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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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 서문을 쓰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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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21. 11. 19.

내가 책 서문을 쓰는 것은

 

 

흔히 책을 쓴다고 말한다. 별도로 시간을 내서 책을 쓴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책을 쓰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글을 쓰는 것이다. 책 낼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을 말한다.

 

나도 책을 쓴다. 과거에 써 놓았던 것을 모으는 작업을 책 쓴다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책을 만드는 것이다. 글은 이미 오래 전에 다 써 놓았다. 시절 인연이 되어서 책의 형태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책이라고 해서 같은 책은 아닐 것이다. 소설도 책이고 기록물도 책이고 수필도 책이다. 시집도 책이고 평론집도 책이고 자서전도 책이다. 책의 형태를 갖추면 책 아닌 것이 없다. 과연 이런 책들은 백년후에도 남아 있을까?

 

책은 한번 출판되면 다시 출판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고전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대개 한번 출판되면 그만인 것 같다. 이런 책은 수도 없이 많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책도 그럴 것이다.

 

내가 만드는 책은 일반사람들이 읽는 책이 아니다. 서점에서 팔리는 책도 아니다. 보관용 책을 말한다. 그래서 딱 두 권만 만든다. 그래도 책의 형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목차를 만들고 이렇게 서문을 쓴다.

 

이번에 만든 책은 담마와 관련된 책으로 2012년에 써 놓은 것이다. 2012619일부터 814일까지 약 3개월동안 불교의 교학과 교리에 대한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목차를 만들어보니 19개이다. 이를 ‘38 담마의 거울 2012 IV’라고 했다. 38번째 만든 책으로 2012년에 쓴 담마에 대한 책 네 번째 책이라는 뜻이다.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독으로써 독을 제거하는 간화선

2. 다양하고 풍요로운 부처님의 중도사상

3. 절반의 성공을 향한 단멸론자들의 도박

4. 맹구우목(盲龜遇木)비유의 진실

5. 어떻게 해야 윤회의 거센 물결을 건널 수 있을까?

6. 공덕 짓는 사람과 공덕을 부정하는 자들

7. 원한을 제거하기 위한 다섯가지 방법

8. 알아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닦아야 할 것, 실현해야 할 것

9.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단멸론자들의 바이블

10. 연기법을 왜곡하는 사람들

11. 용어선점과 용어창작

12. 탄광의 광부가 석탄을 캐는 심정으로

13. 혜민스님의 깨달음이란

14. 왜 정거천이 가장 수승한 천상인가

15. 노출의 계절에

16. 불교적 우주론과 신통에 대하여

17. 내 탓이오? 나는 업의 상속자이자 업의 주인

18.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19. 깔라마 경 제대로 읽기

 

38 담마의 거울 2012 IV_211119.pdf
2.31MB

 

2012년에도 거의 매일 썼다. 지금 블로그에서 다운 받아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폴더를 보니 가장 많이 쓴 해 같다. 담마에 대한 글이 무려 일곱 권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든 책은 네 번째 책이다.

 

책을 쓴 9년전이나 지금이나 열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은 없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그날그날 썼는데 그날 쓴 것으로 그쳤다. 소설처럼 연재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글을 쓸 때는 완성된 글이 되고자 노력했다. 이는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을 말한다. 가능하면 기, , , 결 형식으로 쓰고자 노력했다. 이런 글을 나중에 모아 놓으면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쓸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글을 쓸 때는 책 낼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그래서 별도로 책을 쓰기 위한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과거에 써 놓은 것을 엮기만 하면 책이 된다.

 

20126월에서 8월까지 어떤 글을 썼을까? 목차를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내가 쓴 글이기 때문에 기억나는 것이다. 사진도 그렇다. 아무리 오래 된 사진이라도 내가 찍은 사진은 알 수 있다.

 

목차 1번 글을 보면 독으로써 독을 제거하는 간화선이라고 했다. 간화선에 대한 비판글이다. 이런 글은 비난받을 수 있다. 해보지도 않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BTN에서 강연자의 말을 녹취하여 나름대로 소화해서 쓴 것이다. 지금 읽어 보아도 큰 오류는 없다.

 

목차를 보면 단멸론에 대한 글이 많다. 이는 그때 당시 단멸론자들이라고 의심되는 사견을 가진자들과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 절반의 성공을 향한 단멸론자들의 도박’ ‘9.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단멸론자들의 바이블

‘10. 연기법을 왜곡하는 사람들과 같은 글을 썼다.

 

2012년 글에서는 허무주의자들과 전쟁을 하다시피 했다. 윤회를 부정하는 그들은 불교도가 아니라고 보았다. 무늬만 불교인일뿐 불교를 가장한 외도로 보았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라는 책을 만든 자를 들었다.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을까?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을 것이다. 깨달음에 왕도가 있을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경전에 깨달음의 공식이나 왕도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앙굿따라니까야 빠하라다의 경에서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는 점차적인 배움, 점차적인 실천, 점차적인 진보가 있지 궁극적인 앎에 대한 갑작스런 꿰뚫음은 없습니다.”(A8.19)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깨달음에는 공식이나 왕도가 없음을 말한다.

 

목차 15번을 보면 노출의 계절에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어느 스님이 교계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고 자극받아 쓴 것이다. 스님은 중노릇 하기 힘들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이다. 도시에 나가면 여기저기서 화장을 멋지게 하고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옷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산속에 사는 수행자가 어쩌다가 도시에 나갈 일이 있어 이런 여성들과 마주치는 것은 민망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라고 썼다.

 

노출의 계절에 어떻게 시선관리 해야 할까?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경전에 있는 가르침대로 실천해야 한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바라드와자의 경에 실려 있다. 경에서는 어머니같은 여인에 대하여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누이같은 여인에 대하여 누이를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딸같은 여인에 대하여 딸을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라.”(S35.127)라고 했다.

 

부처님의 여인대하기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월이 흘러도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변함이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인을 볼 때 성적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가족처럼 보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이런 태도는 남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책의 서문을 쓰는 것은 책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과거에 쓴 것을 단지 묶어만 놓는다면 글뭉치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목차를 달고, 조금이나마 편집을 하고, 더구나 이렇게 서문을 써 놓으면 책처럼 보일 것 같다. 비록 단 두 권 만드는 책이지만.

 

 

2021-11-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