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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하루 한시간 이상 앉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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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

2022. 1. 15.

나는 언제나 하루 한시간 이상 앉아 있을까?

토요일 새벽이다. 어느새 한주가 지났다. 월요일인가 싶으면 토요일이다. 그 사이에 일이 있었다. 일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 한개 꼴이었던 것 같다. 고객사 담당이 일을 준 것이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해야 한다. 만사 제쳐두고 일을 먼저한다. 일을 하되 실수 없어야 한다. 한번의 실수로 달아 날 수 있다. 살피고 또 살피지만 실수가 끊이지 않는다.

일하면서도 글을 썼다. 요즘 일과시간에는 글 쓸 시간이 없다. 이렇게 스마트폰 메모앱에 엄지로 치는 시간이 글 쓰는 시간이다. 그 결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 그것도 장문이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 한다. 책 만들기가 그것이다. 과거 써 놓았던 글을 모아 책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43권 만들었다. 각권 평균 400페이지 안팍이다. 글이 길다 보니 30-40개 가량 글을 모으면 책이 한권 된다. 지난 16년 동안 6천개 이상 글을 썼으니 100권 이상 될 것 같다.

책 만들 때 편집작업한다. 한번도 책을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몰랐다. 목차를 만드는 과정이 사실상 편집작업이다. 책의 화룡점정은 서문이다. 서문을 써야 책같이 보인다.

일감이 많아서 서문 쓰기가 계속 늦추어졌다. 거의 하루 한개의 일을 소화하다 보니 서문 쓸 시간이 없었다. 이번 주말을 맞이 하여 두 개의 서문을 써야 한다. 이번 달에 책 네 권을 만들고자 한다.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하는 것도 좋은 것이고 할 일을 찾아 일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특히 후자가 그렇다. 왜 그런가? 축적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살면 살수록 쌓이는 것이다.

흔히 인생을 허무하다고 말한다. 살고 보니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남는 것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자손을 남겼다면 큰 일 한 것이다. 그래도 허전함을 채울 수 없다면 인생 헛살았다고 볼 수 있다.

살면 살수록 악업 짓는 사람이 있다. 탐, 진, 치로 사는 사람이다. 이를 감각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각을 즐기는 삶이다. 눈과 귀, 코, 혀, 몸으로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한평생 감각만 즐기는 삶을 산 자에게 남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남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삶을 멀리해야 한다. 즐기는 삶을 멀리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공부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 시켜야 한다. 수행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수행한다고 하여 앉아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수행이 된다. 그것은 독서도 될 수 있고 글쓰기도 될 수 있다. 모두 사유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암송까지 하면 금상첨화가 된다.

요즘 십이연기분석경을 암송하고 있다. 삼주가량 걸려 외운 것을 매일 암송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빠알리어로 암송하는 즐거움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먹을 때 뿐이다.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똥이 되어서 나올 것이다. 고급 와인도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오줌이 되어서 나올 것이다. 감각적 즐거움은 이렇게 허무한 것이다. 다만 좋았던 기억은 남아 있을 것이다.

감각적 즐거움만 추구하다 보면 악업이 되기 쉽다. 이는 다름 아닌 욕망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탐, 진, 치 삼독에서 탐욕의 삶이 되기 쉽다. 그래서 장수하면 할수록 불선업이 되기 쉽다.

선업을 지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삶을 멀리해야 한다. 즐기는 삶을 멀리하는 것과 같다. 그대신 공덕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공덕인가?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말한다.

즐기는 삶을 살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러나 공덕짓는 삶을 살면 축적되는 삶을 살게 된다.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더 쌓일 것이다.

나는 축적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 할 수 있다. 글쓰기 하면서부터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밖으로만 향하던 마음을 내부로 돌릴 수 있다. 하루 30분 만이라도 글쓰기 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글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암송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을 외워야 한다. 긴 길이의 경을 외우는 과정은 고행에 가깝다. 그런데 외우고 나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글쓰기와 비교되지 않는 기쁨이다.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면 강한 성취감을 갖는다. 이런 기분은 꽤 오래 지속된다. 맛 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바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더욱 강렬한 것은 외우는 것이다. 긴 길이의 경을 막힘 없이 외웠을 때 그 희열은 글쓰기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매일 글쓰기하고 있다. 2006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그 결과 어마어마하게 축적 되었다. 책으로 만들면 백권이 넘을 것이다. 이제는 책 만드는 것이 일이 되었다.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난 것이다. 한달에 서너권 만들어야 한다.

책 만드는 것도 축적된 삶이다. 글쓰기도 축적된 삶이고 경을 외우는 것도 축적된 삶이다. 그러나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만 못하다. 진정한 축적된 삶은 수행하는 것이다.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앉아 있고자 한다. 단 십분이라도 좌선하면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는 다름아닌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볼 줄 알아야 성장이 있다.

하루라도 좌선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미쳐 날 뛴다. 마음이 외부 대상에 가 있을 때 괴로움이 발생된다. 즐긴다고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아 불만이다. 그런데 좌선에는 예비동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글쓰기, 암송하기, 행선하기가 해당된다.

하루에 최소한 한시간은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 앉아 있을 시간은 없다. 일감을 처리하기도 바쁘다. 여기에 글도 써야 하고 경을 암송해야 한다. 책도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앉아 있어야 한다. 하루 한시간은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이 있다. 나는 언제나 하루 한시간 이상 앉아 있을까?

2022-01-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