 중학교 1학년 시절은 경전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흰천에 물감에 베이는 것과 같은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스님이 되고 싶었다.

 

불교시간 교과서 중에 고승열전이 있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고승들의 일대기를 읽고 감명받았다. 출가수행자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보였다. 그렇게 생각되자 세상의 삶이 시시해 보였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 취직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정해진 코스로 가는 삶이 의미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변성기가 시작되면서 출가에 대한 생각은 깨졌다.

 

중학교 때 접한 불교는 나에게 있어서 우연인가 필연인가? 지금 지나고 나서 보니 필연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타종교를 접했더라도 타종교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불교를 접했다면 불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9년전 모습은 어땠을까?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글 쓰는 장소는 그대로이다. 그때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도 아침에 이미우이 음악을 들으며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다만 세월만 흘러 갔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일과는 똑같다. 나에게 있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2021-10-2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