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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림목의 경기민요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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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교활동

2021. 11. 21.

굴림목의 경기민요를 배우다


"
어기야 디야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노리 가잔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고 누구나 한번쯤 따라 불러 보았을 뱃노래 가사이다. 이런 음조를 굿거리라고 한다. 11월 정평법회에서 부른 것이다.

어제 11월 정평법회가 올해 처음으로 대면으로 열렸다.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3천명대로 불어난 엄중한 시기임에도 대면으로 열린 것은 그만큼 대면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11월 대면법회 때는 평소와 달리 경기민요를 배우는 날이 되었다. 정평불 회원중에는 국악인 노광희 선생이 있다. 노광희 선생이 이번달 법사가 되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국악을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법회장소는 약사암이다. 약사암은 성북동에 있다. 네비에 주소를 입력하고 달렸다. 안양 사무실에서 32키로 1시간 40분 찍혔다. 토요일 오후이기도 하고 서울시내를 관통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정도 시간은 걸린다.

성북동은 익숙한 곳이다. 고등학교를 근처에서 다녔기 때문이다. 혜화동에 있는 경신고등학교를 말한다. 학교에서 성북동이 보였다. 그때 당시 성북동은 서울에서도 잘 사는 동네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학교가 있는 혜화동도 역시 잘 사는 동네였다. 마치 축대위에 철옹성 같은 집을 바라보았을 때 산동네달동네에 있는 집과 비교되었다.

 

구불구불 성북동 약사암에 도착했다. 산비탈에 있어서 네비가 정신 없을 정도로 돌아 갔다. 특이하게도 약사암 주변에는 대사관 관저가 많다.

 


약사암과 마주 보고 있는 곳에는 호주대사관이 있다. 그러고 보니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동길을 따라 가다 보니 도로에는 각국 국기가 도열하듯이 달려 있다. 학교다닐 때는 하천길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복개 되어 대사관길이 된 것 같다.

약사암은 어떤 절일까? 주지스님인 일휴스님에게 물어보았다. 약사암은 이 자리에 백년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백년전이라면 지금 보고 있는 각국 대사관 관저가 생기기도 전인 일제강점기 때 일일 것이다.

 


약사암은 이름 그대로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특이하게도 백색부처님이다. 이런 스타일 불상은 돌부처이기 쉽다. 수많은 사찰순례를 했기 때문에 이제 척 보면 알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대개 미륵불과 함께 약사불은 돌부처로 되어 있다.

불상은 크지 않다. 마치 작은 동자같은 형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상호를 보니 약간 주눅든 듯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의 불상에 대하여 불상제작 전문가 장범중 선생은 조선불상의 기본모습이라고 했다. 숭유억불이 상호에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불상은 어떻게 여기 있게 되었을까? 일휴스님 설명에 따르면 불상은 본래 개성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50년전 개성상인에 의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약시암은 작은 절이다. 현재 태고종 소속 일휴스님이 살고 있다. 일휴스님은 대불련 출신이다. 동국대 불교학과 72학번이라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김광수, 박경준, 장범중, 최연, 이희선 선생 등 대불련 동기와 후배들이 있는 정평불에 편의를 제공했을 것이다. 나는 대불련출신은 아니다. 대불련출신들이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끈끈한 정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을 보면 부럽다.

 


약사암은 성북동 산비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약사암에 서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가까이에 고등학교가 정면에 보였다. 그때 학교 다녔을 때는 이곳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이곳에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에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법회가 시작되었다. 모두 아홉명 참석했다.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엄중한 시기임에도 올 사람은 온 것이다. 박경준 선생이 목탁을 들었다. 평소 식순대로 삼귀의와 자비경을 합송했다. 법회가 끝날 때는 발원문과 사홍서원을 합송했다.

 


이번달 법회는 경기민요를 배우는 날이 되었다. 파격이라면 파격일 수 있다. 법회라고 해서 반드시 법사의 자격을 갖춘 자만 법문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법상에 올라갈 수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이라면 법사로서 자격이 있다고 본다.

노광희 선생은 국악인이다. 또한 소리꾼이기도 하다. 경기민요 중에서도 서도소리 전수자이다. 이날 정평불 회원들을 위해서 특별히 민요지도를 했다.

 


모두 세 곡 불렀다.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되는 시조한편과 청춘가와 뱃노래이다. 특히 시조를 배우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노광희 선생이 손수 작성한 악보를 보고 한소절한소절 따라 불렀다.

시조를 따라 부를 때 부르는 맛이 났다. 목소리를 길게 끄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굴림이라고 한다. 노광희 선생에 따르면 경기민요는 굴림목이 특징이라고 했다.

민요를 배우기 전에 먼저 굴림목 연습을 했다. , , , , 우를 길게 끌어 굴림목으로 발성하는 것을 말한다. 짧은 연습을 한다음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되는 시조를 읊었다.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 프로페셔널이 되려면 피나는 수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만시간법칙을 말한다. 하루 서너시간씩 십년을 하면 누구나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민요도 그럴 것이다.

경기민요 맛만 보았다. 굴림목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왜 그런가? 종종 스님들이 법문할 때 게송 낭송한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송담스님이 잘 한 것 같다.

언젠가 불교방송에서 송담스님 법문테이프를 들었다. 스님은 법문 중에 게송을 낭송했는데 게송이 끝나면 반드시 "나무아미타불"하며 끝냈다. 그때 길게 끄는 소리가 지금 생각해 보니 굴림목이었던 것 같다. 경기민요에서 굴림목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광희 선생의 발성을 들었을 때 "득음"이라는 두 글자가 떠 올랐다. 일반 사람과 다르게 탁 트인 목소리이다. 마치 영화 서편제에서 본 득음을 연상케 했다. 또 가수들의 노래가 연상되었다. 그래서 "한분야에 집중하여 만시간 법칙을 적용하면 누구나 득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 것이다.

 


법회는 눈부처바라보기 행사로 이어졌다. 빙둘러 앉아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말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다. 대화는 법회가 끝나고서도 계속 이어졌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성북동 국수집에 모였다. 법당에서 법담하는 것 등 공식적활동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비공식적 활동도 중요하다. 이를 흔히 뒷풀이 모임이라고도 말한다. 이와같은 비공식적 활동의 중요성은 경영학 원론에도 실려있다. 밥을 함께 먹는 과정에서 끈끈한 정이 생겨나는 것 같다.

 


식사가 끝나고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는 박금재 선생과 함께 마셨다. 방향은 같다. 박금재 선생은 집이 안산이기 때문에 안양과는 같은 방향이다.

커피점에서 반드시 커피만 마시는 것은 아니다. 녹차를 마셨다. 나에게는 차가 더 맞는 것 같다. 박금재 선생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시간 동안 나누었다.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삶의 애환은 있는 것 같다.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든 참가하면 기록을 남긴다. 작은 메모 노트가 있어서 기록해 둔다. 기록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살려 후기를 작성한다. 이렇게 해 놓으면 세월이 흘렀을 때 기록이 된다. 그것이 개인사적 기록이 될 수도 있지만 모임이나 단체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박경준 선생은 '기록의 신'이라고 다시한번 추켜 세워 주었다.

2021-11-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