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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모임에 참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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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강독

2021. 11. 24.

왜 공부모임에 참여해야 하는가?

 

 

11월 금요니까야 첫번째 모임에서는 다섯 개 경을 합송했다. 이 중 네 개는 짤막한 것이다. 정어, 참을성, 친절, 버려야 할 것에 대한 것이다. 이 들 네 가지 주제는 모두 삶에 도움되는 것이다.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까? 대부분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애써 책을 읽거나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 대부분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살아 간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미각적으로, 촉각적으로 즐기는 삶이다.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술집에서 기름진 음식과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다 보면 새벽이 된다. 그러나 공부를 하거나 수행을 하면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자에게 길은 멀다.”(Dhp.60)라는 법구경 가르침이 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등 향락을 즐기는 자에게 밤은 빨리 지나간다. 밤의 길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명상수행에 돌입하여 밤을 지새우며 정진하는 자, 진리의 말씀을 해설하는 자, 그에게 가까이 설법을 듣는 자, 머리 등에 통증이 있는 자, 손발 등에 고통을 겪는 자, 밤을 지새우는 여행자는 그 길이를 알 수 없다.”(DhpA.II.12)라고 했다.

 

삶에 도움이 되는 네 가지 가르침

 

첫번째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말 많은 자(bahubhāī)’를 경계하는 가르침이 있다. 이는 부처님의 정어(正語)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는 것”(A5.214)이라고 했다. 불교인이라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천수경 십악참회에서도 강조되는 사항이다.

 

천수경에서는 정어 네 가지에 대하여 망어중죄금일참회, 양설중죄금일참회, 악구중죄금일참회, 기어중죄금일참회라고 했다. 왜 참회해야 하는가? 참회하지 않으면 악처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A5.214)라고 했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면 정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일까? 아직도 아무도 지옥에 떨어졌다가 돌아온 자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막행막식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살아 있을 때 내가 있는 것이지 죽으면 내가 없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어디에 태어날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설령 내세와 윤회가 있어서 저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다면 역시 죽음 이후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참을성(khanti)’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은 참을성이 없는 자에 대하여 네 가지로 말했다. 그것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호감을 사지 못하고, 흉포하고, 후회가 있는 사람”(A5.216)이라고 했다. 이 네 가지는 악처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고 했다.

 

참을성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이해력 부족을 들었다. 참을성을 뜻하는 빠알리어 칸띠는 일반적으로 인내로 번역된다. 참고 견디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이해력 없으면 가능하지 않음을 말한다.

 

상대방이 화 냈을 때 이를 참지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될 것이다. 이는 가르침을 접하지 못한 사람, 가르침을 접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해당될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분노하는 자에게 다시 분노하는 자는 더욱 악한 자가 될 뿐, 분노하는 자에게 더 이상 화내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네.”(S7.2)라고 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친절(pāsādika)'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자신이 자신을 비난하고, 양식있는 자들이 알고 비난하고, 악한 명성이 드날리고, 미혹하게 죽는 것”(A5.217)에 대하여 친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친절로 번역된 빠사디까는 ‘pleasing; lovely; amiable’의 뜻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를 청정한 믿음으로 번역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왜 친절로 번역했을까? 아마 그것은 비난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비난이 있으면 칭송이 있기 마련이다. 비난과 칭송은 세속의 삶에서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런데 출세간에서는 초연해야 한다. 어떤 비난과 칭송에도 큰바위산처럼 흔들림 없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세속에서는 칭찬과 비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줄 안다. 이는 자애명상에서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말과 같다. 이는 다름 아닌 자애의 마음이다.

 

자애에 대한 영어 번역은 ‘lovingkindness’이다. 자애를 사랑과 친절의 복합어로 본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랑과 친절의 마음을 내었을 때 비난하거나 악한 명성을 얻거나 미혹하게 살다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네번째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버림(pahāya)’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이는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번역에서 거룩한 경지는 아라한을 뜻한다.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에 대하여 거처에 대한 간탐을 추구하고, 가정에 대한 간탐을 추구하고, 소득에 대한 간탐을 추구하고, 칭찬에 대한 간탐을 추구하고 가르침에 대한 간탐을 추구하는 것”(A5.269)을 버려야 함을 말한다.

 

다섯 가지 간탐이 있는데

 

경에서 간탐(慳貪)은 맛차리야(macchariya)를 번역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색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에게 왜 간탐으로 번역했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맛차리야에 대하여 단지 인색으로만 번역하면 아끼는 것만 강조된다고 했다. 맛차리야는 아끼는 것과 함께 탐욕에 개입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끼는 것과 탐욕의 뜻을 가진 간탐으로 번역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맛차리야에 대하여 인색으로 번역했다. 그래서 거처에 인색함, 신도에 인색함,..”등으로 번역했다. 분명한 사실은 인색에는 탐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맛차리야는 탐욕을 뿌리로 하는 불선법으로 설명되어 있다.

 

경에서 다섯 가지 맛차리야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를 다섯 가지 간탐, 오간(: pañca macchariyani)이라고 한다.

 

1) 거처에 대한 간탐이다. 이를 주처간(柱處)이라고 한다. 이는 손님이 왔어도 승단의 주거가 있어도 거기에 머무는 것을 꺼리는 것을 말한다.

 

2) 가정에 대한 간탐이다. 이를 가간()간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에게 봉사하는 가문에 다른 수행승이 그 가문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것을 말한다.

 

3) 소득에 대한 간탐이다. 이를 이득간(利得)이라고 한다. 이는 소득이 있더라도 물건을 아껴서 베풀지 않는 것을 말한다.

 

4) 칭찬에 대한 간탐이다. 이를 칭찬간(稱讚)이라고 한다. 이는 몸과 덕성에 대한 칭찬을 아껴서 베풀지 않는 것을 말한다.

 

5) 가르침에 대한 간탐이다. 이를 법간()이라고 한다. 이는 성전의 가르침에 대하여 이 자는 가르침을 배워 나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타인에게 베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오간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개정판에 실려 있는 각주를 참고한 것이다. 금요모임 교재 생활속의 명상수행을 말한다. 그런데 오간()을 보니 앙굿따라니까야 간탐의 추구에 대한 경’(A5.254)에 실려 있음을 확인했다.

 

가르침에 대한 간탐(dhammamacchariya)

 

11월 첫번째 금요니까야 모임에서는 네 가지 삶에 도움이 되는 경을 합송했다. 그것은 말 많은 자(bahubhāī)’를 경계하는 가르침, ‘참을성(khanti)’에 대한 가르침, 친절(pāsādika)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마지막으로버림(pahāya)’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은 누구나 아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실천을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네 가지 중에서 마지막 버림에 대한 가르침은 간탐에 대한 가르침이다. 어떻게 해야 간탐을 없앨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최악상황에 대한 명상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부자의 최악명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난일 것이다. 행복한 자의 최악명상은 무엇일까? 불행한 상태일 것이다. 이렇게 최악의 명상을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최악의 명상은 간탐이 있는 자에게 효과적이다. 그런데 인색과 탐욕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맛차리야숫따(A5.254)에서 다섯 가지 간탐을 보면 알 수 있다. 간탐에는 거처, 가정, 소득, 칭찬, 가르침에 대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칭찬도 간탐이고 가르침도 간탐이라고 말한 것은 놀랍다. 특히 가르침에 대한 간탐에 대하여 이 자는 가르침을 배워 나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타인에게 베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난 상태를 말한다. 어느 스승이든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기를 바란다. 이를 청출어람이라고 하는데, 이는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럼에도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게 되는 것을 두려워 가르침을 베풀기를 두려워한다면 이를 가르침에 대한 간탐(dhammamacchariya)’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색하고 탐욕이 있는 간탐자는 질투도 함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간탐이 있는 자는 가르침에도 인색할 뿐만 아니라 칭찬에도 인색하다. 이런 자는 대개 시기와 질투가 함께 한다.

 

간탐과 질투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다. 간탐 있는 곳에 질투가 있고, 질투 있는 곳에 간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멤 틴 몬의 붓다아비담마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질투와는 반대로 인색은 주관적이다. 질투와 인색은 질투하지 말고 인색하지 않도록 하는 다른 사람의 권유가 없으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의 마음에서 질투와 인색을 몰아내면 즉시 행복한 느낌이 될 것이다.”(멤 틴 몬, 붓다아비담마 119)

 

 

간탐은 주관적이라고 했다. 이에 반하여 질투는 객관적이 될 것이다. 이때 질투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번영을 시기하는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남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남에게 칭찬하는 것에 인색한 자는 질투심이 많은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질투와 간탐은 남이 말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향상심(向上心) 때문에

 

매달 두 번 니까야모임이 열린다. 매달 두 번째와 네번째 금요일은 금요니까야모임 가는 날이다. 멀리 시간과 비용과 정력을 들여서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향상심(向上心) 때문이다. 지금 보다 좀더 나은 상태로 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수행이다.

 

 

수행이라고 하여 좌선이나 행선하는 것 만을 말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높은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사쌍팔배의 성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공부모임에 나가는 것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경전에 실려 있는 문구를 접함에 따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정어(正語)와 같이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다시 한번 새긴다. 그러나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을 접할 때도 있다. 특히 간탐에 대한 가르침이 그렇다.

 

담마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가르침에 왕도는 없다. 하나하나 쌓여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먼 길을 왔음을 알게 된다. 금요니까야 모임도 그럴 것이다. 모임에 나오면 가르침을 권유받는 것과 같다. 자신의 향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다음 번 모임에서 어떤 가르침을 접할지 기대된다.

 

 

2021-11-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