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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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극적 반전시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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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

2022. 1. 30.

몸과 마음을 극적 반전시키려면


몸이 찌뿌둥 하다. 마음도 개운치 않다. 잠을 잘 못 잔 것이다. 새벽에 깨어 다시 잠을 청하지만 자는 둥 마는 둥이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유튜브 수면유도음악을 들어 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잠을 잘 자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잠을 깨려고 해야 한다. 잠은 잠이 와야 자는 것이지 억지로 청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잠을 욕망으로 잘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암송과 행선을 해보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찌뿌둥할 때 기분전환을 해야 한다. 현재의 상태를 확바꾸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먼저 십년환을 먹었다. 집안에 있는 상비약이다. 서산 보광당에서 산 것이다. 약국에서 팔지 않는 비밀의 약이다.

십년환은 급체, 식체, 만성장염, 위염, 소화불량, 변비에 좋은 것이다. 심지어 숙취에 좋다고도 쓰여 있다. 인삼이 12% 들어간 환약이다. 10여 알 먹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곧바로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단지 기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일종의 위약효과라고도 볼 수 있지만 확실히 변화를 감지한다.

몸 상태를 바꾸었으니 다음은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잠을 못 잔 것에 대한 미련을 떨쳐 내야 한다. 꿀꿀한 마음을 바꾸려면 경을 암송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십이연기분석경(S12.2)을 암송했다. 빠알리어로 암송하는 것이다. 십여분 걸린다. 클라이막스는 어디일까? 외울 때 가장 애를 먹은 게송이 있다. 늙음과 죽음에 대한 게송이다. 십이연기분석경에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외우기 힘든 생소한 단어가 많다. 그러나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줄줄 외워진다.

"
자라 지라나따 칸딧짱 빨릿짱 봘리따짜따 아유노 상하니 인드리야낭 빠리빠꼬"

늙음에 대한 것이다. 늙음이라는 것은 "늙고 노쇠하고 쇠약해지고 백발이 되고 주름살이 지고 목숨이 줄어들고 감역이 노화되는 것"(S12.2)이라는 뜻이다.

"
쭈띠 짜와나따 베도 안따라다낭 마쭈마라낭 깔라까리아 칸다낭 베도 깔레바랏사 닉께뽀 지뷔띤드라야사 우빳쩨도"

십이연기분석경에서 절정이다. 죽음에 대한 게송이다. 죽음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표현해 놓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이 빠알리 게송은 "죽고 멸망하고 파괴되고 사멸하고 목숨을 다하고 모든 존재의 다발이 파괴되고 유해가 내던져진다."(S12.2)라고 번역된다.

십이연기분석경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게송이다. 낱낱의 중생에 대하여 낱낱이 적용되는 게송이다. 누구하나 예외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에 대한 것이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이다. 이 말은 "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S12.2)이라는 뜻이다. 태어남은 정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절망은 다름아닌 죽음이다.

매일매일 절망을 향해서 가고 있다. 언젠가 죽을 운명에 처해져 있기 때문에 삶의 종착지는 절망이 된다. 어쩌면 죽기위해서 사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마치 영화에서 극적인 반전을 보는 것과 같다. 죽음을 극복하는 게송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십이연기 환멸문 게송을 말한다.

십이연기분석경은 절망의 게송이기도 하지만 절망 극복의 게송이기도 한다. 이는 조건발생 된 것이 조건이 다함에 따라 소멸이라는 극적인 반전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빗자 뜨봬바 아세사 비라가 상카라 니로도(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로 환멸문이 시작된다. 최종적으로 "에왕 땃사 께봘라사 둑카칸닷사 니로도 호띠띠(이 모든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로 끝난다. 괴로움과 윤회가 극복되는 것이다.

십이연기분석경은 일종의 승리의 게송이다. 매일 암송하면 승리를 맛볼 수 있다. 암송하는 것 자체가 승리가 될 수도 있다. 글자수가 1, 543자에 달하는 긴 길이의 경을 10여분 동안 막힘없이 암송했을 때 충만된다. 이것을 혼자서만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회향한다.

회향은 나누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공덕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물질을 나누면 줄어들지만 정신적 재물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 들지 않는다. 나누면 나눌수록 오히려 커지는 것이 회향공덕이다. 그래서 암송을 마쳤을 때 "이 모든 공덕을 선망부모님께 회향합니다. 이 모든 공덕을 유주무주 고혼들께 회향합니다. 이 모든 공덕을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합니다. 사두!사두!사두!"라며 마친다.

십이연기분석경에서 사실상 클라이막스는 공덕회향에 있다. 회향하고 나면 기분이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바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도를 하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경을 암송하면 완전히 다른 기분이 된다.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것 같다.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대신 충만된 마음만 남아 있다.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다음 단계는 행선하는 것이다.

경을 암송하고 난 다음 행선하면 다리에 힘이 붙는 것 같다. 이전과 확실히 다르다. 아마 암송으로 인한 집중의 힘일 것이다. 경을 암송하는 과정에서 집중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집중의 힘을 고스란히 행선으로 가져 가고자 하는 것이다.

다리에 힘이 있다. 발을 옮길 때 균형이 잡혀 있다. 여섯 단계 행선을 했을 때 각 단계를 기억하고 알아차림이 있다. 특히 뒤꿈치를 들어 발을 뗄 때 ""하는 소리가 날 때 명료하다.

 


새벽에는 좌선보다 행선을 한다. 나에게는 좌선보다 행선이 더 효과적이다. 왜 그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중의 하나가 의도이다.

의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행선을 하다 보면 의도를 볼 수 있다. 발 뒤꿈치를 들어 떼려고 할 때 의도가 없으면 떼지지 않을 것이다. 의도가 없으면 발을 뗄레야 뗄 수 없을 것이다.

의도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테라와다불교 빤냐완따 스님이 올린 글이 그것이다.

어느 가을 맑은 날에 수행승이 산책을 나갔다. 수행승은 스승에게 느낌을 보고 했다. 수행승은 "제가 무심히 들길을 걷다가, 무심히 고개를 들어서, 무심히 가을 하늘을 올려 보았는데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수행승은 "무심히"라는 말을 세 번 사용했다. 이에 스승은 "수행자에게 있어서 '무심히'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시켜서 길을 걸었고, 마음이 시켜서 고개를 들었고, 마음이 시켜서 하늘을 바라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실려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무심히 행하는 것은 없다. 모두 의도가 실려 있다.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에 있어서 의도가 실리지 않은 것은 없다. 수행승은 의도가 있어서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의도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행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도 해당될 것이다. 행하기전에 의도를 알아챈다면 불선업을 짓지 않을 것이다.

행선을 하면 의도를 보기 쉽다. 6단계 행선에서 발을 떼려고 할 때 잘 보인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수행보고 할 때 "발을 옮길 의도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발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일요일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밀린 일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한다. 무엇보다 수행이다. 경을 암송하고 행선하고 좌선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더러워지는 것 같다. 특히 선거철에 시사에 관심을 가지면 휘말려 들어 가는 것 같다.

자신만의 수행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는 암송과 행선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암송하면 정신이 집중이 된다. 회향하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이 여세로 행선을 하면 이 세상에 의도와 행위만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상한 것이다. 발을 뗄 때 "" 떼 지는 소리에서 '찰나멸(刹那滅)'을 본다.

오늘 새벽 몸과 마음이 찌뿌둥 했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과감하게 뿌리친 것이 주효했다. 속이 더부룩한 것은 십년환을 10여 알 먹음으로써 해소되었다. 경을 암송하고 행선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바뀌었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극적인 반전을 보는 것처럼.


2022-01-30
담마다사 이병욱