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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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떤 이에게는 비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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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2022. 1. 6.

나도 어떤 이에게는 비호감


깊은 밤에 홀로 깨어 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다시 잠들어야 하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긴 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쓰는 것밖에 없다.

글은 논리이다. 논리가 서지 않으면 횡설수설하기 쉽다. 주제가 있어야 한다. 목적이 있는 글이 되어야 한다.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글이 되어야 한다. 나는 타인에 기쁨을 주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에스엔에스에서 댓글을 하나 받았다. 페이스북에 어떤 이가 소감문을 짧게 남겼다. 매일 올리는 글을 보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하루일과를 글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글을 받는다. 격려의 글도 있고 감사의 글도 있다.

글쓰기가 쉽지 않다. 댓글 달기도 쉽지 않다. 답글 달기도 쉽지 않다. 올린 글에 대한 댓글에 일일이 답글 달아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좋아요' 누르는 것으로 대신한다. 가장 좋은 것은 새로운 글을 올리는 것이다. 댓글 달아 준 모든 이들에게 대한 감사의 글이 된다.

수희찬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공감을 하며 글까지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기뻐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대부분 시기하고 질투하고 싫어 하는 마음을 갖는 것 같다. 여기에 나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요즘 같은 대선철도 예외가 아니다.

지지하는 후보의 것만 쫓는다. 상대방 것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반대진영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맞은 자를 또 때리는 식이 된다. 분노의 가학성이다.

요즘 틈만 나면 유튜브를 본다. 또 틈만 나면 페이스북을 본다. 유튜브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너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걸리는 대로 가리지 않고 다 보는 편이다. 보면 반드시 공감을 표현한다. 대개 '좋아요' 아이콘을 누른다. 때로 '슬퍼요' '화나요'도 누른다. 글의 분위기에 따른 것이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거나 사상이 맞지 않으면 불호가 된다. 요즘 말로 비호감이 다. 특히 유튜브에서 종종 발견된다. 어느 스님의 영상시리즈도 그렇다.

그 스님은 아는 것도 많다. 박사 타이틀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한때 스님의 콘텐츠를 열심히 본 적이 있다. 어느 순간 보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패싱한다. 스크롤하다 걸려도 지나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긴 글을 쓴다. 의미와 형식을 갖춘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 기승전결식 구성의 글을 쓰고자 한다. 나중에 책 낼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다. 그래서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읽어서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의미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래서 종종 경전 문구를 인용한다.

아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아는 만큼 쓴다. 마치 보시하는 것 같다. 보시는 능력껏 하는 것이다.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어서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에 맞게 능력껏 보시하는 것이 최상의 보시가 된다. 그래서 보시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가진 만큼 능력껏 보시하는 것은 재벌이 보시하는 것보다 더 큰 보시가 될 수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는 만큼 쓴다. 아는 만큼 능력껏 쓰는 것이다.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글은 잘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잘 써지지 않는다. 마치 수행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잘 하려고 하면 왜 잘 안될까? 잘 하려고 하는 욕망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망으로 수행할 수 없다. 욕망을 내려 놓아야 한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정념에 대해서는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한다."(S45.8)라고 했다. 정정의 조건에 대해서는 "감각적인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에서 떠난 뒤"(S45.8)라고 했다. 공통적으로 욕망을 떠나는 것이다. 잘 해 보려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도 수행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잘 해 보려는 욕심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면 글을 쓸 수가 없다. 펜 가는 대로 써야 한다. 요즘은 자판 치는 대로 쓰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엄지 가는 대로 쓴다. 욕망으로 쓰지 않는 것이다.

잠이 깨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밤 중에 잠이 깨면 다시 자고자 하지만 잠은 잘 오지 않는다. 잠은 잠이 와야 잠을 자는 것이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하여 잠을 잘 자는 것은 아니다. 잠을 욕망으로 잘 수 없다.

누가 잠을 잘 자는 사람일까? 욕망을 내려 놓은 사람이 잠을 잘 잘 수 있다. 번뇌가 없는 사람이 잠을 잘 잘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잠을 잘 자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늘 새벽에도 긴 글을 썼다. 블로그에도 올리고 페이스북에도 올린다. 보는 사람도 있고 패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공감하면 그 사람 것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칭찬에 인색한 것 같다. 좀처럼 공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마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유튜브에서 특정 사람 것을 패싱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비호감 사람 글 역시 패싱된다. 그럼에도 나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수희찬탄 하는 사람도 있다.

선업공덕을 많이 지으라고 한다. 그런데 매우 쉽게 공덕 짓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수희찬탄하는 것이다. 회향하는 것에 대하여 거들기만 해도 공덕짓는 것이 된다. 글도 그렇다.

애써 몇시간에 걸쳐 작성된 글을 인터넷에 올려 놓는다. 이는 모두 가져가라는 말과 같다. 누군가 읽으면 그사람 것이 된다. 글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수희찬탄하면 힘들지 않고 공덕을 쌓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도 열심히 '좋아요' 추천하고 짧은 댓글을 남긴다.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색하다. 호불호와 쾌불쾌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글이 어떤 이에게는 비호감이 될지 모르겠다. 강한 개성을 표출했을 때 그럴 것이다. 자랑하는 글도 비호감 글이 될 것이다. 나의 글에 인색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하게 쓰는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 아는 만큼 능력껏 쓰는 것이다. 나도 어떤 이에게는 비호감일 수 있다.


2022-01-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